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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넘보지 말 것, 언양에서 마주한 요새

  • Editor. 서진영
  • 입력 2022.05.23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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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는 울산광역시, 그보다 범위를 좁혀도 울주군에 속한 행정단위상 읍 단위인 언양은 상대적으로 다른 읍에 비해 인지도가 높은 인상이다. 그 인지도에는 언양이라 하면 단박에 떠오르는 음식 불고기가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언양 불고기 하나를 목표로 삼고 찾아오는 수가 적지 않다. 그래서 불고기 먹으러 언양에 갔다가 뜻밖의 요새들을 발견하고 언양을 새로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언양읍성
언양읍성

●신라에서 조선으로 이어진 견고한 읍성

이렇다 할 정보 없이 불고기 맛집 한두 곳을 검색해 언양에 들어섰더라도 이걸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어렵겠다. 읍내 한가운데 면적이 41,349㎡ 에 달하는 읍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개 넓은 면적을 비교할 때 가늠자가 되는 축구장 전용 면적이 7,140㎡이니 대략 축구장 6개 규모다. 고려 공명왕 때 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고, 그 자리에 조선 연산군 시기인 1500년 석성을 쌓았는데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광해군 때인 1617년에 새로 축조했다고 한다.

한양도성, 남한산성, 행주산성 등 우리에게 익숙한 성곽 유적은 대부분 산세를 이용해 쌓았다. 적의 공격에 효율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우리나라가 산지 지형이었기에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언양읍성은 낮고 평탄한 평지에 네모반듯하게 성돌을 둘러쌓은 평지성이다. 전체 길이는 1,520m. 울산, 밀양, 양산과 더불어 경남 지역의 교통 중심지였던 옛 언양의 입지를 추측케 한다. 

읍성 북문에서 산책로를 따라 남문 영화루까지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드넓은 논밭 한가운데 세월이 느껴지는 오래된 주택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성 안은 한가로운 농촌 풍경이다. 1966년 제법 일찍이 사적으로 지정됐다. 사적으로 지정되면 정비 사업 진행하고 보호 명목으로 그 안을 비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지역의 생활사가 어우러지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는 풍경이다. 

언양읍성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 306-1


●영남 지역 신앙의 못자리

언양읍성 가까이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천주교 성지가 있다. 언양성당은 울산 지역에서 처음으로 건립된 천주교 성당이다. 1800년 전후로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만든 신앙공동체가 모태다. 고딕 양식을 따른 현재의 석조 성당은 초대 신부 에밀 보드뱅(Emile Beaudevin)이 설계하고, 명동 성당 건설에 투입된 중국 기술자들이 공사를 맡아 1936년에 완공됐다.

고풍스러운 성당 건축물도 매력적이지만 성당 뒷산에 조성된 ‘십자가의 길’과 성모동굴이 인상적이다. 참고로 언양읍이 속한 울주군은 영남 지역 신앙의 못자리라 한다. 울주군 일대의 천주교 사적지는 세 갈래 순례길로 연결되는데 언양성당은 2코스의 시작점이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까지 중요한 열네 장면을 묵상하며 드리는 기도를 가리킨다. 대개 신자들은 그 열네 장면을 형상화한 조각이나 그림 앞에서 기도를 한다. 언양성당 뒷산 숲길따라 조성된 십자가의 길은 바위에 그 장면 장면을 새겼는데 반구대 암각화가 남아 있는 고장답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성모동굴은 십자가의 길을 지나 산길을 700m 정도 올라 정상부에 다다랐을 때 나타난다. 천연 석굴 안에 성모상이 놓여 있어 순례자들이 기도 또는 미사를 드릴 수 있게 조성한 것으로 1866년 병인박해 때 간월산 정상 가까이에 마련한 은신처이자 공소인 죽림굴을 연상케 한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일본 시코쿠의 오헨리 순례길처럼 순례길은 종교를 뛰어넘어 삶을 성찰하게 만들지 않던가. 대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숲길이 사색을 돕는다. 다른 무엇도 아닌 한 발 한 발 내 발걸음에 집중할 수 있는 길이니 아니 오를 이유가 없다. 중턱에 올라 뒤돌면 언양 읍내가 한눈에 보이는 경치도 잠깐의 산행을 보람차게 한다.

언양성당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구교동1길 11


●울산광역시 제1호 민간정원

언양 읍내에서 5km 거리 상북면에 위치한 온실리움은 다양한 조경 기법을 적용하여 보존 가치가 있는 국내 수목과 국내에서 보기 힘든 해외 수종을 고루 식재하여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온실정원이다. 지역에서 40년 이상 조경 일에 매진한 이상칠 대표가 자신의 노하우를 한데 모았다. 정원 문화 확산 차원에서 산림청이나 지자체에서 개인이 조성·운영하는 정원 가운데 빼어난 곳을 전문가 심사를 거쳐 민간정원으로 지정하고 있는데 온실리움은 2018년 울산광역시 제1호 민간정원으로 등록됐다.

카페로 운영하고 있어 별도의 입장료 없이 1인 1잔 음료 주문으로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2층  규모이지만 층고가 높은데다가 층별로 콘셉트를 달리해 구경하는 재미를 더했다. 1층이 전형적인 열대 식물원 콘셉트라면 2층은 유리창 너머의 온실과 곳곳에 배치된 테라리움 등을 관찰하는 갤러리 느낌이다.

투명한 유리창 저편에 보이는 수종이 무엇일까 궁금하다면 유리창 귀퉁이를 유심히 살펴보자. 실제 미술관 작품 설명 패널처럼 식물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온실이라는 구조 덕에 계절에 관계없이 난대수종 아래에서 싱그러운 한때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 잠시나마 코로나 바이러스와 분투하느라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다.

온실리움
주소 : 울산 울주군 상북면 도동신리로 138 
영엽시간 : 화~금 11:00~19:00, 토~일 11:00~20:00, 매주 월요일 휴무

 

글·사진 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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