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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하늘을 이고 사는 섬, 가파도

  • Editor. 김민수
  • 입력 2022.07.06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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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가 베어진 자리에는 코스모스가, 소망전망대 주변으로는 바늘꽃이 함빡 피어났다. 가파도의 아름다움은 섬을 가꾸고 보살피는 주민들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가파도 올레길의 길이는 4.2km, 두 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다
가파도 올레길의 길이는 4.2km, 두 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다

●가파도의 여름은 붉다


제주 운진항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대형 버스와 렌터카들이 빼곡히 주차장을 메우고 있었다. 평일 오전 9시40분, 예기치 못한 북적임에 느긋하던 마음이 바빠졌다. 예약에 게을렀던 자신을 타박하며 매표소로 달려갔다. 다행히 10시에 출발하는 가파도행 여객선에 자리가 남아 있었다. 주말이었다면 십중팔구 헛걸음이 되었을 터,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기조가 자율로 바뀌면서 제주엔 관광객들이 밀려들고 있다.

가파도행 여객선 선착장은 섬의 북쪽 상동포구에 있다
가파도행 여객선 선착장은 섬의 북쪽 상동포구에 있다
지붕마저 나지막한 가파도는 우리나라 유인도 중 가장 낮은 섬이다
지붕마저 나지막한 가파도는 우리나라 유인도 중 가장 낮은 섬이다

운진항에서 5.5km 떨어진 지점, 그곳에 가파도가 있다. 여객선에 오르고 사진 몇 장 찍다 보면 닿을 정도로 가깝다. 면적 0.84km2, 해안선 길이 4.2km의 작은 섬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섬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 높이는 20.5m에 불과하다. 해수면 높이와 별 차이 없으니 파도가 크게 치거나 태풍이라도 닥치면 물에 곧장 잠길 것 같지만, 암초 띠가 섬을 둘러싸고 있어 오히려 안전하단다. 

새싹보리 가공창고 주변으로 때 이른 코스모스가 한껏 피어났다
새싹보리 가공창고 주변으로 때 이른 코스모스가 한껏 피어났다

가파도는 ‘청보리의 섬’으로 불린다. 섬 면적의 60%가 보리밭이다. 매년 4월 초에서 5월 초 사이에는 청보리 축제가 열리는데 이 시기에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봄이 떠나고 여름이 오면 청보리 또한 자취를 감춘다. 청보리가 베어진 자리는 농사를 위해 남겨지거나 꽃밭으로 변신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피어난 코스모스 군락을 만날 수 있고 들판을 가득 메운 바늘꽃과 양귀비꽃도 볼 수 있다. 누군가 가파도의 여름을 붉은색이라 칭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너른 하늘을 짊어진 캠핑장


가파도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하늘을 이고 있다. 좌우로 고개를 돌려 봐도 온통 하늘이다. 선착장 해안가는 제주 본섬을 또렷하게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포토존이다. 한라산을 배경으로 그 능선 자락에 우뚝 선 산방산과 바다를 마주하고 선 송악산의 어울림은 가히 압권이다. 날씨가 맑아 시야가 트였을 땐 마치 가파도와 제주도가 한 섬인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섬 주민들의 오랜 삶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가파포구
섬 주민들의 오랜 삶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가파포구

가파도에는 두 곳의 포구가 있다. 여객선 선착장 바로 옆 상동포구와 섬의 남쪽에 있는 가파포구다. 가파포구는 예부터 고깃배가 드나들던 섬의 주항으로 마라도까지의 거리 또한 가장 가깝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최근 재건축된 마라도 등대도 한눈에 쏘옥 들어온다. 

섬 캠핑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가파도 태봉왓캠핑장 3
섬 캠핑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가파도 태봉왓캠핑장 
한라산 자락이 흘러내려 가파도까지 이어진 듯한 풍경
한라산 자락이 흘러내려 가파도까지 이어진 듯한 풍경

포구에 자리한 예능 프로그램 <마을애가게> 촬영지와 24시간 개방된다는 무인카페를 지나면 요즘 제주 백패커들로부터 슬그머니 소문나기 시작한 태봉왓캠핑장이 나타난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설치된 10개의 데크 사이트는 마라도와 한라산의 풍광을 동시에 품은 탁월한 입지 조건을 가졌다. 당장이라도 텐트를 피칭하고 가파도의 낮과 밤을 오롯이 느껴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해안 길을 돌다 보면 마라도와 한라산의 절경이 펼쳐진다
해안 길을 돌다 보면 마라도와 한라산의 절경이 펼쳐진다

선착장을 찍고 다시 마을길로 들어섰다. 꽤 많은 관광객이 자전거를 타고 스쳐 지나갔다. 한편으로는 ‘이 작은 섬마저 도보가 아닌 자전거로 돌아봐야 하나?’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어쩌면 누군가에겐 부딪치는 바람과 햇살 또한 여행의 목적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솟았던 미간이 편안해졌다. 여행에서도 서로 다름을 이해하면 모든 것이 풍경의 일부가 된다.

가파도에서 가장 높은 소망전망대
가파도에서 가장 높은 소망전망대

●요란한 변화 없이도


소망전망대는 가파도 중앙에 있는 전망대다. 2.5m의 높이, 해발로 따지면 고작 23m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데크 위에서도 마을과 해안으로 이어지는 평화로운 섬 풍경은 물론 한라산과 마라도 등을 포함해 사면의 절경을 돌아가며 감상할 수 있다. 수평적 풍경의 진수는 전망대를 둘러싼 익살스런 돌 조형물과 화사한 꽃밭이다. 마침 마을 아주머니들이 모여 꽃밭 가꾸기에 열심이었다. 그 모습을 한 참 바라보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섬이 아름다운 이유는 주민들의 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섬이 아름다운 이유는 주민들의 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어디서 왔어요?” 자연스럽지 못한 서울말에 대한 답변으로 배워 뒀던 제주 사투리를 써 볼 차례다. “수원서 왔수다. 꽃 심느라 폭삭 속았수다(많이 고생하시네요).” 아주머니들의 웃음이 터졌다. 여행의 즐거움이 어설픈 표준말과 사투리 사이에 있을 줄이야.

섬 곳곳에서 익살스런 돌 조형물들을 만날 수 있다
섬 곳곳에서 익살스런 돌 조형물들을 만날 수 있다

별것 아닌 소소한 대화에도 웃음이 터지는 섬. 그러고 보면 가파도는 참 단순한 섬이기도 했다. 우선 가파도엔 전봇대가 없다. 무(無)탄소의 깨끗한 섬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지중화(地中化)되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마주치는 대합실부터 섬을 걸으며 만나게 되는 골목과 가옥, 새로 생긴 시설물들은 또 어떤가. 모두 한결같이 단순하다. 관광객 수는 늘었지만 섬은 요란한 변화를 거부한다. 가파도협동조합이 개발과 보존 그리고 수익사업까지 총괄하며 ‘최소한의 변화’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파도 여행의 맛은 어쩌면 이 단순함에 있었을지도. 

 

Travel Info

▶여객선
대정읍 운진항 → 가파도
하루 6~7회 운항/ 소요시간 10분/ 1만4,100원
※ 청보리 축제 기간 및 성수기 30분 간격으로 증편 운항

선사에서 권하는 가파도 체류시간은 두 시간 정도다. 그러나 가파도엔 제주 올레 11-1 코스가 있다. 올레길을 걷고 사잇길과 마을의 스폿들을 거쳐서 밥 한 끼라도 챙겨 먹으려면 두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서 팁 하나! 돌아오는 배 시간을 지정할 수 있으니 티켓팅할 때 매표원에게 미리 귀항 시간을 이야기하자. 

 

▶SPOTS

가파도 사진관

해녀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유용예 작가가 2019년 개관한 사진관이다. 본디 게임디자이너였던 작가는 2012년부터 가파도에 정착해 사진 작업을 이어 갔다. 작가는 직접 물질하는 현직 해녀이자 어촌계장 직함도 가지고 있다. 섬을 이해하고 유대감을 쌓기 위해 선택한 간절한 노력이다. 사진관은 작가의 작업실이기도 하다. 해녀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가 기획 진행되며 전시회도 열린다. 관광객들 또한 가파도 포구 마을 초입에 있는 작은 사진관에서 해녀 복장과 태왁 등의 소품을 갖추고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주소: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12 

가파도 AIR

‘가파도 AIR(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은 가파도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작품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예술가들에게 작업환경을 제공하는 창작공간이다. 제주도와 현대카드가 공동 운영해 왔지만, 2021년부터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주도하게 되었다. 레지던스뿐만 아니라 전시회, 오픈스튜디오, 지역 연계 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가파도 AIR은 ‘잠시 멈추어 깊게 몰입하다’라는 이름을 걸고 내부공사 중이다. 

주소: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12 

대정오일시장

만약 가파도 여행을 계획한 날이 1, 6일로 끝난다면 배를 타기 전 꼭 들러 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대정오일시장이다. 1950년대부터 이어졌던 대정오일장의 주 고객은 현지 도민들이며 그중에는 마라도, 가파도 주민들도 있다. 시장 내에는 수산물을 취급하는 점포가 300여 개에 이른다. 모슬포항이 인근에 있기 때문이다. 생물 생선값은 자타공인 대정오일장이 제주에서 가장 저렴하다고 한다. 시장은 돌아보는 재미도 있지만 국밥, 고기국수, 김밥, 튀김, 호떡 등 먹거리도 풍부해 한 끼 식사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주소: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1089-20

카페 감저

제주에서는 고구마를 ‘감저’라 하고 감자는 ‘지슬’이라 부른다. 감저는 오래전 벼농사를 지을 수 없던 제주 도민의 주식이었다. 카페 감저는 1964년 건축되어 80년대 초까지 운영되었던 전분 공장을 재탄생시킨 곳이다. 2,000여 평의 부지에는 당시의 전분 기계가 고스란히 놓인 ‘감저팩토리’와 지역 작가들의 전시회가 끊임없이 열리는 갤러리가 있다. 제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제주다움의 가치를 한 곳에서 읽을 수 있다는 얘기다. 운진항에서 3km가 채 되지 않은 곳에 있으니 가파도를 다녀온 후 들러 봄 직하다.

주소: 서귀포시 대정읍 대한로 22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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