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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옛 도심으로 떠나는 '청주읍성 역사여행'

  • Editor. 장태동
  • 입력 2022.11.10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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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옛 도심을 걸으며 청주읍성의 흔적을 찾아본다. 현재가 미래의 역사라면 과거는 오래된 미래다. 

청주 중앙공원 가을 풍경. 오른쪽 나무가 압각수다
청주 중앙공원 가을 풍경. 오른쪽 나무가 압각수다

*답사 순서
청주읍성 남문 터 – 청주읍성 우물 – 청주 용두사지철당간 – 청주읍성 동문 터 – 청주 동헌 건물 – 중앙공원 – 청주읍성 서문 터 – 망선루 터 비석 - 청주읍성 북문 터 – 옛 철도 건널목(재현) – 옛 청주역사(재현) 


위 지역은 청주시 남문로1, 2가 북문로1가, 서문동 등에 걸쳐 있는 곳이다. 동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주읍성의 남문 부근을 남문로1,2가로 부르고 북문 부근은 북문로1가 서문이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서문동이 형성 된 것이다. 

청주 중앙공원 가을 풍경
청주 중앙공원 가을 풍경

●청주읍성

청주읍성은 고려시대 청주성 터에 조성된 조선시대 읍성으로 성종 임금 때에 축조 됐다. 읍성 안에는 동헌 창고 감옥 등의 관청 건물, 우물 13개와 민가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동서남북 네 곳에 문을 만들었다. 평상시에 청주읍성에서 살던 사람들이 전쟁 등 긴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는 상당산성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청주읍성 터의 중심부에 있는 중앙공원에서 상당산성까지 직선으로 약 5.7km 정도 된다. 
1651년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을 충남 서산 해미에서 청주로 옮김에 따라 청주읍성은 충청병영성의 역할도 겸하게 된다. 병마절도사는 해당 지역의 육군 최고 지휘관이다.  

복원한 청주읍성 성곽. 청주 중앙공원에 있다
복원한 청주읍성 성곽. 청주 중앙공원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성곽을 헐고 그 돌로 하수도를 만들고 성문을 헐고 도로를 새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현재 옛 읍성 터에 남아 있는 건물은 청주목 동헌인 청녕각,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 등이며, 망선루는 원래자리에서 옮겨 지금 중앙공원 한쪽에 남아 있다.  

 

●청주읍성 남문 터

청주읍성 남문 터를 알리는 표석과 위치도가 청주약국 부근(성안로와 무심동로336번길이 만나는 네거리)에 있다. 남문은 청주읍성의 정문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헐렸다. 남문 앞에는 옹성리 마을이 있었다. 남문(터)에서 남쪽으로 200m 정도 되는 거리에 청주육거리시장이 있다. 100년도 더 된 시장이다. 

청주읍성 우물터
청주읍성 우물터

●청주읍성 우물

성안길 우리은행 신축 터에서 청주읍성에 있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우물이 발굴됐다. 건물을 짓느라 원래 자리에서 옮겨 성안길 우리은행 건물 오른쪽 귀퉁이에 복원했다. 

용두사지철당간
용두사지철당간

●청주 용두사지철당간

962년에 세운 당간(절에서 기도나 법회 등을 열 때 불화를 그린 깃발을 다는 기둥)이다. 높이가 12.7m다. 국보로 지정됐다. 중앙공원 근처 성안길(옛 번화가. 서울의 명동 같은 곳) 빌딩 사이 광장에 있다. 현재 용두사지철당간 주변은 고려시대에 용두사가 있던 자리다. 전국적으로 당간을 받치는 당간지주는 많이 남아있는데, 당간까지 남아있는 건 드물다. 당간에 용두사철당기가 새겨져 있는데, 당간의 건립연대와 관련된 사람들, 관직명 등이 적혀 있다. 

용두사지철당간 광장에는 청주극장과 현대극장이 있었다. 현대극장이 있었던 곳에는 지금은 백화점 건물이 들어섰다. 조선시대 청주목 관아의 감옥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청주읍성 동문 터

청주읍성 동문으로 나가면 성황당과 청주 향교로 가는 길이 연결 됐다. 옛 중앙초등학교 자리 옆에는 마을사람들이 ‘당산’이라고 부르던 낮은 산이 있다. 

청주 동헌 청녕각
청주 동헌 청녕각

●청주 동헌

현재 청주시청 임시청사가 옛 청주목 관아 터였다. 동헌 건물에 붙은 현판 이름인 ‘청녕각’은 청주목사 이덕수가 지은 것이다. 그 전에는 근민헌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건물을 개조하여 청주군청과 청원군청 사무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2008년에 해체보수 하면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중앙공원
중앙공원에는 역사의 흔적이 많다. 

청주 중앙공원에 있는 망선루와 척화비
청주 중앙공원에 있는 망선루와 척화비

*망선루 : 고려시대 누각인 망선루를 원래의 자리에서 옮겨 지금의 자리에 세웠다. 원래 이름은 취경루였는데, 조선시대 한명회가 망선루라고 이름을 고쳤다. 원래 자리는 현재 자리에서 북쪽으로 약 30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청주 척화비 : 망선루 옆에 있다. 1871년 흥선대원군이 전국에 세운 척화비 중 하나다. 석교동 하수도 뚜껑으로 쓰이던 것을 발견하여 1976년에 지금의 자리에 옮겨 세웠다. 

*의병장 한공봉수송공비 :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의병을 모아 일본군과 싸워 33번의 승리를 거둔 한봉수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청주 조헌 전장기적비 : 임진왜란 때 청주성을 탈환한 조헌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1710년에 청주성 서문 밖에 있던 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청주성 탈환 전투는 임진왜란 당시 처음으로 육지전에서 승리한 전투로 기록됐다.

청주 중앙공원 압각수
청주 중앙공원 압각수

*압각수 : 900년이 훌쩍 넘어 천년이 다 돼 가는 은행나무다. 고려 말에 이색 권근 이숭인 등이 청주옥사에 갇혔었는데, 홍수가 나자 이 나무에 올라가 목숨을 건졌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청주 중앙공원에 있는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 (한옥 건물)
청주 중앙공원에 있는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 (한옥 건물)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 : 청주읍성에 있었던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의 출입문이다. 1651년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을 충남 서산 해미에서 청주로 옮김에 따라 청주읍성은 충청병영성의 역할도 겸하게 된다. 병마절도사는 해당 지역의 육군 최고 지휘관이다.  

●청주읍성 서문 터

중앙공원 서문으로 나와 우회전해서 가다가 보면 만두집 앞에 서문 터를 알리는 비석이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 조헌 선생과 승병 영규대사 등이 이끄는 군대가 이 문을 통해 들어가 청주성을 탈환했다고 전해진다. 

●망선루 터 비석

국민연금공단 청주지사 건물 대각선 맞은편에 있다. 망선루는 고려시대 건물이다. 취경루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한명회가 망선루로 이름을 고쳤다. 망선루는 중앙공원 안에 옮겨지었다. 

●청주읍성 북문 터

성안길 북쪽 끝에 있다. 1920년대에 헐렸다. 1921년 북문 밖에 충북선 철로가 놓였다. 

옛 청주역사를 재현했다.
옛 청주역사를 재현했다.

●옛 철도 건널목과 옛 청주역사

청주읍성 북문 터 표석 앞 건널목을 건너 직진하면 옛 철도 건널목이 나온다. 1921년부터 1968년까지 조치원에서 출발해서 충주로 향하는 충북선 철도가 있었던 곳이다. 옛 것을 재현했다. 옛 철도 건널목에서 북쪽으로 더 가면 옛 청주 역사를 재현한 곳이 나온다. 

옛 철길을 재현했다
옛 철길을 재현했다

 

글·사진 장태동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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