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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섬 하나, 고립의 자유  '승봉도와 자월도'

  • Editor. 김진
  • 입력 2022.12.05 09:05
  • 수정 2022.12.05 09: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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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 하루에 섬 하나를 여행했다. 
고립되었기에 더 자유로웠다.

이른 아침 자월도 바다는 새들의 천국
이른 아침 자월도 바다는 새들의 천국

●DAY 1
승봉도로 향하다


승봉도는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을 타고 1시간 20분이면 닿는다. 새벽에 일어나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또다시 인천시내버스를 탄 후 배에 몸을 싣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넘실거리는 바다 한가운데를 가르며 달리니 어느새 졸음이 환희로 바뀌어 갔다.

승봉도 신황정에서 내려다본 풍경. 목섬과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승봉도 신황정에서 내려다본 풍경. 목섬과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구가 150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에 몇 배나 되는 여행자들이 물밀듯 들어온다. 승봉도(昇鳳島)는 섬 전체가 마치 하늘을 비상하는 봉황을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오래전 이름은 ‘신황도’였다.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신씨’와 ‘황씨’가 폭풍을 만나 우연히 섬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둘러보니 땅도 비옥해서 농사도 지을 겸 정착하게 되었다는 것. 이때 두 사람의 성을 따 신황도라고 불렀단다. 신씨와 황씨가 열심히 일궈 놓은 덕분인지, 이 작은 섬에 황금빛 논이 알차게도 들어서 있다. “전쟁이 났을 때도 먹을 것이 많았지요.” 식당 사장님의 이야기다. 승봉도 바로 옆에 있는 이작도만 해도 논이 없단다. 섬 한 바퀴를 다 걸어도 3시간이면 충분한 작은 섬인데, 참 내실 있어 보였다.

풍요로운 논을 지닌 승봉도
풍요로운 논을 지닌 승봉도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작은 어선에 올랐다. 20분 남짓 달려 바다 한가운데 어장에 도착했다. 선장님이 재빠르게 그물을 끌자 우럭, 간자미, 꽃게가 딸려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걸린 것은 간자미. 유난히 사람 얼굴을 빼닮은 간자미는 날아갈 듯 펄떡거렸다. 선장님이 나눠준 목장갑을 끼고서 ‘그물에 걸려 있는 물고기를 꺼내는’ 작업이 첫 번째 섬 체험이었다. 작업은 얽힌 실타래를 푸는 것만큼 쉽지 않았지만, 색다른 바다 체험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저녁식사의 재료가 될 것이므로 열심히 했다. 간자미는 찜이나 무침으로 많이 먹었지만, 회는 처음이었다. 상당히 탄력적인 식감, 오독오독한 게 씹을수록 감칠맛이 올라왔다.  

 

충만한 승봉도의 저녁


승봉도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담는 방법은 해안 둘레길을 걷는 것이다. 부두치 인근에서부터 시작되는 해안 둘레길은 바다와 소나무 숲 사이에 나무 데크길이 연결돼 있어 걷기에 편하다. 둘레길은 3km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풍경은 다채롭다. 쉬엄쉬엄 걷다 보면 기기묘묘한 암석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부채바위, 촛대바위, 남대문 바위 등 자연이 창조해 놓은 조각품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특히 북쪽 해안가에 있는 남대문 바위는 코끼리 바위라고도 불리는데, 프랑스 에트르타(Etretat)의 코끼리 바위보다 훨씬 작지만, 생김새가 얼추 닮았다.

해안둘레길을 걷다가 촛대바위를 만났다
해안둘레길을 걷다가 촛대바위를 만났다

높낮이가 별로 없는 해안 둘레길에서 그나마 ‘고비’라면 해발 90m인 신황정에 이르는 길이 유일하다. 5분 걸어 올라갔을 뿐인데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신황정 바로 옆, 바다로 향한 작은 전망대에 서면 저 멀리 영흥도도 보이고 시선 아래엔 버끈내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맑고 투명한 바다에 점점이 박힌 섬들은 해무에 가려 비현실적인 풍경을 이뤘다. 물이 빠지면 건너갈 수 있는 섬인 ‘목섬’을 향해 몇몇 여행자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탁 트인 풍경에 마음이 텅하니 비워졌다. 

승봉도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담는 방법은 해안 둘레길을 걷는 것이다. 왼쪽엔 해송, 오른쪽엔바다
승봉도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담는 방법은 해안 둘레길을 걷는 것이다. 왼쪽엔 해송, 오른쪽엔 바다

수많은 연꽃이 피어나는 연꽃 단지도 승봉도 마을의 자랑이다. 연꽃 단지 주변 파스텔톤의 집들과 하얀 교회, 하얀 성당도 사랑스럽다.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는 섬이지만, 편의점은 없어 카페인이 절실했다. 민박집 사장님께서 주신 믹스커피만으론 부족했던 나는 원두커피를 파는 해변 카페가 있다는 사실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컨테이너 박스만 한 작은 카페는 해변을 바라보고 있어 마음까지 청량해졌다. 연에 소원을 적어 날리는 체험은 서울여행산업협동조합이 마련한 승봉도의 작은 이벤트다. 순한 바닷바람 덕분에 손쉽게 날렸다. 

이일레 해변
이일레 해변

이일레 해수욕장은 승봉도의 대표적인 명소다. 길이 1.3km, 폭 40m의 너른 백사장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다. 이곳의 정서는 평화로움이다. 가만히 앉아 사색하거나, 바위틈에서 소라를 잡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충만해진다.

 

●DAY 2
자월도로의 여정


자월도는 승봉도에서 배로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선착장에 내리니 자월도 공영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섬이 꽤 크다는 뜻이겠다. 자월도는 여의도보다 약간 크다. 좌석 손잡이를 잡지 않고서는 제대로 앉아 있기 힘들 정도로 구불구불한 해안길이 이어졌다. 평생을 자월도에서만 보낸 버스 기사님은 섬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자월도의 인구는 무려(?) 1,500명이나 된다(승봉도의 10배). 하나로마트도 있고 초등학교도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는 없어서 지금 남아 있는 4명의 초등학생들은 조만간 뭍으로 유학을 보내야 한다고. 

목섬공원의 입구엔 정자가 하나 있다. 섬 앞바다와 목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다
목섬공원의 입구엔 정자가 하나 있다. 섬 앞바다와 목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다
목섬으로 연결된 구름다리
목섬으로 연결된 구름다리

자월도 최고의 명소는 목섬 공원이다. 소가 느릿느릿 풀을 뜯는 마을을 지나 빨간색으로 칠해 놓은 오르막길을 조금 오르면 목섬 공원이 펼쳐진다. 늦가을이라 코스모스가 한창이었다. 꽃 구경을 하고 구름다리를 건너니 작은 바위섬인 목섬에 닿았다. 늘 동경해 오던 새파랗고 투명한 바다가 여기에 있었다. 실제로 자월도는 수질해역 1등급 판정을 받은 섬으로, 바닷물과 갯벌의 건강성이 최고라고 한다. 

자월도 국사봉 꼭대기에서
자월도 국사봉 꼭대기에서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인 국사봉은 해발 160m밖에 되지 않지만, 중간에 짧은 깔딱고개가 있어서 숨을 고를 여유가 필요하다. “봄에 오면 훨씬 더 좋죠. 날리는 벚꽃잎 때문에 앞이 안 보일 정도니까요.” 지금도 충분한데, 봄이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다음 여정을 기약했다. 국사봉(國思峰)은 옛날에 귀양을 온 사람들이 이 산에 올라 나라를 생각하며 자신의 억울함이 하루빨리 밝혀지기를 바랐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수백 년 전 제사를 지내던 돌제단의 흔적도 아직 남아있다. 산꼭대기에 자리한 팔각정은 꼿꼿하게 서서 승봉도, 대이작도, 소이작도까지 내려보고 있다. 날이 좋으면 인천항과 대부도까지 또렷하게 조망할 수 있다.

 

자월도의 굴 같은 하루


자월도엔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를 가진 해변이 여럿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선착장에서 가까운 장골해변이다. 길이 1km, 폭 40m 고운 모래밭으로 초승달처럼 휜 모양새다. 물이 빠져 드넓은 갯벌이 드러나면 낙지, 조개, 박하지(돌게) 등을 잡기도 한다. 해변 오른쪽에는 독바위라 불리는 작은 바위섬이 있다. 썰물 때라 바닥이 드러나 걸어서 다녀올 수 있었다. 해송으로 덮인 독바위 위엔 원래 카페가 있었는데, 지금은 덩그러니 폐건물로 남아 있다. 대신 검은 가마우지 떼와 흰 갈매기들이 점령하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차라리 나은 것 같았다. 저녁 6시. 석양명소로 유명한 큰말해변을 찾아갔다. 구름 사이로 빨간빛이 새어 나오더니 금세 온 세상이 빨강이다. 황홀한 빨간 석양은 자월도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니, 일몰 시간을 확인해야 하겠다.

자월도 독바위, 썰물 때면 건너갈 수 있는 길이 드러나 모세의 기적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자월도 독바위, 썰물 때면 건너갈 수 있는 길이 드러나 모세의 기적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자월도에는 선박으로 물고기를 잡는 어부가 별로 없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한 ‘이강망어법’으로 우럭 등을 잡는다. 밀물에 밀려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에 빠져나갈 때 그물에 걸리게 하는 방식이다. 여행자들을 위한 통발 체험도 있다. 전날 민박집 사장님이 던져 놓은 통발을 직접 끌어올려 물고기를 꺼내기만 하면 된다. 활력 넘치는 게와 통통한 우럭이 나왔다. 사장님은 “그냥 라면에 넣어 먹으면 되죠, 뭐”라고 했다. 아니, 자연산 게와 우럭을 그냥 라면에 넣어 먹는다니, 섬이니까 가능한 사치다.

자월도 통발 체험
자월도 통발 체험

갯벌엔 소라와 고둥이 흔하고, 특히 굴이 지천이었다. 덜 영글었지만, “지금 먹어도 괜찮다”는 이야기에 알이 굵은 굴을 돌멩이로 내리쳐서 뽀얀 살을 입에 넣었다. 어떻게 요리해도 맛있는 굴이지만 바다에서 갓 채취한 굴 맛을 따라갈 레시피나 식당은 없을 것이다. 바다의 맛과 향이 입 안에 터졌다. 정말이지, 굴은 신비롭다. 자월도처럼 말이다.

자월도가 선물처럼 내어 준 아름다운 석양
자월도가 선물처럼 내어 준 아름다운 석양

정확히 2일을 승봉도와 자월도에서 보냈다. 3일이 되었을 때 뭍으로 나오다가 문득 돌아본 섬이 벌써 그리워지는 것은 자유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섬이었다.

   

글·사진 김진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서울여행산업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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