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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선언

  • Editor. 이우석
  • 입력 2022.12.12 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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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엔데믹 세상을 배회하고 있다. 여행이라는 유령이. 이건 엔데믹 여행 재개 원년 2022년을 축복하는 여행자 선언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사방이 막혔던 팬데믹 세상의 모든 권력, 즉 사상 유례없던 거대 감염병과 그를 막기 위한 차단막, 격리와 백신, PCR. 비대면과 국경 폐쇄가 이 유령(여행)을 사냥하기 위해 신성 동맹을 맺었다.

팬데믹이 선포된 2020년 초, 그들은 모든 교류 중 가장 실천적이며 적극적인 행위인 ‘여행’에 대해 백안(눈을 까뒤집는단 이야기)을 넘어 적대시하기에 이르렀다. 순식간에 삶의 모든 기준이 바뀌었다. 출근이 아닌 외출은 죄악이 됐고 급식이 아닌 외식은 해악 행위가 됐다. 여행은 오죽하랴. 누군가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주요한 ‘여행 행위’는 신성동맹에 의해 반동의 낙인이 찍혔다. 항공기는 격납고로 들어갔고 전동차는 차량기지에 멈춰 섰다. 방송과 신문은 여행자가 얼마나 위험한 예비 전파자인지를 알렸고, 지방도시에선 우리 마을에 오지 말라며 길을 막아서고 꽃밭을 갈아엎었다.

허나 그럼에도 유령은 죽거나 사라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미래에 공포로 패닉이 된 비대면 세상에서도 살아남았다. 여전히 유령은 온 세상을 떠돌며 일상에서 지쳐 버린 인간의 마음과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현대인의 문화는 상호 물리적으로 취한 교류의 결과물이다. 모든 물리적 교류는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여행으로부터 기인한다. 수천년 전 북해를 건너 뉴펀들랜드를 발견한 ‘북유럽 왜구’ 바이킹은 물론, 초원길을 개척한 스키타이인, 사막과 평원을 가로질러 신라까지 간 대상(caravan), 십자군 원정대가 이동을 하며 문화를 서로 섞어 유통하는 데 공을 세웠다. 한의 장건, 당의 현장, 명의 정화가 그랬고 서양에선 마르코 폴로와 마젤란이 해낸 업적 역시 매한가지다.

반대로 2년 4개월이나 지속된 단절은 인류사에 무엇을 낳았을까. 감염병의 증상보다 더 고통스러운 차단과 격리는 무심한 벽과 문으로 가로막는 것 이외엔 어떠한 관계도 남겨 놓지 못했다. 물론 많은 생명을 잘 알려지지 않은 위험 요소로부터 보호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많은 부작용이 따랐다. 증폭된 팬데믹 세상의 공포는 인간의 고유 권한인 이동권과 그로 인한 행복추구권을 편견과 힐난으로 묻어버리고자 했으며, 그 고귀한 행복을 오직 ‘덜 행복하되 아직 감염 되지 아니한 안심(고기가 아니다)’으로 대체하려 했다.

돌이켜보면 공포는 패닉이 되어 거대한 물결이 됐다. 단순한 방문과 교류의 시간조차 순전히 병균이 오가는 역학관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누군가 원했던 대로. 피순대처럼 길고 어두운 ‘여행 상실의 시대’. 이 시대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가치란 ‘미처 병에 걸리지 않은 이’들이 예비 감염자로부터 떨어져 구원을 얻고자 함일 뿐이었다. <데카메론(Decameron)>에서 10인의 남녀가 그랬던 것처럼. 


“누가 감히 여행자를 모욕하는가” 


인간의 만남이 경시되며 여행이 죄악시되던 그 암울했던 공포의 시대는 이제 가고 없다. 열흘에 한 번 생년에 맞춰 요일별로 2장씩 마스크를 구입하던 시기는 이미 잊히고 있다. 서울 8번, 경기 25번으로 임의 번호(연번)가 매겨진 사람의 동선과 생활을 고위 공무원이 언론 앞에서 세세히 밝힐 필요가 없음은 이젠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근무시간 당구장에서 회사 전화를 받을 때처럼, 클럽에서 우연히 시누이를 만난 것처럼 스스로 숨죽일 일은 이젠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세계적으로 감염병에 의한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하지만 감염의 공포는 그보다 더 많은. 그러나 ‘보이지 않는 희생자’를 양산했음도 기억해야 한다. 일상의 회복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 고민할 때다.

2년 전 세계보건기구의 누군가가 말했다. 다시 이전 세상은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당연히 맞았다, 그의 말은. 사실 태곳적부터 세상 이 그 이전으로 돌아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태양계의 생성 이후부터 지구는 늘 반시계 방향으로 자전을 하고 역시 그 방향으로 공전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전과 다른 세상이 왔다. 지금 이 순간도 첫줄 을 읽을 때와는 다른 시간이다(속독법을 배웠대도 마찬가지다). 한없이 가라앉았다면 수영장 바닥에 발을 딛고 다시 튀어 오를 시점이다. 반등을 꿈꾸며 이를 행하려는 이들에게 더 이상 입맛대로 멈춤을 강요하고 억압할 수 없다. 힐난할 수도 없다. 무엇이 그리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그게 식사든 술자리든 여행이었든, 심지어 오랜만에 핼러윈 나들이었든 간에 말이다.

빛바랜 공포의 몰락은 곧 해방과 자유를 불렀다. 국물을 떴다고 자국이 남지 않는다. 하지만 국은 줄어든다. 필자도 독자도 2년 4개월 동안 나이를 먹고 말았다. 이제 곧 곳곳에 여권이 펄럭이고 여행단 깃발이 나부끼는 세상이 온다. 몰아쳐 나가야 한다. 이젠 좀 더 열심히 여행하리라. 여행자에게 숙박은 있을지언정 속박은 없다. 그 어떤 정착인보다 자유롭다는 것을 인지하라. 이제 해방된 여행자에게 단결을 요구한다. 여행 방해 요인에 대해 결코(광각으로 사진을 찍을 때를 제외하고) 물러서지 않는다. 분연히 떨쳐 일어서야 한다(체크아웃 시간 전에는 꼭). 어깨를 걸고 나가리라. 배낭과 륙색 (Rucksack)에. 박물관에서라면 여행자의 발걸음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핸드폰 진동 모드로). 여행자가 잃을 것은 경비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다.

 

나는 선언한다. 이전에도 지금도 그렇듯, 앞으로도 영원히 ‘여행자’일 것임을. 만국의 여행자여, 당장 짐을 싸고 떠나라! 


여행이 재개된 엔데믹 원년의 마지막 달에, 여행자 선언. 


글·사진 이우석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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