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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부여 문학여행'

  • Editor. 김민형
  • 입력 2023.02.13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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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보단 알맹이를 추구했던 삶. 
신동엽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부여를 탐닉했다.

껍데기는 가라
시인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醮禮廳)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시인이 살았던 생가
신동엽 시인 생가

밤사이 내린 눈으로 부여는 하얀 얼룩이 가득했다. 영하 3도. 입김을 내뱉으며 부여 읍내를 걸었다. 저 멀리 눈 덮인 초가집 두 채가 보인다. 신동엽 시인이 살았던 생가다. 1930년에 태어나 일제 식민지, 전쟁, 분단의 아픔, 지도자의 독재를 견뎌 낸 그가 39년 짧은 인생 중 가장 오래 머무른 장소다. 1987년 초가집으로 복원된 신동엽 생가는 2년 뒤 기와지붕으로 한차례 모습을 바꾸었다. 이후 2021년, 다시 초가집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신동엽 시인은 생애 대부분을 이곳에 머물며 작품을 구상하고 창작했다. 생가 주변은 현재 ‘신동엽길’로 불린다. 460m 정도 되는 골목인데, 실제로 신동엽 시인이 자주 거닐었던 골목이다.

신동엽 시인은 1959년,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며 본격적인 시인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1961년부터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교편을 잡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대개 반민족 세력에 대한 저항이 강하다. 동시에 평화와 평등을 주장한다. 1960년대 김수영 시인과 더불어 ‘참여시’의 세계를 펼쳤다. 참고로 참여시는 문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발상 아래 창작되는 시다. 신동엽 시인의 대표작으로는 ‘껍데기는 가라’. ‘금강’, ‘4월은 갈아엎는 달’ 등이 있다.

저벅저벅. 눈 위를 거닐어 초가집으로 향했다. 일평생 신동엽 시인이 시를 집필했던 방이 눈앞이다. 은은한 겨울 햇살이 문지방 너머 방까지 드리우고 있었다. 신동엽 시인과 같은 장소에 머물며 상상했다. 과연 그는 어떤 생각으로, 어떤 기분으로 이곳에서 펜을 쥐었을까. 차갑고도 서정적인 겨울바람의 향기만 가득했다.

초가집 뒤편으로는 너른 잔디밭과 감나무도 보인다. 그리고 신동엽 시인과 같은 부여 출신인 ‘임옥상 화백’의 설치미술 작품 ‘시의 깃발’도 보인다. 신동엽 시인의 시 문구를 바람에 나부끼는 독창적인 형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 예술을 창조하는 공간 
신동엽문학관

신동엽 시인의 생가 바로 뒤편, 신동엽문학관이 자리한다. 신동엽문학관은 약 1,980m2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1층, 옥상과 정원으로 구성된 현대적인 건축물이다. 특히 지상 1층은 유족이 직접 기증한 신동엽 시인의 육필 원고와 700점이 넘는 손편지, 수많은 사진과 책이 전시되어 있다. 신동엽 시인의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는 거대한 보물상자인 셈이다.

신동엽문학관은 ‘승효상 건축가’의 작품이다. 시인의 ‘시 정신’에 부합하는 조형물은 어떤 것인지, 문학관이 갖추어야 할 내용은 무엇인지. 오랜 고민 끝에 탄생한 공간이다. 덕분에 신동엽문학관은 부여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힌다. 

신동엽문학관은 견학과 쉼의 조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공간이다. 전시실에서 문만 열면 바로 잔디밭이 펼쳐진다. 옥상까지 이어진 길에는 11점의 설치미술 작품이 곳곳에 숨어있다. 휴식이 필요할 때는 1층에 위치한 북카페를 이용하면 된다. 2021년 리모델링을 거친 북카페는 고즈넉한 인테리어와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감미롭다. 이곳에서 신동엽 시인의 책은 물론이고,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책을 읽을 수 있다. 

●신동엽 시인과 함께 걷는 시간
꽃담길

신동엽 생가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동남리 마을회관’은 신동엽길에서 가장 높은 곳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마을회관 옆길로 ‘꽃담길’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좁은 골목길엔 신동엽 시인의 시 문구와 그림이 가득하다. 그는 어린 시절 이 골목에서 금강을 바라보며 대표작 ‘서사시 금강’을 집필했다. 아름다운 풍경은 좋은 작품의 밑천이다.

꽃담길 입구에 들어서자 ‘꽃담’이라고 쓰인 담벼락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마침 눈발도 흩날리기 시작해 분위기마저 감성적이다. 발걸음을 옮기며 그의 시를 읊어 본다. 
신동엽 시인이 평생 시를 통해 이야기한 이상향은 몇 가지 단어로 추릴 수 있다. ‘평등, 평화, 그것을 위한 저항’. 간결하지만 간절한 단어들이다. 어쩌면 신동엽 시인의 시가 아직까지 가슴에 남는 이유는 시인이 그토록 부르짖던 세상이 아직 찾아오지 않아서 아닐까.

담벼락 위, 앙상한 겨울철 나뭇가지가 쓸쓸하게 느껴진다. ‘꽃담길’의 마지막은 가파른 계단으로 끝이 난다. 마지막 벽에 쓰인 시는 당연히도 그의 가장 대표작, ‘껍데기는 가라’. 

 

●푹신푹신 고소한 식빵의 반란
갓식빵

꽃담길 끝자락에 닿으면 고소한 향기가 풍긴다. ‘갓식빵’의 냄새다. 테이블 10개가 채 되지 않는 아담한 규모의 빵집이지만, 맛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루 4번, 식빵을 굽는다. ‘갓식빵’은 이름답게 오직 식빵만 판매한다. 대표 메뉴는 ‘갓크림식빵’. 우유와 통밀을 재료로 만든 식빵이다. 생크림도 가게에서 직접 만든다. 포크로 식빵을 찍어서 생크림에 푹 담갔다가 입으로 가져간다. 달달함과 고소함이 입 안에 퍼진다. 거기에 적당히 산미가 느껴지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면 금상첨화.  

 

글·사진 김민형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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