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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의 봄

  • Editor. 강화송 기자
  • 입력 2023.05.0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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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을 다녀왔다. 으레 여행기사라면 적어야 할 것들을 끄적이고 있자니 머릿속에 가시가 돋친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루앙프라방은 동네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루앙프라방은 라오스의 수도가 비엔티안으로 정해지기 전까지 라오스의 중심지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루앙프라방은 그런 도시이기도 한데, 이곳을 여행한 나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다. 봄을 겨울 다음의 계절이라고만 묘사하기에는 수많은 다정함과 따뜻함을 외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봄에 핀, 루앙프라방의 꽃을 바라보았다.

●탁발, 루앙프라방의 아침

루앙프라방의 이른 새벽. 말이 좋아 새벽이지, 아직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밝은 밤. 탁발 시주를 위해 길목 모퉁이에 쪼그려 앉았다. 탁발(托鉢)은 불교 승려의 수행 방식이다. 승려가 사용하는 식기를 ‘발우(鉢盂)’라고 한다. 승려들은 이 발우를 들고 마을로 나가 주민들에게 음식을 얻음으로써 개인의 아집을 없애고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사실 탁발은 불교국가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그중 루앙프라방의 탁발이 가장 유명한데, 650년간 지속해 온 지역의 행사이기도 하고 탁발 행렬의 규모가 가장 크다. 

저기, 황색 장삼(長衫)을 두른 어린 수행자가 발우를 들고 다가온다. 앳되다. 많아야 8살쯤. 얼굴을 보니 눈이 반쯤 감겨 있다.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기엔 아직 고달플 만한 나이다. 찰밥 한 주걱을 발우에 건네도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초콜릿바를 시주하니 그제서야 눈을 맞춘다. 좋은가 보다. 나도 좋다. 탁발을 마친 승려와 수행자들은 서둘러 사원으로 향한다. 시주 받은 재료들로 아침상을 차려야 하기 때문이다. 어른 승려가 앞서 나가고 어린 수행자들은 발 보폭을 맞추려 쫄래쫄래 안간힘이다. 어디서 나온 놈들인지, 동네 개 열댓 마리가 탁발 행렬의 뒤를 따른다. 저러면 떡이라도 나오는 모양이다.

탁발은 그 행위 자체로 경건하다. 그리고 소통적이다. 탁발은 승려만 하는 것이 아니다. 동네 사람과 여행자가 함께하는 것이다. 라오스 남자들은 특정 기간이 되면 의무적으로 사원에 머물며 불교 경전을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라오스의 사원에 가면 어린이 수행자와 청소년 수행자가 가득하다. 동네 아이들이 황색 장삼을 두르고 집 가까운 사원에 들어가 수행하는 것이다. 동네 어머니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차려 온 각종 먹거리를 지고 새벽 거리로 나오는 것이 이해가 된다. 어르신 승려에게는 어린 수행자를 잘 부탁하는 마음으로, 어린 수행자에게는 자식을 돌보는 마음으로.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고마움뿐이라, 더 어여쁘게 동이 터 온다. 아직 아침은 아니다.

왓 시엥통(Wat Xiengthong)
왓 시엥통(Wat Xiengthong)

루앙프라방에는 약 50여 개의 사원이 있다. 이중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히는 곳은 ‘왓 시엥통(Wat Xiengthong)’이다. 왓 시엥통은 ‘황금도시의 사원’이라는 뜻인데, 사원의 분위기가 이름과는 사뭇 다르다. 왜인지 나른하다. 방콕의 왕궁,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같은 곳에서 느꼈던 장엄함은 없다. 시골집 할머니 댁에 와 있는 기분이다. 루앙프라방의 사원에서 밥 냄새가 폴폴 나기 시작하면, 비로소 아침이 밝는다.

메콩강의 아침. 그 누렇던 메콩강도 아침 햇살에 물들긴 한다
메콩강의 아침. 그 누렇던 메콩강도 아침 햇살에 물들긴 한다

●루앙프라방에서 할 수 있는 것

루앙프라방은 유독 같은 사람을 자주 마주치게 되는 여행지다. 도시가 크지도 않고 딱히 둘러볼 곳도 마땅치 않아서다. 어느 동남아시아의 여행지처럼 사원과 불상이 있다. 사원과 사원 사이를 잇는 시사방봉 로드(Sisavangvong Road)의 양옆으로는 프랑스식 낡은 목조건물이 야트막하게 늘어서 있다. 저녁이면 이 길목 사이로 야시장이 펼쳐진다.

특별한가 싶은데 둘러보다 보면 그게 그 물건이다. 그나마 라오스 소금이 특별하다.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접하지 않는 나라가 바로 라오스다.그런데 소금을 자체적으로 생산한다. ‘콧사왓(Khok Saath Wat)’이라는 마을의 지하수가 간수로 되어 있어 가능한 이야기다. 지하수를 끓여 만드는 소금을 암염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히말라야 핑크솔트가 암염이다.

어쨌든 이 암염을 봉지에 넣어 루앙프라방 야시장에서 판다. 현지에서 땀을 너무 흘려 소금을 그 자리에서 모조리 섭취할 게 아니라면 구경만 하자. 출국 시 공항에서 전부 압수당한다. 완제품인 소금만 반입할 수 있다. 봉투에 든 소금은 안 된다. 어찌 이리 잘 알고 있느냐면, 직접 경험해 봤다. 

푸씨산으로 오르는 328개의 계단. 세어 보진 않았다. 그럴 생각도 못했고
푸씨산으로 오르는 328개의 계단. 세어 보진 않았다. 그럴 생각도 못했고

루앙프라방에는 자연이 있다. 루앙프라방 올드타운 정중앙에서 솟은 푸씨산(Mount Phousi), 그리고 그 산을 감싸는 메콩강과 칸강. 이 두 개의 강은 뭐랄까…, 도대체 뭐가 살긴 하는지, 그보다 살아갈 수는 있는지 모를 색이다. 끓이다 졸고 졸은 팥죽색의 강이다. 1시간쯤 외곽으로 달리면 옥빛의 꽝시폭포(Kuang Si Falls)가 나온다. ‘꽝시’는 사슴을 뜻한다. 먼 옛날 사슴이 이곳을 들이받아 폭포가 생겼다는데, 한문철 변호사도 감동할 만큼 완벽하게 들이받아 놨다. 

루앙프라방 밤부브릿지를 건너는 승려. 매년 건기마다 새로 만드는 다리다.
루앙프라방 밤부브릿지를 건너는 승려. 매년 건기마다 새로 만드는 다리다. 우기에는 나무가 떠내려가 이용할 수 없다.

루앙프라방에서 큼직한 볼거리는 이게 전부다. 어슬렁어슬렁 돌아보다 남는 시간이면 별수 있을까. 귀찮지만 다리도 꼬아 보고, 눈도 질끈 감았다가, 하품도 하고. 그렇게 틈틈이 뒤척이다 보면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땐 왜 그랬는지, 앞으론 어떻게 살 건지. 루앙프라방의 그때를 회상하니,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누리는 휴식은 적금 같은 건가 싶기도 하다. 행복해 본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행복해질 수는 없다. 그래서 부지런히 겪어야 한다. 루앙프라방은 그러기 좋은 곳이고. 

●루앙프라방 탐험의 시작점
Avani+ Luang Prabang Hotel


‘아바니플러스 루앙프라방’은 방점을 ‘루앙프라방’에 찍었다. ‘아바니플러스’라는 호텔 브랜드의 이미지보다 ‘루앙프라방’이라는 지역의 이미지가 더욱 돋보이는 호텔이다. 이곳은 과거 프랑스 장교 막사로 사용되었던 네오클래식(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을 개조해 재탄생한 호텔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방콕 기반의 건축가인 ‘파스칼 트라한(Pascal Trahan)’이 참여했는데, 단순함과 우아함에 초점을 맞춰 개조를 진행했다고 한다. 

2층 건물에 총 53개의 객실을 마련했다. 호텔의 중심에는 수영장이 있다. 건물이 워낙 야트막해서 그림자가 없는 수영장이다. 다행히도 수영장 옆쪽으로 거대하게 뻗은 반얀나무가 하늘을 드리운다. 일정 부분을 루앙프라방 자연에 기댄 공간이라 듬직하다.

객실 내부는 겉모습과 다르게 의외로 현대적이다. 흰색 리넨 커튼으로 욕실과 침실을 구분한 것이 인상적이다. 유하고 보드랍다. 커튼, 바구니, 종이 등 객실 내 사용되는 다양한 집기와 가구는 지역 공예가들의 수제품으로 구성했다. 이 호텔의 핵심 가치는 로컬 커뮤니티와의 상생이다. 수영장 건너편 자리한 데일리 레스토랑 ‘메인 스트리트 바 & 그릴’에서는 지역 농장과 어부로부터 식자재를 공수해 클래식 비스트로 & 라오스 요리를 선보인다. 

호텔 초입에는 ‘아난타라 스파’도 위치한다. ‘아바니플러스’와 ‘아난타라’는 태국에 본사를 둔 ‘마이너 호텔 그룹’의 자체 브랜드다. 투숙객이라면 자전거도 무료로 대여할 수 있다. 이른 아침 메콩강을 따라 30분 정도면 루앙프라방 올드타운을 전부 돌아볼 수 있다. 이외에도 아난타라 스파 옆에 자리한 ‘메콩 킹덤스(Mekong Kingdoms)’를 통해 크루즈를 예약하면 꽝시폭포, 빡우동굴(Pak Ou Caves) 등 루앙프라방의 유명 관광지를 한번에 둘러볼 수 있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Avani+ Luang Prabang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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