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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메리고라운드, 루르몬트 아웃렛

DESIGNER OUTLET ROERMOND

  • Editor. 곽서희 기자
  • 입력 2023.06.01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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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란 놀이공원에서 타고 싶은 회전목마를 만났다.


●회전목마와 아웃렛의 상관관계


어떤 아웃렛은 회전목마와 같아서 회전을 거듭할수록 유희의 크기도 커진다. 입장과 동시에 설레는 마음. 명품부터 로컬 브랜드까지 원하는 목마 위로 올라타는 재미. 빙글빙글 도는 동안 달라지는 풍경. 활력과 동력이 번갈아 오르내리는 순간. 이 세상에 ‘좋은’ 아웃렛이란 게 있다면, 나는 회전목마 같은 아웃렛일 거라고 생각한다. 네덜란드란 놀이공원에서 그런 회전목마를 만났다. 

좌 벨기에, 우 독일 그리고 네덜란드의 남쪽. 그 트라이앵글 속, 루르몬트 아웃렛(Designer Outlet Roermond)이 있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방문 고객 순위도 1위부터 주르륵 이 세 국가다. 그중 1위는 독일. 네덜란드에 있지만 독일과 더 가까워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루트로 방문한다. 독일 뒤셀도르프 공항 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센트럴 역에서 출발. 전자는 차로 45분, 후자는 기차로 2시간 내면 아웃렛 입구의 ‘Welcome’ 간판 앞에 닿는다. 

회전목마와 분수대는 늘 아이들로 넘쳐난다
회전목마와 분수대는 늘 아이들로 넘쳐난다

회전목마는 놀이공원에서 가장 쉬운 놀이기구 중 하나다. 고요하고 안전하며 대부분 키 제한이 없다. 남녀노소 누구나 탈 수 있는, 모두의 놀이기구랄까. 루르몬트 아웃렛도 그렇다. ‘쉬운 아웃렛’이라는 건 결코 방정맞거나 저급하단 얘기가 아니다. 저 위에 올라서서 고고한 척하며 소비의 문턱을 높이는 대신, 아이부터 어른, 심지어 반려동물들까지도 마음껏 쇼핑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낮췄단 얘기다. 아웃렛 곳곳에는 놀이터와 반려동물용 개수대가 있다. 매장들 사이로는 레스토랑과 카페, 쉴 수 있는 벤치들이 잊을 만하면 나타난다. 지루했던 아이들은 분수대로 뛰어가고, 쇼핑에 지친 어른들은 커피잔을 든다. 루르몬트 아웃렛은 제 몸을 낮춰 쇼퍼들에게 기꺼이 올라타 즐길 수 있도록 등을 내어 줄 줄 안다.

루르몬트 아웃렛에선 모두가 저마다 쇼핑백을 들고 있다. 득템 성공의 증표다
루르몬트 아웃렛에선 모두가 저마다 쇼핑백을 들고 있다. 득템 성공의 증표다

위치와 접근성, 둘 다를 갖춘 아웃렛에겐 수치가 곧 인기의 증표다. 연간 방문객 약 830만명. 한 해 동안 판매되는 제품 수만 무려 2,700만여 개다. 루르몬트 아웃렛은 1년에 단 이틀, 1월1일과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고 연중무휴다. 평일 기준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10시간. 그러니까 1년을 363일로 단순 계산했을 때, 하루에 약 7만4,000개, 분당 123개의 제품이 팔리고 있는 수준. 

인상적인 수치지만 사실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 180개가 넘는 입점 브랜드들 리스트만 훑어봐도 취향 저격 제대로다. 몽클레르, 프라다, 산드로, 롱샴 등등 이름을 일일이 읊어 봤자 쇼퍼들이 으레 기대하는 모든 브랜드는 다 있으니 별 의미 없고…, 폴로와 버버리를 주목할 만하다. 둘 다 유럽에서 가장 큰 매장이 입점해 있다. 구찌도 암스테르담 매장을 제외하면 네덜란드에서 오직 이곳에만 있다. 오프 화이트는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룩셈부르크 4개 국가를 합쳐 유일무이한 독립형 매장이 들어서 있다. 최근엔 크록스와 뉴발란스가 리노베이션을 거쳤고, 무스탕도 신규 오픈했다. 

구석구석 포토존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있다
구석구석 포토존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있다

아웃렛의 매력도를 결정하는 첫 번째 요인이 브랜드 믹스라면, 둘째는 역시 가격이다. 루르몬트 아웃렛에선 연중 30~70%에 이르는 세일가에 일부 품목엔 추가 10% 할인을 받을 수 있는 패션 패스포트 쿠폰이 적용된다. 한 매장에서 50유로 이상만 구매하면 택스리펀도 오케이. ‘세일+쿠폰+택스리펀=반값에 득템’. 대략 이런 공식이 성립된다. 게다가 센터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는 택스리펀 서비스에 핸즈프리 쇼핑, 무료 와이파이, 해외 고객을 위해 때마다 열리는 프로모션까지, 쇼퍼들이 뭘 원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느낌이다. 한 마디로, 돈 쓸 맛 난다.

아웃렛 어디든 벤치가 있다. 쇼핑하다 지칠 때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아웃렛 어디든 벤치가 있다. 쇼핑하다 지칠 때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그러니 루르몬트 아웃렛에서 같은 매장을 한 번만 가는 일은 거의 없다. 돌아서면 눈에 밟히는 제품들이 너무 많아서다. 비교하고 고민하고 다시 둘러보고 마침내 결제에 이르는, 그 선택의 굴레가 곧 쇼핑의 재미 아닌가.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가 다시 반시계 방향으로 턴. 들어 본 가방, 입어 본 옷인데 또 보고 또 입어도 새롭다. 쇼핑이 주는 순수한 기쁨이다. 

루르몬트 아웃렛에선 누구나 잠시 동안 아이가 된다. 나는 간절기용 폴로 자켓과 빅 로고의 오프 화이트 티셔츠를 손에 든 아이가 됐다. 자, 다음은 어떤 목마에 올라타 볼까. 또다시 고민을 시작해 본다. 놀이공원에 폐장 시간이 찾아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무리 돌고 돌아도 지루하지 않을, 쇼핑 메리고라운드에서.

●MOUTH OF THE RIVER
고요한 입
루르몬트

보통의 아웃렛은 도심과 떨어져 있는데, 루르몬트 아웃렛은 특이하다. 입구 밖을 나서면 바로 루르몬트 시내다. 쇼핑과 관광 둘 다를 너무나 쉽게 즐길 수 있다. 근데 거참, 이름 한번 낯설다. 루르몬트 또는 로어몬드. 로어(roer)는 강, 몬드(mond)는 입. 직역하면 ‘강의 입’이다. 네덜란드 남동부, 뫼즈(Meuse)강과 루르(Ruhr)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두 강이 흐르는 곳이다 보니 도시 어딜 가나 물이 있다. 오래된 돌담 곁으로 물살이 흐른다 싶으면 여지없이 호수 아니면 강이다. 마치 모든 걸 꿀꺽 집어 삼켜 버릴 듯한 이름인데, 실제론 정반대다. 고요하고 젠틀하다.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다. 나이 지긋한 노신사를 닮았다. 8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지닌 중세 도시답게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이라든지 17세기 시청, 1,000년의 세월을 품은 고딕 양식의 교회 같은 것들이 무심히 자리를 지킨다. 늘 그곳에 있었으니 야단 떨 것 없다는 듯, 요란하지 않게. 이런 게 연륜일까. 루르몬트를 여행하는 법 역시 특별할 게 없다. 구글 맵을 잠시 끄고 설렁설렁. 야단 떨 것 없이, 한적하게. 그거면 된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맥아더글렌 디자이너 아웃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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