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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첫사랑처럼, 보라카이 

  • Editor. 나보영
  • 입력 2023.07.07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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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카이로 떠났다.
바다를 바라보았고,
다시금 여행의 기쁨을 느꼈다.

●생애 첫 여행인 것처럼

필리핀 ‘칼리보(Kalibo)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칼리보에서 보라카이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배를 한 번 더 타야 한다. ‘까띠끌란(Caticlan) 항구’로 이동하면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보라카이에 도착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디스커버리 쇼어 보라카이(Discovery Shores Boracay)’ 리조트. 열대 과일 향이 감도는 웰컴 드링크, 침대 위에 귀여운 동물 모양으로 접어 둔 수건, 앙증맞은 곰 인형 웰컴 기프트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휴양지의 모습이다. 객실의 발코니 너머로 수영장과 해변이 내려다보인다. 이런 풍경은 수없이 봐도 질리지 않고, 매번 설렌다. 저녁 식사까지 두 시간쯤 남짓, 뭘 할까 생각하다가 카메라를 메고 해변으로 나섰다. 

해변의 이름은 ‘화이트 비치(White Beach)’. 이름대로 눈처럼 새하얀 모래와 눈부신 바다가 이어졌다.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고 있었는데 리조트의 해변 바, ‘샌드 바(Sand Bar)’의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코로나 기간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 그런지 바다가 더 깨끗해졌어요. 어제까지는 비가 왔는데 오늘부터 하늘도 아주 맑네요. 손님에게 행운이 있나 봐요.” 어느덧 석양이 저물기 시작했다.

●익숙한 이름, 새로운 시작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선라이즈 바이크 투어(Sunrise Bike Tour)’. “코로나 이후에 새로 생긴 투어에요. 뉴 코스트(New Coast) 지역에 있는 벨몬트 호텔 보라카이(Belmont Hotel Boracay)에서 운영하는 액티비티죠. 해 뜨기 전에 자전거 라이딩을 시작해서 키홀 비치(Keyhole Beach) 일대의 작은 해변을 따라 달리면서 해돋이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어제부터 함께 해 온 현지 가이드 ‘후아니또’가 말했다.

한 명씩 차례대로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으며 출발!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보라카이의 대표적인 이동 수단인 전기 트라이시클(Tricycle)에 올랐다. 양옆이 트인 삼륜차, 트라이시클에서 느끼는 시원한 바람이 왠지 조금 더 청량한 듯했다.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키홀 비치 주변을 50분쯤 달린 후, 마지막으로 자그마한 해변에 닿았다. 어느덧 태양이 바다 위로 쑥 올라와 있었다. 자전거와 함께 맞이하는 뜨거운 일출의 열기는 보라카이가 아니라면 알 턱이 없었을 경험이리라. 

●세상에 똑같은 바다는 없다

섬나라 휴양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호핑 투어(Hopping Tour) 아닐까? 배를 타고 작은 섬들을 둘러보며 중간에 바다 한가운데에서 스노클링도 하고 현지 요리도 맛보는 건 바다가 있는 곳에서만 가능한 일이이니까. 보라카이의 호핑 투어는 보통 크로커다일 섬(Crocodile Island), 일릭 일리간 비치(Ilig Iligan Beach), 코랄 가든(Coral Garden), 푸카 비치(Puka Beach), 윌리스 락(Willly’s Rock) 등을 둘러보도록 짜여 있다. 

먼저 수심이 얕아 카약을 타기 좋은 ‘푸카 비치’로 출발했다. 그곳에는 투명한 크리스털 카약이 바다를 메우고 있었다. 능숙한 조종자는 힘차게 노를 저었고, 중간에 승객들의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투명한 바닥으로 푸르른 보라카이의 파도가 연신 일렁였다.

푸카 비치를 떠나 조금 더 달리니, ‘일릭 일리간 비치’ 인근의 바다에 닿았다. 보트를 정박하고 스노클링을 시작했다. 얕은 바다로 자그마한 물고기들이 모였다가 사라지곤 했다. 낮은 수심에도 이렇게 귀여운 생물들이 많은데, 심해에는 얼마나 다양한 수종이 살고 있을까?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목마르다 싶을 때쯤 코코넛을 가득 실은 수상상인이 노를 저으며 다가왔다. 뭐든 먹어봐야 아는 법이다. 커다란 마체테로 즉석에서 자른 코코넛을 들이켰다. 짭조름하고 시원한 과즙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뜨거워졌던 몸이 조금은 식는 듯했다. 

다시 바람을 가르며 달려 도착한 곳은 ‘크로커다일 섬’ 근처의 바다였다. 이곳도 스노클링 포인트 중 하나였지만, 이번에는 배 난간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기로 했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바닷바람을 맛봤다. 습기를 머금은 열기, 짭조름한 바다 내음, 열대 식물의 향이 어우러진 바람이 달큼하고 끈끈했다. 

호핑 투어의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 ‘탐비산 비치(Tambisaan Beach)’에 들렀다. 그늘이 드리워진 야외 테이블에 소담한 현지 요리들이 준비돼 있었다. 고슬고슬한 안남미, 돼지고기구이 꼬치, 새우와 조개 등의 해산물 구이, 채소볶음 등을 바나나 잎 채반에 담으니, 현지인 친구 집에서 친구 어머니가 담아준 음식인 것처럼 정감 있어 보였다. 시원한 코코넛 즙과 함께 점심을 먹고 나니 새벽부터 시작된 하루가 더 길고 넉넉하게 느껴졌다. 

섬을 나와 배가 시동을 걸자,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있던 소년들이 배 난간을 잡고 매달렸다. 그 개구쟁이들은 달리기 시작하는 배의 속도를 그런 방식으로 즐기는 듯했다. 적당한 시기에 손을 놓고 배를 바라보는 소년들을 향해 손을 흔들자,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꺄르르 웃는다. 본 섬으로 돌아오는 내내 소년들을 대신해 태양이 우리를 따라 함께 달렸다. 언제까지라도 곁에 있을 것처럼.

●바다가 해를 집어삼키는 시간

해가 뉘엿하게 저물어갈 무렵, 보라카이 여행 중 가장 기대했던 ‘파라우 세일링(Paraw Sailing)’을 즐기러 나섰다. 필리핀 전통 무중력 세일링 보트에 올라, 바람이 이끄는 대로 해 질 녘의 ‘술루해(Sulu Sea)’를 누빌 생각을 하니 기분이 들떴다. 항구로 나아가 커다란 돛을 단 배들이 해를 향해 늘어선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진 건 왜일까. 다리까지 물이 차오르는 바다로 나가 드디어 배에 올랐다. 대나무를 비롯한 목재로 된 야트막한 선채의 날개에 앉자 바닷물이 찰싹거리며 몸을 적셨다.

돛을 편 배는 햇살을 항해 유유히 나아갔다. 바다와 하늘은 언제나 그렇듯 무척 예뻤다. 여행을 다니면서 정말 많은 바다와 하늘을 봤지만, 똑같은 바다나 하늘은 단 하나도 없었다. 보라카이의 바다는 에메랄드색으로 시작해서, 터키석과 코발트블루를 지나, 바이올렛 빛으로 번져갔다. 조용히 바다에 취했다. 돛이 방향을 바꾸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하늘과 바다가 주는 따스한 빛에 마음을 맡겼다. 배에서 내린 뒤에도 누구 하나 서둘러 돌아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보라카이는 여행이 일이기도 한 나에게 순수한 여행자로서의 기쁨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여행지였다. 마치 다시 만난 첫사랑처럼.

 

글·사진 나보영 취재협조 필리핀관광부, 필리핀관광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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