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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절정, 거문도로 떠나다

  • Editor. 김민수
  • 입력 2023.10.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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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는 마음만 먹으면 찾아갈 수 있는 섬이 아니다. 초봄부터 가을까지는 관광객이 집중적으로 몰려 배편 예약이 쉽지 않다. 동계에는 잦은 기상악화 탓에 결항률이 높아진다. 만만치 않은 계절의 틈새를 노리던 어느 가을날. 인파를 비집고 절정에 달한 계절을 찾아 거문도로 떠났다.

서도와 동도를 잇는 교량, 길이 560m의 거문대교
서도와 동도를 잇는 교량, 길이 560m의 거문대교

●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거문도

거문도는 동도, 서도, 고도라는 이름을 가진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도와 서도는 삼호교로 서도와 동도는 거문대교로 이어져 있어 하나의 생활권역을 이룬다. 그럼에도 그중 행정과 생활 편의시설의 대부분은 고도에 집중되어 있다. 여객선도 고도에는 매일, 동도와 서도에는 격일로 번갈아 가며 기항한다. 고도의 분위기는 마치 육지의 이름난 항구 못지않다. 모텔과 민박 그리고 식당들이 즐비하고 명절을 앞둔 시장처럼 시끌벅적하다. 

거문도의 가을은 동백 꽃봉오리가 나뒹구는 숲속에도 있다
거문도의 가을은 동백 꽃봉오리가 나뒹구는 숲속에도 있다

거문도 3개의 섬은 ‘도내해’라고 하는 해역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천혜의 항만을 만들어 냈다. 큰 배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자연적 조건 때문에 거문도는 일찍이 어선과 무역선들의 피항지였으며, 19세기 말에는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기도 했다. 백도는 거문도의 동쪽으로 28km 거리에 있는 작은 섬 군락으로 형형색색의 기암과 해안절벽이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국가 지정 문화재로 자연생태와 환경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거문도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필수 코스로 알려져 있다.

서도지맥은 능선 곳곳에서 거문도 비경을 만나는 걷기 길이다
서도지맥은 능선 곳곳에서 거문도 비경을 만나는 걷기 길이다

●걷는 자의 차지

동도는 거문도 최고봉인 망향산(247m)을 자랑하고 있지만, 등산로가 완비되지 않아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쉽지 않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서도의 양 끝에는 거문도등대와 녹산등대가 있다. 두 등대 사이 녹산, 음달산, 불탄봉, 보로봉(전수월산), 수월산을 이어 ‘서도지맥’이라 하는데, 이는 거문도가 자랑하는 대표 트레킹 코스다. 서도지맥을 종주하려면 섬 북단의 장촌부락에서 출발해 거문도등대까지 대략 7시간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트레커들은 삼호교를 건너 고도로 들어와 덕촌리 마을회관 옆 동백연립을 시작점으로 해 거문도등대까지 이어지는 4~5시간의 코스를 가장 선호한다. 여객선 도착과 숙박시설이 많은 고도까지 돌아오는 동선 및 시간을 고려한 결과다.

고도는 거문도를 이루는 세 섬 중 가장 작은 섬이다
고도는 거문도를 이루는 세 섬 중 가장 작은 섬이다

덕촌마을에서 불탄봉 정상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섬 산 트레킹은 해발 0m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초입이 가장 어렵고 힘이 든다. 하지만 일단 봉우리에 오르고 나면 길은 섬 능선을 타고 편안하게 이어지기 마련이다. 불탄봉은 과거 일본군의 벙커가 있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들이 쏜 포탄이 떨어져 불이 났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청명한 가을날, 불탄봉 전망대에 서면 동도와 고도는 물론이고 거문대교 너머 초도와 손죽도의 모습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햇살에 파닥이는 억새 군락을 지나면 걸음은 다시 동백나무 터널로 들어선다. 이른 동백 두 송이가 떨어져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동백이 만개하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시각적 즐거움은 때아닌 계절 속에도 있다. 

숲 터널 끝점의 촛대바위는 능선 길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다
숲 터널 끝점의 촛대바위는 능선 길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다

촛대바위는 숲 터널이 끝나고 본격적인 섬 능선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이정표다. 능선길은 보로봉으로 이어지는 남쪽 해안의 절벽을 타고 흐르지만 안전하게 정비되어 있어 걷기에 편안하다. 결국, 거문도에서 가장 넓은 하늘과 바다는 걷는 자의 차지가 되었다.

 

▶잠깐! 섬 여행 깨알 에피소드 
섬 가게의 애환

덕촌리 마을의 골목은 크고 작은 가옥과 가옥 사이를 따라 조밀하게 이어져 있었다. 이정표를 살피고 길을 따라나서려는데 어귀에 외관부터 세월의 묵은 때가 자잘한 가겟방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라면을 달라고 하자 봉지를 이리저리 살피시더니 오히려 내게 물으신다. “이건 얼마쯤 하는가?” 라면의 유통기간이 살짝 의심되기는 했지만 “1,500원쯤 받으시면 될 것 같은데요” 하고 대답했다. 라면과 생수 한 병을 사고 적당히 돈을 치른 후 나서려는데 문득 어느 섬, 작은 가게에서 구매했던 탄산음료가 생각났다. 탄산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던 음료수의 유통기간은 무려 2년이나 지난 것이었다. 물건을 들여와도 언제 팔릴지 알 수 없는 섬 가게의 애로를 알기에 한참을 웃고도 먹먹함이 남았던 기억이다.

서도지맥 돌담은 능선 길을 이뤄낸 노고의 흔적이다
서도지맥 돌담은 능선 길을 이뤄낸 노고의 흔적이다

●해안 절경을 지나 거문도등대까지

돌집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기와집 ‘몰랑’의 정상이다. 몰랑은 산마루를 일컫는 전라도식 방언이다. 남쪽 바다에서 바라보면 절벽 위 이곳 산마루는 마치 기와지붕을 씌워 놓은 모양이라 한다. 돌탑을 지나자 본격적 해안 절경이 앞다투며 펼쳐지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유림해변이 오붓하게 들어서는가 싶더니 고개를 돌리자 신선봉을 포함한 기암괴석들이 바다를 향해 그림처럼 뻗어났다.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고 풍류를 즐겼다는 신선바위에 올라서면, 비로소 수월산 해안절벽과 그 끝점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거문도등대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거문도를 상징하는 최고의 비경이다.

신선바위에서 바라본 수월산과 그 끝점의 거문도등대
신선바위에서 바라본 수월산과 그 끝점의 거문도등대

또 다른 동백 숲을 통과해 보로봉 정상을 찍고 365개의 돌계단을 내려가니 ‘목넘어’다. 목너머는 파도가 높을 때면 양쪽 바닷물이 넘나들어 ‘무넹이’라고도 불리는데, 입구까지는 도로가 연결되고 또 주차장도 구비돼 있다. 목넘어를 건너 수월산으로 들어섰다. 해는 이미 바다를 향해 있고 그 빛은 온화하며 부드러웠다. 어느덧 등대가 코앞이다.

누군가의 바람이 차곡차곡 쌓였을 보로봉 소원 탑
누군가의 바람이 차곡차곡 쌓였을 보로봉 소원 탑
거문도항로표지관리소에 남아 있는 옛 등대 탑
거문도항로표지관리소에 남아 있는 옛 등대 탑

거문도등대는 남해안 최초의 등대로 1905년 첫 등을 밝혔다. 100년 동안 뱃길의 길잡이가 되었던 원형의 구 등탑을 철거하지 않은 채 남겨 두고 2006년 높이 33m의 육각형 등탑이 신축됐다. 거문도등대는 등탑에 전망대를 설치해 멀리 백도까지 조망할 수 있도록 했고 관광객들에게 콘도식 숙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달빛 아래, 최고의 안식처

계획상으로는 거문도등대 부근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녹산등대를 찾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상 정보를 검색해 보니 모레부터는 해상 날씨가 급격히 나빠질 것으로 예보되었다. 고민이 시작됐다. 오늘 밤, 녹산등대까지 걸어야 할까? 배가 많이 고파왔다. 거문도등대에서 고도까지는 대략 3.5km 정도. 내려가는 동안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북적이던 고도의 거리엔 적막이 감돌았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다. 8,000원짜리 백반임에도 두툼한 갈치가 서너 토막이 올랐다.

가을빛이 예쁘게 내린 녹산등대 탐방로
가을빛이 예쁘게 내린 녹산등대 탐방로

“숙소는 구하셨소?” “아닙니다, 녹산등대까지 가야 해서요.” “이 밤중에 녹산등대는 뭐하러 간다요? 식당 2층에 빈방 있응께 거기서 주무시쇼. 돈 걱정은 말고.” 넉넉한 섬 인심에 거듭 감사했으나 식당 밖을 나섰다. 보이지 않는 녹산등대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피로가 쌓이니 걸음이 느려지고 졸음까지 밀려들었다. 지루한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녹산등대’ 들머리에 도착했다. 초입 정자의 강렬한 유혹을 뿌리치고 좀 더 힘을 내서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난간 없는 널찍한 데크가 눈에 들어왔다. 거문대교가 내려다보이고 건너편 동도의 섬 능선 위로 큼직한 달덩이를 마주한 최고의 안식처였다.

밤을 잊은 고깃배들이 큰 바다로 나서고 구름은 달빛을 가르며 유유히 흘렀다. 사각사각한 바람이 볼살을 스칠 때마다 소주병은 조금씩 비워졌고 경이로운 밤 풍경은 좋은 안주가 되었다. 침낭을 펼쳐 놓고도 잠을 청하지 못한 것은 순간의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자연이 내어 준 두 개의 선물

녹산등대 산책로는 거문초등학교 서도분교장을 시작으로 인어공원을 지나 등대까지 이어지고, 다시 서쪽 해안을 따라 내려와 이금포해변에서 마감된다. 태풍으로부터 어부를 구한다는 거문도 인어 ‘신지끼’의 전설을 형상화한 인어공원과 초도, 손죽도는 물론 맑은 날이면 고흥 팔영산과 장흥 천관산까지 보인다는 녹문정전망대, 주변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억새밭은 절정의 가을 아침을 내게 보여 주었다. 홀로 여행이 외롭지 않은 이유는 늘 자연이란 벗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거문도 인어해양공원과 녹산등대
거문도 인어해양공원과 녹산등대

거문도에는 자연이 전해 준 두 개의 선물이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아름다운 풍광이요, 또 하나는 해풍쑥이다. 청정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양질의 토양이 만들어 낸 해풍쑥은 향균, 면역 효과가 탁월하고 진한 향에 식감 또한 부드러워 육지에서 인기가 높다. 또, 해풍쑥은 대한민국 농식품 브랜드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장촌마을 뒤편 구릉은 온통 쑥밭 천지다. “이놈이 보물이여라우.” 밭일하던 아낙의 해맑은 웃음을 뒤로하고 서도 선착장으로 내려왔다. 뭍으로 가는 주민들이 하나둘 대합실을 찾아 들기 시작했다. 

자연이 내어 준 귀한 건강식품 거문도 해풍쑥
자연이 내어 준 귀한 건강식품 거문도 해풍쑥

TRAVEL INFO

▷여객선 
여수연안여객터미널 ↔ 거문도항(2회 운항)
녹동항 ↔ 거문도항(2회 운항) 

▷트레킹 
산행코스
① 종주코스(13km/ 7시간)
거문도뱃노래전수관 → 음달산 → 불탄봉 → 억새군락지 → 기와지붕몰랑 → 신선대 → 보로봉 → 수월산 → 거문도등대 → 삼호교 → 고도 
② 일반코스(8.8km/ 5시간 ) 
고도 → 삼호교 → 덕촌리 → 불탄봉 → 억새군락지 → 기와지붕몰랑 → 신선대 → 
보로봉 → 수월산 → 거문도등대 → 삼호교 → 고도

거문도 뱃노래길
① 동백꽃 숲길(1.2km/ 1시간)
거문도 자연관찰로 → 무넹이 → 선바위 → 동백터널숲 → 거문도등대 
② 녹산등대 가는 길(3km/ 2시간)
서도마을 → 전망대(녹문정) → 인어해양공원 → 녹산등대 → 이금포 해수욕장 → 서도마을

▷FOOD 
고도에만 50여 곳에 가까운 식당이 밀집돼 있다. 종류별로 다양해서 육지와 다름없이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특히 강동횟집은 생선회는 물론이고 백반만으로도 술안주를 대신할 수 있을 만큼 반찬이 좋으며 인심 또한 후해서 단골이 많다. 

▷STAY 
호텔 1개소, 모텔 및 여관 10개소, 펜션 2개소를 포함해 고도와 서도에 50여 곳의 숙박업소가 있다. 민박도 시설이 깨끗한 편이며 비수기에는 매우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고도민박’은 1925년 지어진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해 운영하고 있으며, ‘거문도해풍쑥’의 숙박시설은 10인 기준 1박에 30~35만원 수준으로 단체 이용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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