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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크루즈 여행

  • Editor. 나보영
  • 입력 2023.11.06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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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를 타고 홋카이도를 여행했다.
바다에 가만히 안긴 채로, 호사를 누리면서.

가로 길이 290.2m로 초고층 빌딩을 방불케 하는 코스타 세레나호
가로 길이 290.2m로 초고층 빌딩을 방불케 하는 코스타 세레나호

●여행의 수고가 귀찮아질 때

언제나 여행을 바란다. 하지만 그 여행에 수반되는 수고들이 귀찮아질 때가 있다. 각종 예약, 공항의 절차,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다시 공항에서 호텔로의 이동. 이 모든 것들이 버거워 떠남을 망설일 때가 있다. 문득 크루즈 여행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객실 침대에 누워서 창밖만 보고만 있어도 매일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할 수 있으니까. 초대형 호텔이 저절로 움직여 목적지에 데려다 주는 셈이다. 크루즈 안에는 수영장, 레스토랑, 바, 스파, 카지노 등이 있고, 대극장에서는 매일 다채로운 공연도 열린다. 기항지 여행을 원한다면 나가면 되고, 쉬고 싶다면 배 안에서 있으면 된다. 크루즈만큼 편한 여행은 없다. 그래서 크루즈에 올랐다.

어린이들에게 인기만점인 코스타 세레나의 수영장
어린이들에게 인기만점인 코스타 세레나의 수영장

이번 크루즈 여행은 일본 홋카이도의 오타루와 하코다테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지역인 아오모리를 둘러보는 코스다. 짐을 대충 꾸려 출발지인 속초항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승객을 향해 활짝 문을 연 크루즈 ‘코스타 세레나(Costa Serena)’는 엄청난 위용을 뽐냈다. “가로 길이가 290.2m 정도 되니, 63빌딩을 눕혀 놓은 것보다 40m나 더 깁니다!” 안전한 탑승을 위해 마중 나온 가이드가 내게 말했다. 배에 올랐다. 레스토랑 6개, 수영장 4개, 카지노와 공연장, 면세점, 스파, 피트니스, 산책로. 이 모든 것이 크루즈 안에 있다. 크루즈 내 시설만 본다면 사실상 도시나 다름없다.


객실에 짐을 풀고 커튼을 열자, 새카만 밤바다 위에 별이 총총 떠 있었다. 침대에 누워 밤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되고, 빡빡한 스케줄을 외우지 않아도 되고, 기차나 버스 시간을 기억할 필요도 없겠네. 이 배가 새로운 여행지로 이끌겠지….’ 여유로웠다.

바닷바람을 느낄 수 있는 갑판 위의 선베드
바닷바람을 느낄 수 있는 갑판 위의 선베드

다음날 아침, 저절로 눈이 떠졌다. 카메라만 달랑 메고 동해상의 먼바다를 항해 중인 크루즈 꼭대기의 갑판에 올랐다. 산책로를 따라 손을 꼭 잡고 산책하는 노부부가 보였다. 수영장의 아이들은 한창 신이 나 있다.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는 애서가들도 많았다. 어디선가 고운 목소리로 부르는 ‘그리운 금강산’의 선율이 들려왔다. 그녀의 노래가 끝나고 박수의 열기가 가라앉은 뒤, 말을 걸어 보았다. 취미로 성악을 배운 지 스무 해가 넘었다는 그녀는 이제 70대를 맞이했단다. 

갑판 위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는 노부부
갑판 위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는 노부부

“새벽에 돌고래 봤어요? 못 보셨으면 보여 줄까요?”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의 핸드폰 영상 안에서 여러 마리의 돌고래들이 예쁜 곡선을 그리며 점프를 해댄다. 다른 한쪽에서는 휠체어와 보행 보조기에 몸을 지탱하는 여행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크루즈가 없었다면 여행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예요. 꿈을 꾸는 것 같네요.” 그들의 속삭임에 고개를 끄덕였다. “배 안에서 삼시 세끼 밥 주는 것만 해도 천국이에요!” 어느 주부의 말에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홋카이도의 색깔은 초록, 파랑, 보라

동해를 천천히 순항한 크루즈는 어느새 오타루항에 도착했다. 승객마다 취향에 따라 단체 여행을 예약해 두었다가 버스에 오르기도 하고, 자유롭게 여행하다가 정해진 시간까지 배로 돌아오는 걸 택하기도 했다. 물론 편안하게 배에 머무르는 선택지도 있었다. 

시키사이노오카의 하이라이트인 보라빛 언덕
시키사이노오카의 하이라이트인 보라빛 언덕

오타루에서 조금 먼 곳까지 가보고 싶었던 나는 렌터카를 빌려 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목적지는 ‘비에이’. 452번 국도를 타고 한창 차로 달리고 있을 때 길목 왼편으로 ‘산단다키’라는 나무 표지판이 보였다. 창문을 내리자 수풀 너머로 시원한 폭소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차를 세우고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거대한 암벽으로 폭포수가 쏟아져 내린다. 겹겹이 쌓인 사암층으로 장쾌하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한 바람을 일으켰다. 광활한 협곡의 모습이었다. 

협곡 같은 위용을 지닌 사암층 폭포, 산단다키
협곡 같은 위용을 지닌 사암층 폭포, 산단다키

차로 돌아와 다시 비에이로 향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파란 연못’이라는 뜻의 ‘아오이이케’로, 한국에서는 ‘청의 호수’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아오이이케는 이국의 바다보다도 더 청아한 스카이블루 색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비가 스멀스멀 내리기 시작해 회색빛 하늘이었는데도, 채도 높은 파란색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오이이케는 인근의 온천과 강물 그리고 알루미늄을 비롯한 여러 성분이 섞여 푸른빛을 띠게 됐다고 한다. 계절마다 에메랄드에서 라이트블루까지 다양한 색을 이루고, 한겨울에 수정처럼 얼어붙은 모습도 아름답단다. 연못 한가운데에는 서서히 시들어 가는 나무들이 있어서, 생동감 넘치는 청록의 수면과 대비를 이뤘다. 

스카이 블루로 빛나는 호수, 아오이이케
스카이 블루로 빛나는 호수, 아오이이케

크루즈로 돌아오는 길에는 ‘사계채 언덕’이라 불리는 ‘시키사이노오카’에 들렀다. 봄부터 가을까지 라벤더, 튤립, 루핀, 샐비어, 해바라기, 달리아, 코스모스, 해바라기 등 수십 종의 꽃들이 언덕 위를 수놓는다. 마침 보랏빛의 ‘숙근샐비어’가 한창이었다. 보랏빛 세상이다.


●천국과 지옥의 거리

오타루항을 떠난 크루즈는 홋카이도 하코다테로 향했다. 크루즈가 정박한 하코다테항 바로 옆에는 이곳이 국제무역항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카네모리 아카렌가 창고’가 있었다. 19세기 무렵에 지어진 붉은 벽돌 창고와 1882년에 축조된 복고풍의 운하가 매력적이다. 여러 채의 옛 건물들은 현재 레스토랑, 바, 카페, 쇼핑몰 등으로 재탄생해 운영하고 있다. 

모토마치 언덕 정상의 풍경
모토마치 언덕 정상의 풍경

하코다테에서 놓칠 수 없는 여행지가 바로 ‘모토마치’다. 유서 깊은 서구풍 거리로 러시아, 중국, 서양과 대외무역을 주고받았던 역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 언덕을 따라 걷다 보니, 구 영국 영사관, 러시아 정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 성 요한 성공회, 옛 하코다테 공회관 등의 건물이 이어졌다. 한 곳씩 사진을 찍으며 언덕 꼭대기에 오르자, 하코다테 항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모토마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옛 하코다테 공회관
모토마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옛 하코다테 공회관

하코다테의 클라이맥스는 역시 하코다테산에 올라 바라보는 야경이다. 지리적으로 가운데가 잘록하게 들어간 도시 양쪽으로 바다가 펼쳐지는 모습으로 유명하다. 로프웨이도 이곳의 명물. 전망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인고의 시간 끝에 난간에 다다르자, 그토록 고대했던 짙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다시 코스타 세레나호로 향했다. 크루즈는 마지막 기항지인 아오모리로 향했다. 아오모리에 도착해서는 항구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는 ‘네부타 뮤지엄 와랏세’에 먼저 들렀다. 아오모리의 여름 축제인 ‘아오모리 네부타 축제’에 사용된 네부타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네부타’란 거대한 종이 인형과 여러 개의 등으로 꾸며진 수레를 뜻한다. 저마다 갖가지 신화나 전설 속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네부타들은 아름다우면서도 으스스해서 기묘한 인상을 풍긴다. 

하코다테에서 반드시 봐야 할 것으로 꼽히는 하코다테 전망대의 야경
하코다테에서 반드시 봐야 할 것으로 꼽히는 하코다테 전망대의 야경

박물관에서 나와 북동쪽으로 120km 즈음 차로 달리면 산길이 시작된다. 일본의 영산으로 꼽히는 ‘오소레산’이다. ‘보다이지’라는 사찰에 도착했다. 어디선가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사찰 안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황폐한 토양의 화산지대가 등장했다. 곳곳마다 유황이 웅덩이를 이루고, 열기를 잔뜩 품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푸른빛의 칼데라 호도 펼쳐진다. 거친 화산 지형하고는 전혀 다른 청아한 모습이 대비를 이룬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유황 지대는 ‘지옥’, 호수 부근은 ‘천국’으로 불린다고 한다. 천국과 지옥은 멀리 있지 않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크루즈 내에서는 마지막 날까지 갖가지 공연과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쉼 없이 펼쳐졌다. 이곳에서는 언제나 축제가 열리고, 모두가 주인공이다. 떠나기가 아쉬워 바다를 안주 삼아 맥주를 들이켜며 생각했다. 언젠가 또 수고로움에 여행을 망설이게 된다면, 그땐 망설이지 않고 크루즈를 타야지.  


글·사진 나보영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롯데관광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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