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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먹으러 떠난 프랑스 여행

Travel Hard, Eat Harder!

  • Editor. 손고은 기자
  • 입력 2023.11.07 06:45
  • 수정 2023.11.2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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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종일 부지런히 먹고 마셔도 시간이 부족했다. 바게트 빵을 뜯으며 닭고기를 기다렸고, 매 끼니에 디저트를 거르지 않았으며,  ‘한입만 더’를 실천하다가 매일 밤 소화제를 삼켰다. 프랑스에서 가장 맛있는 길을 걸었다.

복숭아를 활용한 디저트

Tasty Road of France 
발레 드 라 가스트로노미 
(Vallée de la Gastronomie)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 프랑스 미식의 수도는 리옹이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리옹에 가자”고 제안한다면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러 가자” 정도로 해석해도 되겠다. 프랑스 최초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 탄생한 도시, 세상의 모든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도전들이 이어지는 리옹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다. 

샤토 데 올리비에 드 살레트(Château des Oliviers de Sallettes)
샤토 데 올리비에 드 살레트(Château des Oliviers de Sallettes)

지난 2019년, 프랑스에는 이러한 리옹을 중심으로 맛있는 길이 생겼다. 디종(Dijon)에서 시작해 부르고뉴(Burgundy), 오베르뉴 론 알프스(Auvergne-Rhone-Alpes), 프로방스(Provence), 마르세유(Marseille)까지 이어지는 640km의 미식 로드, 발레 드 라 가스트로노미(Vallée de la Gastronomie)다. 한국에는 올해 10월 공식 소개됐다. 프랑스 최고의 미식을 알리겠다는 목표 아래 여행 전문가들과 기자, 일반인 등 20여 명의 심사위원들로부터 까다로운 평가를 통해 개발됐으니 믿을 만한 구석이 많다. 

브레스 곳곳의 레스토랑에서는 명품 닭, 브레스 닭으로 만든 요리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쉽게 맛볼 수 있다
브레스 곳곳의 레스토랑에서는 명품 닭, 브레스 닭으로 만든 요리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쉽게 맛볼 수 있다

우선 길 위에는 맛있는 미식 경험이 가능한 관광지부터 와이너리, 쿠킹 클래스, 농장, 레스토랑, 치즈 및 초콜릿 숍 등 하이엔드부터 가성비 넘치는 곳까지 선택지가 다양하다. 무료 체험이 가능한 곳도 있다. 만원의 행복은 물론 고급스러운 식사까지 다양한 예산에 맞춰 일정을 구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 이번 취재는 리옹을 중심으로 가까운 브레스(Bresse) 지역과 보졸레(Beaujolais), 그리냥(Grignan)을 방문해 먹고 마시는 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발레 드 라 가스토로노미는 프랑스의 우수한 미식 경험만을 모은 만큼 그 길을 따라 여행하다 보면 어딜 가든 ‘기본’ 이상의 미식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음식에 진심인 사람들, 양질의 제철 식재료를 추구하는 일상에서 비롯된 맛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음식의 기본은 그랬다. 생각이 많아지는 맛이다.

●Bresse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닭요리를 찾아서

프랑스에는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있다. 마치 프랑스에서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도 있는 것처럼. 가방이며 옷이며 화장품뿐만이 아니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는 닭에도 명품이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까다롭게 기르고 가장 비싼 닭으로 꼽히는, 브레스(Bresse) 닭이다. 사실 닭은 프랑스의 상징적인 동물이기도 하다. 똥밭에 서 있어도 꼬끼오 하며 노래를 부르는 유일한 동물로, 어떤 슬픈 상황에 처해도 노래를 부르는 프랑스인들과 비슷하다고 여겨서다. 특히 브레스 닭은 하얀 몸통에 빨간 벼슬, 푸르스름한 다리까지 색마저 프랑스 국기와도 닮았다. 

중세 시대부터 브레스 닭을 직접 기르는 농장, 도맨 데 사뵈르 레 플라농(Domaine des Saveurs Les Planons)
중세 시대부터 브레스 닭을 직접 기르는 농장, 도맨 데 사뵈르 레 플라농(Domaine des Saveurs Les Planons)

브레스는 론 알프스 동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브레스 사람들의 배는 노랗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옥수수가 지천에 널렸다. 닭은 15세기부터 길렀다. 그리고 브레스 닭을 명품으로 고급화하기 위한 시도는 20세기에 들어서며 시작됐다. 브레스에서 생산한 옥수수와 우유를 먹일 것, 닭 한 마리당 최소 10m2의 공간을 보장할 것, 최소 4개월 이상 방목할 것, (매너로는) 소음이 적은 환경을 유지할 것 등등…, 명품 닭으로 인증받을 수 있는 여러 기준을 지켜 길렀다. 그 결과 브레스 닭은 1957년 특정 원산지에서 생산하고 빼어난 품질을 지닌 농축산물에 프랑스 정부가 부여하는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 인증을 받게 됐다. 

명품은 명품이다. 시장에서 1마리를 통째로 사려면 25만원에서 많게는 30만원이 든다. 평소 가정집 식탁에 오르기엔 무서운 가격이다. 그래서 브레스 닭은 고급 레스토랑 식탁 위에 오르는 경우가 더 많다. 브레스 여행이 행복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브레스 곳곳의 레스토랑에서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친근하게, 조금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브레스 닭요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브레스 닭은 일반적인 닭보다 더 큼직하다. 잡내가 나지 않고 근육이 발달해 있어 궁극의 쫄깃한 식감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다리보다 가슴살이 부드럽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브레스 여행에서만 즐길 수 있는 확실한 행복을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다.

 

별이 쏟아지는 마을 

만약 브레스 여행을 결심했다면 빼놓을 수 없는 마을이 있다. 인구 약 3,000명의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미식 여행지로서의 존재감은 확실한 보나(Vonnas)다. 

보나를 미식의 성지로 만든 건 셰프 조르주 블랑(Georges Blanc)이다. 조르주 블랑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1929년부터 미슐랭 1스타를 받은 이후 2차 세계대전으로 평가 자체가 중단됐던 1940~1945년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죽 미슐랭 스타를 받은 곳이다. 심지어 1981년부터 2023년까지 42년 동안은 단 한 번도 미슐랭 3스타를 놓친 적이 없다.

조르주 블랑 (Georges Blanc)
조르주 블랑 (Georges Blanc)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실존하는 전설이랄까. 그동안 이곳을 찾은 전 세계 대통령들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의 리스트도 전설적이다. 조르주 블랑은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근처의 주택 약 30채를 구입해 또 다른 레스토랑과 호텔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야말로 조르주 블랑의, 조르주 블랑에 의한, 조르주 블랑을 위해 존재하는 마을 같다. 그러니까 보나를 여행한다는 건 조르주 블랑의 손길이 닿은 곳곳에서 맛있게 먹으며 쉬는 여행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랑시엔 오베르주(L'Ancienne Auberge) 브레스 닭은 근육이 많아 쫄깃한 식 감을 자랑한다, 모렐(Morille) 버섯과 궁합이 잘 맞다
랑시엔 오베르주(L'Ancienne Auberge) 브레스 닭은 근육이 많아 쫄깃한 식 감을 자랑한다, 모렐(Morille) 버섯과 궁합이 잘 맞다
랑시엔 오베르주(L'Ancienne Auberge)
랑시엔 오베르주(L'Ancienne Auberge)

조르주 블랑의 맛은 약 150년 전 그의 할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으로부터 대대손손 내려온 레시피이기도 하다. 과거 할머니가 운영했던 식당은 사라졌지만, 조르주 블랑이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식료품점을 개조해 만든 랑시엔 오베르주(L’Ancienne Auberge)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조르주 블랑 레스토랑보다는 캐주얼한 분위기에 합리적인 가격의 음식을 제공한다. 아뮤즈 부쉬와 애피타이저(또는 디저트), 메인 요리에 커피까지 3코스의 식사가 29유로인 점도 놀라운데 레스토랑의 접객 수준과 분위기, 음식의 맛은 더 놀랍다. 

 

●Beaujolais
와인으로 기억하는 보졸레

와인이 빠진 프랑스 미식 여행은 가짜다. 각 음식에 맞는 적절한 와인을 곁들이는 것이 진정한 프랑스 식탁의 모습이다. 음식과 와인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프랑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마리아주(Mariage, 결혼)에 비유하곤 한다. 음식의 맛을 한층 풍부하게 살려내는 와인은 미식 여행에 있어 선택이 아닌 필수다. 

1676년 지어진 샤토 드 라 셰이즈. 베르사유 정원을 빼닮은 정원으로도 알려져 있다
1676년 지어진 샤토 드 라 셰이즈. 베르사유 정원을 빼닮은 정원으로도 알려져 있다

와인은 포도의 종류와 떼루아(Terroir, 토양, 기후 등과 같은 자연환경)에 따라 나뉘며 다양한 맛을 낸다. 보졸레(Beaujolais)에서 가장 잘 자라는 대표 품종은 가메(Gamay)다. 보졸레의 온화한 기후 특성을 닮아 산뜻하고 향긋한 꽃과 과일향을 가졌다. 또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숙성되는 포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특히 남부 보졸레에서는 9월 수확한 가메 품종으로 약 2달 동안 빠르게 숙성해 곧바로 마실 수 있는 햇와인, 보졸레 누보를 즐긴다.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이 겨울을 앞두고 보졸레 누보를 나눠 마시는 날이다. 

샤토 드 라 셰이즈는 가메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 최근에는 샤도네이 포도도 수확하기 시작했다
샤토 드 라 셰이즈는 가메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 최근에는 샤도네이 포도도 수확하기 시작했다

가메 품종으로 고급 와인을 빚는 와이너리를 찾았다. 샤토 드 라 셰즈(Château de la Chaize)다. 1676년 지어진 샤토(성)를 중심으로 약 150만m2 규모의 포도밭과 베르사유 정원을 빼닮은 정원이 펼쳐져 있다. 노란색의 샤토는 초록빛으로 가득했던 포도밭 가운데 그림 같았는데, 붉은 단풍은 물론 하얀 눈밭과도 잘 어울릴 것만 같다.

샤토 드 라 셰즈(Château de la Chaize)
샤토 드 라 셰즈(Château de la Chaize)

현재 샤토 드 라 셰이즈는 잡초도 뽑지 않는 유기농 농법을 고수하고 있다. 수확하는 품종은 가메 하나지만 포도는 23개로 나뉜 구역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 비슷한 지역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보여도 미세한 차이가 분명하다고. 그중에서도 특별한 개성과 뛰어난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에만 붙일 수 있는 ‘크뤼(Cru)’가 4곳이나 되며 가장 고급 와인을 만드는 포도밭은 별도의 담장을 세워 관리하고 있다. 10세기 이전부터 수도사들이 다양한 실험 끝에 결론을 낸 최고의 땅이라고 했다.

가메 품종으로 만든 프리미엄 와인
가메 품종으로 만든 프리미엄 와인

수 세기 동안 ‘엄지 척’을 받은 땅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 수 있는 와인은 1년에 약 2,000병으로 매우 적다. 마셔 봐야 할 이유가 되고, 마실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입 안 가득 보졸레의 화사함이 번진다. 기분이 좋다.

 

기름에 진심

양질의 곡물에서 짜낸 기름은 몸에 이롭다. 그 어떤 첨가물을 넣지 않은 100% 천연 기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음식의 풍미를 살리는 역할도 한다. 보졸레에는 ‘버진 오일(100% 1차 압착 오일)’만을 제조하는 ‘윌르리 보졸레(Huilerie Beaujolaise)’가 있다. 지금이야 대량 생산이 가능해 공장으로 분류되지만 1880년 물레방아 시절부터 기름을 짜던 방앗간이다.  

윌르리 보졸레(Huilerie Beaujolaise)
윌르리 보졸레(Huilerie Beaujolaise)

윌르리 보졸레에서 만드는 기름의 종류는 다양하다. 프랑스 전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공수해 온 헤이즐넛부터 아몬드, 피스타치오, 땅콩, 호두, 깨 등 수십여 가지에 달한다. 기계를 들이며 기름을 짜는 수고는 덜었지만 전통 방법과 정성은 그대로다. 껍질을 제거한 곡물을 분쇄하고 80~140도 사이의 온도에서 40분 이상 천천히 볶아 내며 1차 압착 오일만을 모아 병에 담는 것. 남은 찌꺼기는 베이킹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가루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그리고 100년 이상 뚝심을 가지고 생산한 양질의 기름은 이제 전 세계 곳곳에 이름을 알리며 고급 식재료로 활약 중이다. 

윌르리 보졸레의 버진 오일로 만든 휘낭시에. 전문 셰프와 함께 하는 쿠킹클래스에 참여하면 특별한 레시피도 얻게 된다
윌르리 보졸레의 버진 오일로 만든 휘낭시에. 전문 셰프와 함께 하는 쿠킹클래스에 참여하면 특별한 레시피도 얻게 된다
윌르리 보졸레는 100% 양질의 곡물만을 압착해 기름을 짜내고 있다
윌르리 보졸레는 100% 양질의 곡물만을 압착해 기름을 짜내고 있다

보졸레에서는 좀 더 맛있고 재밌는 방법으로 기름을 만나 볼 수 있다. 윌르리 보졸레의 전문 스튜디오에서 셰프의 쿠킹 클래스에 참여하는 것! 버진 오일을 활용해 디저트를 만드는 달콤한 시간이다. 이날은 헤이즐넛 가루와 신선한 헤이즐넛 버진 오일, 버터를 듬뿍 넣어 갓 구운 휘낭시에를 만날 수 있었다. ‘진짜 진짜(적어도 두 번은 반복 강조할 만큼)’ 고소한 헤이즐넛 향이 온몸을 감쌌다. ‘설탕물을 끓일 땐 절대로 휘젓지 말라’는 등 베이킹 과정에서 알아 두면 좋을 셰프의 조언도 메모해 두면 좋다.클래스가 끝나면 아마도 자연스럽게 방앗간으로 발길을 옮기게 될 테다.

윌르리 보졸레 숍에서는 다양한 기름을 비롯해 발사믹 식초를 시음해 볼 수 있다
윌르리 보졸레 숍에서는 다양한 기름을 비롯해 발사믹 식초를 시음해 볼 수 있다

윌르리 보졸레는 초기 전통 방법으로 기름을 짜던 곳을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공정 과정을 설명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쿠킹 클래스와 함께 패키지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는 기름과 발사믹 식초를 시음할 수 있는 숍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 수십 가지의 기름을 시음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아는 맛’ 올리브유에서 벗어나 각종 곡물의 기름을 순서대로 음미했다. 분명 기름인데 기름 같지 않다. 대체로 고소했고 대체로 신선했으며, 대체로 전부 사고 싶었다. 하나하나 새로운 기름을 맛볼 때마다 어울릴 만한 메뉴가 생각났다. 일단 좀 전에 배운 휘낭시에를 만들어 보겠다는 심산으로 헤이즐넛 오일부터 바구니에 담았다.

 

●Lyon
리옹에서는 ‘배터짐주의’

난감하다. 리옹에서는 꼭 먹어 봐야 할 전통 음식과 식당만으로도 열 손가락이 부족한데 창의적인 도전을 이어 가는 식당들까지 두루 섭렵하려면 시간이 없다. 그래서 리옹을 여행할 때 꼭 필요한 건 미식 투어 전문 가이드다. 1박 2일 동안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리옹에서 경험할 수 있는 미식 코스를 만들어 봤다. 

리옹이 낳은 전설적인 셰프, 고(故) 폴 보퀴즈가 사랑했던 레 알 폴 보퀴즈 시장. 신선하면서도 구하기 어려운 고급 식재료를 찾아볼 수 있다
리옹이 낳은 전설적인 셰프, 고(故) 폴 보퀴즈가 사랑했던 레 알 폴 보퀴즈 시장. 신선하면서도 구하기 어려운 고급 식재료를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아침에는 시장으로 향하는 게 좋겠다. 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함과 활기찬 기운이 하루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레 알 폴 보퀴즈 시장(Les Halles Paul Bocuse de Lyon)은 리옹이 낳은 전설적인 셰프, 고(故) 폴 보퀴즈가 사랑했던 시장이다. 브레스 닭부터 푸아그라, 굴, 샤퀴테리 등 고급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어 요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둘러보는 재미가 넘치는 곳이다. 간단한 빵이나 신선한 과일로 아침 식사를 시작해도 좋다. 

레 알 폴 보퀴즈 시장
레 알 폴 보퀴즈 시장

리옹의 미식은 실크 산업과 뗄 수 없는 관계다. 리옹이 산업 도시로 크게 발달하게 된 시기는 16세기부터다. 당시 프랑수아 1세가 프랑스 왕족의 실크를 만들 수 있는 특별 구역으로 리옹을 지정하면서 리옹의 인구는 1세기 만에 2배 이상 늘어났다고. 그 결과, 리옹은 실크라면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수많은 장인을 낳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염색, 인조섬유 등 섬유 산업에서 꽃을 피우게 됐다. 그리고 리옹의 실크 공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저렴하면서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찾은 곳이 바로 ‘부숑(Bouchon)’이었다. 

레 토케 뒤 프로마주(Les Toqués du fromage) / 치즈마다 어울리는 와인은 따로 있다. 리옹에서는 치즈와 와인 페어링을 탐험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레 토케 뒤 프로마주(Les Toqués du fromage) / 치즈마다 어울리는 와인은 따로 있다. 리옹에서는 치즈와 와인 페어링을 탐험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리옹의 전통음식을 판매하는 식당, 부숑(Bouchon)에서 만난 리옹의 맛
리옹의 전통음식을 판매하는 식당, 부숑(Bouchon)에서 만난 리옹의 맛

부숑은 리옹의 전통 음식을 판매하는 가정식 식당이다. 리옹에는 약 150개의 부숑이 오랜 세월 영업 중인데 그중에서도 약 20개의 식당은 역사와 전통, 스페셜티 메뉴 등으로 리옹 부숑 협회의 인증을 받았다. 사실 부숑에서 판매하는 메뉴들은 생소한 편이다. 노동자들에게 부담 없이 푸짐하게 대접하기 위해 대체로 뒷고기나 내장, 잡어 등 저렴한 식재료를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리옹 전통 조리법은 소박한 식재료에도 한껏 풍미를 불어넣고 있다. 과거 부숑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식사와 함께 와인도 제공했는데 조금이라도 와인을 아끼기 위해 (와인 한 병을 다 채우지 못하도록) 고안한 특별한 와인병도 부숑에서 볼 수 있는 재미다. 

샤퀴테리. 리옹은 프랑스에서도 샤퀴테리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도시다
샤퀴테리. 리옹은 프랑스에서도 샤퀴테리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도시다

리옹만의 간식도 놓칠 수 없다. 리옹 거리를 걷다 보면 브리오슈 반죽 사이에 소시지를 넣어 돌돌 말아 구운 ‘소시송 브리오셰(Saucisson Brioché)’와 다양한 돼지고기, 소고기를 사용해 말린 소시지, 빨간색의 달콤한 디저트 프랄린 등이 시선을 끈다. 특히 프랄린(Praline)은 볶은 헤이즐넛이나 아몬드를 설탕물에 졸여 굳힌 디저트다. 어떤 맛일지 상상되는 색에 지루함을 느낀 리옹의 한 셰프가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빨간색을 입혀 판매하면서 리옹 전역으로 유행이 불었다고.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도 많다. 실크 산업이 꽃을 피우던 시절 리옹으로 이주한 이탈리아 사람들 중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린 이들이 많아서다. 여기에 ‘아이스크림콘 맛의 아이스크림’과 같은 맛을 구현한 창의적인 아이스크림 가게도 수두룩하니 다이어트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프랄린 케이크
프랄린 케이크

지금쯤이면 당연히 배가 터질 것 같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배는 절대 터지지 않는다). 저녁은 프랑스답게 마무리하길 권한다. 리옹에는 자신들을 ‘치즈에 미친놈들’이라고 소개하는 두 남자가 있다. 앙투안(Antoine)과 쿠엔틴(Quentin)이다.

앙투안은 치즈에 대한 일화, 생산 과정, 떼루아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주는 치즈 전문가, 쿠엔틴은 와인 전문가다. 두 남자는 프랑스인들이 치즈와 와인을 무척 사랑하지만 둘의 페어링에 대해서는 아직 섬세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봤다. 그래서 치즈와 와인을 판매하는 ‘레 토케 뒤 프로마주(Les Toqués du Fromage)’를 열고 치즈에 중심을 둔 와인 페어링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2시간에 걸쳐 두 남자의 설명과 조언을 따르다 보면 치즈의 종류에 따라 풍미를 올리는 와인이 따로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워크숍을 통해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레드 와인보다 스파클링 또는 화이트 와인이 치즈와 더 궁합이 좋다는 것. 하루종일 리옹을 맛보고 나니 배는 부르고 말이 많아졌다. 


●Grignan 
그리냥에 취해

잘 먹고, 잘 쉬는 여행을 실천하기 위한 마지막 목적지는 그리냥이었다. 프랑스에는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꼽히는 마을이 168개나 있다. 가장 아름다운 마을에 이름을 올리려면 기본적으로 주민 수가 2,000명 이하로 적고, 보호 지역 또는 역사적 기념물로 등록된 곳이 최소 2군데 이상이어야 한다. 한적하고 소박하지만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충분한 마을이라는 의미랄까. 그리냥이 바로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다. 

그리냥 성 테라스에서는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그리냥 성 테라스에서는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그리냥에서 손꼽히는 명소는 그리냥 성이다. 마을 중심에 우뚝 솟은 성은 11세기 지어졌는데 프랑스대혁명 당시 파괴되었다가 1912년 부유했던 마리 퐁텐(Marie Fontaine)에 의해 재건됐다. 당시 그녀의 재력을 짐작할 만한 고급 가구와 침구, 식기, 소품, 인테리어 등을 관람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냥 성의 하이라이트는 야외 테라스에 있다. 저 멀리 남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산, 방투산(Mont Ventoux)이 펼쳐져 있고 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엄청난 개방감을 자랑한다.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여행은 여유가 넘친다. 인구보다 방문객 수가 더 많은 작은 마을에서 여행자가 할 일은 그저 어슬렁어슬렁 그리냥 성 주변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고 따뜻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시골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와 인심에 자꾸만 웃음이 난다. 

에성시엘 드 라방드에서는 라 벤더와 라벤딘(Lavendin)을 기른다
에성시엘 드 라방드에서는 라 벤더와 라벤딘(Lavendin)을 기른다

그리냥은 라벤더밭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매년 6~7월이면 온통 보랏빛 세상이다. 가뜩이나 아름다운 마을이 더 아름다워지는 시기다. 이땐 가까운 라벤더 농장 에성시엘 드 라방드(Essentiel de Lavande)로 피크닉을 떠나자.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다. 샐러드와 빵, 병아리콩으로 만든 후무스, 치즈를 곁들인 건강한 한 끼가 준비되어 있으므로. 어린이 전용 메뉴나 고기가 추가된 메뉴 등 선택지도 여럿이다.

에성시엘 드 라방드에서 직접 수확한 라벤더로 만 든 아이스크림과 신선한 샐러드, 빵과 함께 피크닉을 즐길 수 있다
에성시엘 드 라방드에서 직접 수확한 라벤더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신선한 샐러드, 빵과 함께 피크닉을 즐길 수 있다

피크닉의 완성도를 더 높이는 방법으로는 가볍게 마실 수 있는 화이트 또는 로제 와인을 추가하는 것.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세 잔이 돼도 괜찮다. 라벤더에 취한 것인지 와인에 취한 것인지, 분위기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행복에 취한 것인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샤토 데 올리비에 드 살레트(Château des Oliviers de Sallettes) 

진짜 프랑스인들의 휴가가 여기 있었다. 16세기에 지어진 성 안팎에서 한낮에는 스파와 수영을 즐기고 늦은 오후에는 포도밭과 숲길을 걷다가 저녁에는 한껏 차려입고 레스토랑 라방댕(Lavandin)에서 세련된 식사로 마무리하는 시간. 세상과 잠시 단절된 듯 조용했던 하루는 초록빛이었다가 푸른빛을 냈고 그러다 붉게 물들었고 반짝 빛났다.

호텔로서의 샤토 데 올리비에 드 살레트는 19세기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을 거쳐 태어났다. 성과 포도밭, 숲과 라벤더밭까지 전체 규모가 약 30만m2가 훌쩍 넘는데 객실은 32개뿐. 하지만 샤토 데 올리비에 드 살레트는 매년 한 번씩만 방문해도 32가지의 색다른 휴식을 즐길 수 있다. 객실마다 저마다의 구조와 인테리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해가 질 무렵이면 투숙객들은 야외 수영장과 테라스로 홀린 듯 모인다. 대부분 시선은 산 너머로 떨어지는 해에 머물러 있다. 


글·사진 손고은 기자  에디터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프랑스관광청, 오베르뉴 론 알프스 관광청, 카타르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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