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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유럽문화수도,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 & 바트 이슐

What is culture? salz kammer gut 2024

  • Editor. 강화송 기자
  • 입력 2023.11.10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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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란 무엇인가.
2024년 유럽문화수도로 향했다.

EUROPEAN CAPITAL 
OF CULTURE 2024 : AUSTRIA
BAD ISCHL / SALZKAMMERGUT

 

●Chapter 1.
문화란 무엇인가?

오스트리아에서 생각했다. 문화란 무엇인가. 우리에겐 예기치 않은 순간들이 종종 찾아온다. 느닷없는 경험은 아름답거나 찬란하거나 더럽거나 슬프다. 나타났다가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는 일생의 과정에서 우리는 배운다. 지식, 관심, 신념, 법, 도덕 같은 것들. 이 모든 배움의 평균적인 축적이 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부족하다. 문화는 그보다 더 섬세한 부류다. 가을을 뭉뚱그려 계절이라고 하지 않고, 애써 가을이라 부르려는 사려 깊은 마음으로 다시 내게 묻는다. 9월의 오스트리아 바트 이슐(Bad Ischl). 나무 그늘 드리운 강변 계단에 걸터앉아 생각한다. 청명한 날씨다. 그래서 사색한다. 문화란 무엇인가.

Ischl & Traun River
Ischl & Traun River

혼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사뭇 진지한 스스로가 가관이란 생각도 한다. 그런데, 오스트리아가 사람을 이렇게 만든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한다. 모두가 그럴 수 있어 창피해하지 않아도 되는 곳. 문화란 이런 것이었다. 

그럼 예술이란 무엇인가. 문화를 사색만 하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예술병에 걸린다. 사색한 문화를 표현하는 사람이 예술가다. 물론 예술이 성취하는 것에 한정되진 않는다. 돌의 묵직함, 물의 유연함, 철의 강인함, 잡초의 집요함. 예술은 본성에 대해 근본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이 시작이다. 그래서 예술은 시간을 타지 않는다. 근본적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오늘 나와 현상 그 자체로 함께하는 것이다. 예술은 요소고 문화는 공간이다. 문화는 예술을 조응하게 만들고, 예술은 문화를 호응하게 만든다. 복잡하지만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는 문화적이다. 

바트 이슐은 도보로 시내를 돌아보는 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바트 이슐은 도보로 시내를 돌아보는 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유럽연합(EU)은 매년 27개의 회원국 중 2~3곳의 도시를 ‘유럽문화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로 선정한다.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된 곳은 1년간 도시의 역사와 이야기를 각종 문화예술행사로 선보여야 할 의무가 생긴다. 그 때문에 보통 4년 전에 미리 유럽문화수도를 선정한다. 선정 도시에서 문화 행사를 기획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2024년 유럽문화수도로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Salzkammergut)와 바트 이슐(Bad Ischl)이 선정되었다. 잘츠캄머구트와 바트 이슐의 문화를 세계에 선보일 차례가 다가왔고, 지금, 그 준비를 마쳤다는 의미다.

오스트리아에는 사방 천지가 노천카페다
오스트리아에는 사방 천지가 노천카페다
유럽문화수도 선정 프로젝트 전시. 생필품 장인들을 소개하는 전시회
유럽문화수도 선정 프로젝트 전시. 생필품 장인들을 소개하는 전시회

●Chapter 2.
잘츠캄머구트, 소금만큼 짜릿한 사랑

오스트리아 ‘바트 이슐’은 ‘잘츠캄머구트’에 위치한 소도시다. 오스트리아는 익숙한데 나머지는 생소하다. ‘잘츠(Salz)’는 독일어로 소금을, ‘캄머구트(Kammergut)’는 황실의 소유지를 뜻한다. 그러니까 잘츠캄머구트는 ‘소금의 영지’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잘츠캄머구트는 알프스산맥이 관통하는 지역이라 지대가 상당히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소금이 나는 이유는 알프스산맥의 탄생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알프스는 과거 해수면 아래 위치한 지형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지각변동으로 융기되며 솟아난 지형이 바로 알프스산맥이다. 그래서 암염을 채굴할 수 있는 것이다.

바트 이슐 카이저 빌라로 향하는 길목. 강물의 색이 영롱하다
바트 이슐 카이저 빌라로 향하는 길목. 강물의 색이 영롱하다

잘츠캄머구트 지역에 속한 도시들은 암염광산 덕분에 부흥한 곳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할슈타트’가 그렇다. 할슈타트(Hallstatt)의 ‘할(Hall)’은 고대 켈트어로 소금을 뜻한다. 할슈타트에는 기원전 7,000년 전부터 암염 채굴이 이루어졌던 소금 광산이 자리한다. 그 기나긴 역사를 대변할 짧은 썰을 하나 풀어 보자면 1734년, 할슈타트에서 소금에 절여진 신원미상의 시신 한 구가 발견된다. 그 시신의 사망 연도를 추적해 보니 3,000년도 넘은 시신으로 유추됐다. 소금의 역사만큼 인간의 역사도 오래된 도시다.

잘츠캄머구트 지역의 전통 조끼를 만들기 위한 준비물
잘츠캄머구트 지역의 전통 조끼를 만들기 위한 준비물

잘츠캄머구트는 어디나 아름답다. 눈 돌리는 모든 곳에 산과 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침 운좋게 산이 알프스고, 그래서 호수는 알프스가 만든 빙하호다. 색이 영롱하다. 잘츠캄머구트의 아름다움, 그 정중앙에 ‘바트 이슐’이 점찍힌다. ‘바트(Bad)’는 온천, ‘이슐(Ischl)’은 마을 관통하는 강의 이름이다. 이슐강이 흐르는 온천마을. 약 1만 4,000명의 주민이 살아가는 아담한 마을이지만 황실의 기품과 강단이 있다. 바트 이슐은 황실의 휴양 도시였다.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f Ⅰ)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f Ⅰ)

각국별로 세월과 관계없이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사랑받는 왕후가 한 명쯤은 존재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시씨(Sissi)’가 그렇다. 본명은 ‘엘리자베트 아말리에 오이게니’. 그녀는 19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황후였다. 참고로 상당히 미녀였단다. 유럽 역사상 허리가 가장 가늘었던 왕후라는 소문도 있다. 그녀는 외모만큼 매혹적인 사랑 이야기를 역사에 남겼는데, 그녀의 로맨스 무대가 바로 ‘바트 이슐’이다.

그녀가 15세가 되던 해, 당시 오스트리아의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f Ⅰ)’를 바트 이슐에서 만나게 된다. 황제는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했고, 이후 약혼을 청했다. 어느 작은 온천마을에서 마주친 우연한 사랑. 눈떠 보니 내가 이 세계의 공주라니.


그녀는 1854년, 16세의 나이로 황제와 결혼해 황후가 된다. 부부의 연을 맺고는, 매년 여름마다 바트 이슐을 찾았단다. 바트 이슐의 온천수는 염수 온천인데, 불임에 효과가 좋다고 하여 명성을 얻었다. 당시 황제가 바트 이슐에서 머물렀던 여름 별장이 ‘카이저빌라(Kaiservilla)’다. 

이외에도 황제와 황후가 처음 눈이 맞았다는 ‘바트 이슐 시립 박물관(Museum der Stadt Bad Ischl)’ 등 마을 곳곳에서 황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도시가 기품이 넘친다. 돈과 권력의 흔적 때문이다. 참고로 그들의 결말이 해피엔딩은 아니다.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부갈등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트 이슐에서 시작한 사랑은 싱겁게 식었어도, 아직 온천물은 뜨겁고 짜다.

호텔 골데너 옥스 Hotel Goldener Och
호텔 골데너 옥스 Hotel Goldener Och

▶Hotel Goldener Och

바트 이슐에서는 일정 내내 골드너 옥스라는 호텔에서 머물렀다. 역사가 워낙 오래된 호텔이긴 한데, 역사만큼 낡은 게 함정이다. 방 자체는 우리나라 모텔과 비슷한 수준에다가 에어컨도 없다. 첫날밤은 참 불편했다.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침대도 마음에 안 들었고, 옆방에서 온종일 떠드는 스위스 부부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어가며 꾸역꾸역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커피를 한 잔 내려 베란다에 앉았다.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호텔은 집을 나와 잠을 자는 곳인데, 여긴 집일 수도 있겠다는 착각이 들었다. 도시에선 도시다운 곳이, 시골에선 시골다운 곳이 좋다. 돌아보니 더 좋았던 곳이다.

오스트리아 바트 이슐에 위치한 호텔 골데너 옥스. 중정이 있어 독서하기 좋다
오스트리아 바트 이슐에 위치한 호텔 골데너 옥스. 중정이 있어 독서하기 좋다

●Chapter 3.
유럽문화수도, 바트 이슐

도시의 문화가 장르로 남기 위해 갖춰야 할 필수 요소가 있다. 도시와 개인의 서사다. 문화는 축적되어 생기는 것이다. 각각의 서사가 고유성을 가지게 되면 매력적인 장르의 문화도시가 탄생한다. 2024년 유럽문화수도, 잘츠캄머구트와 바트 이슐은 그 점에 방점을 찍었다. 

작디작은 온천마을에서 살아가는, 혹은 머물렀던 이들의 서사를 여행자와 나누는 방식으로 도시를 소개한다. 어디를 먼저 가고, 어느 것을 꼭 먹고, 어느 카페를 들렀다가,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일절 없다. 여행자와 도시문화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결국 자의로 말문을 트고, 시선과 어휘를 주고받고, 존재를 지지하는 풍경을 의미한다. ‘소통’, 시간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바트 이슐은 차분하고 고요하게 도시를 소개한다. 그래서 편안하고.

 

●Chapter 4.
바트 이슐의 문화공간 Spot3

 

We hunt… in Salzkammergut
우린 사냥한다, 잘츠캄머구트에서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의 여름 별장인 ‘카이저빌라(Kaiservilla)’에서 진행하는 전시. 사냥을 즐겨 했던 황제의 컬렉션을 전시한다. 카이저 빌라 내부에는 황제의 헌팅 트로피가 가득하다. 헌팅 트로피는 사냥으로 사살된 동물의 사체의 전체, 혹은 일부를 박제 후 전시하는 것을 뜻한다. 이 부분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있지만, 헌팅 트로피는 한때 명실상부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던 귀족문화다. 애써 외면한다 하더라도 이미 축적된 문화라는 뜻이다. 

과거의 문화는 사람이 만들었고, 현재의 문화도 사람이 만든다. 그래서 우리에겐 직접 보고 느끼고, 판단해야 할 의무가 있다. 바트 이슐은 과거의 문화를 전시할 뿐이다. 우린 여기서 문화를 사냥한다.


HAND WERK HAUS Bad Goisern
한트베어크하우스 바트 고이제른

생산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기술에는 배움이 필요하고, 배움에는 상상이 필요하다. 이 모든 일렬의 과정을 수백번 거치면 개성이 생기고, 수천번 반복된 개성은 장인을 만든다. 수제품은 그 과정의 일부라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한트베어크하우스’는 ‘바트 고이제른’에 있는 수제품 전문 숍이다. 바트 이슐에서 바트 고이제른까지는 차로 대략 15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곳에서는 유럽문화수도 사업의 일환으로 현재 ‘Master’s Summer 2023’ 특별전이 펼쳐지고 있다. 특별한 예술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전시가 아니다. 지붕 패널, 구두, 구리 세공같이 실생활에 밀접한 장인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예술품으로는 필요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는 필요한 예술품이다. 이외에도 ‘잘츠캄머구트 크래프트 아트 랩(Salzkammergut Craft Art Lab)’ 프로그램을 통해 국제 및 지역 장인들과 예술가의 협업 교류를 지원한다.


Gasthaus Siriuskogl
가스트하우스 시리우스코글

도시를 한눈에, 가장 가까이 내려보는 방법은…, 어쩔 수 없다. 땀 흘리며 어디든 올라야 한다. 바트 이슐은 사방이 알프스다. 그 말은 어딜 올라도 다리가 남아나지 않을 거란 확신이다. 다행히도 바트 이슐에는 나름 나지막한 뒷산이 하나 있다. 그곳이 ‘시리우스코글(Siriuskogl)’이다. 

산행에 나선다. 나와 동행한 담당자는 정상까지 15분쯤 걸린다고 호언장담했다. 산행 25분째, 그녀가 내게 잠시 쉬어 가자고 제안했다. 난 쉬어 주지 않았다. 그 정도로 그녀가 괘씸했기 때문이다. 고통을 예측할 수 있으면 참을만하다. 사람은 인내심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보다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 그때부턴 울화의 영역이다. 40분 조금 넘게 산을 탔다. 셔츠와 슬랙스가 반쯤 젖었는데, 노을이 웬 말인가. 참 덥고 벌겋게 달아오른 가을 저녁이었다. 산을 오르는 데 굳이 셔츠를 입은 이유는, 그녀가 산꼭대기에 레스토랑이 있다고 말해 줬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끝에 레스토랑이 있긴 있었다. 다들 젖어서 문제지. 

가스트하우스 시리우스코글(Gasthaus Siriuskogl)은 지역의 맛, 좀 더 정확히는 잘츠캄머구트 야생의 맛을 추구하는 레스토랑이다. 이곳을 이끄는 셰프 ‘크리스토퍼 크라울리 헬트(Christoph Krauli Held)’ 역시 잘츠캄머구트 바트 고이제른 출신의 지역민이다. 거창한 식사를 내어주는 곳이라기보단 어릴 때부터 먹고 자랐던 음식들을 술과 곁들이기 좋게 안주를 내어주는 선술집. 이 동네에 대한 셰프의 추억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오스트리아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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