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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섬, 시산도 사용법  

  • Editor. 김민수
  • 입력 2023.12.01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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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백령에서 울릉까지’라는 타이틀로 우리나라 20여 개 섬을 연속 여행했었다. 여정은 10월 말에 시작돼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끝났다. 늦가을과 겨울을 타고 흐르던 알싸한 기억, 시산도는 11번째 섬이었다. 그 섬을 다시 찾았다.

시산도항
시산도항

●첫인상은 바다 공장

시산도의 첫인상은 거대한 바다 공장과 같았다. 역기 모양으로 생긴 어구와 크레인이 물양장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삐 움직이는 외국인 근로자들, 말로만 들었던 ‘부자 섬’의 진면목을 보는 듯했다.

시산도에는 150여 가구에 250여 명의 주민이 산다. 많은 가구가 미역 양식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간 수십억 원에 달한다. 1970년대에 시작한 부류식 양식업이 환경 좋은 시산 바다를 만나 급속도로 성장한 덕분이다. 시산도 김은 최고 품질로 평가받고 있으며 고흥군 관내 생산량의 1/3을 차지한다. 거금도 오천항과 시산도를 하루 3회 오가는 시산페리호 역시 섬 주민의 재력으로 마련한 도선이다. 고흥에서 청소차가 바다를 건너와 쓰레기를 깨끗하게 담아 나가는 일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시산도 표지석 뒷면에는 시산팔경이 기록돼 있다
시산도 표지석 뒷면에는 시산팔경이 기록돼 있다
바다에 띄워져 부류식 미역 양식에 사용될 어구
바다에 띄워져 부류식 미역 양식에 사용될 어구

지금껏 여행했던 작은 섬에서 이방인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그리고 밥은 먹었는지까지, 주민들의 말과 시선에는 걱정과 호기심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시산도에서는 배낭을 짊어진 여행자에 대해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상이 바쁜 탓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물양장 옆 널찍한 잔디공원에서의 설영은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이럴 땐 있는 듯 없는 듯 머무르는 것이 상책이다.

바다는 시산도 주민들의 오랜 생활 터전이다
바다는 시산도 주민들의 오랜 생활 터전이다

●신기롬에서의 밤

지도 앱을 찾아보니 섬의 서쪽 해안은 선착장을 끼고 있는 마을에 비해 무척 한적해 보였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는데 바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담한 해변 위로 놓인 약 1,650m2 남짓한 또 하나의 잔디 그라운드. 가까이 가 보니 화장실과 퍼걸러는 물론, 일체형 나무 테이블도 설치돼 있었다. 주민들을 위해 조성된 휴식공간임이 틀림없는 이곳의 이름은 ‘신기롬’. 모래 대신 몽돌이 몽실몽실 예쁘게 깔린, 이름처럼 신기한 해변이다.

시산도 해안은 한적한 여행을 위한 힐링 포인트다
시산도 해안은 한적한 여행을 위한 힐링 포인트다

여행자는 신기롬해변의 사용법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해가 지는 풍경과 어울리도록 적당한 장소에 텐트를 피칭하고 몸을 뉘었다. 파도, 바람 그리고 몽돌 구르는 소리, 여행의 고단함도 꿀잠에 한몫 보탰다.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 해변을 산책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물멍’도 했다. 배가 고팠지만 귀찮으니 복잡한 요리는 패스, 라면 하나를 끓여 국물까지 입속으로 털고 나니 하루가 뉘엿거린다.

신기롬해변은 잡광이 없어 별을 관측하고 사진에 담기 좋다
신기롬해변은 잡광이 없어 별을 관측하고 사진에 담기 좋다

밤에는 쏟아진다는 표현을 감히 써도 좋을 만큼, 정말 많은 별을 봤다. 크게 한 것이 없었지만, 나름 즐거웠고 쫓기지 않는 하루에 마음이 뿌듯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여행을 시산도가 내게 전해 줄 줄이야. 부자 섬의 이면에는 여행을 풍요롭게 해 줄 자연이 있다.

 

●다시 만난 시산도

‘노마드 고흥 주민 여행기획단’은 주민 스스로가 숨겨져 있는 스폿을 발견하고 주도적으로 여행 코스를 만들어 가는 사업이다. 그중에는 ‘섬 여행 반’도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반의 담임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주민 중 금산(거금도)에 거주하는 분들은 시산도에 대한 관심이 많은 듯했다. 

TV 방송에서 애국가 해돋이 장면의 배경으로 나왔던 살푸섬
TV 방송에서 애국가 해돋이 장면의 배경으로 나왔던 살푸섬

오랜만에 찾은 시산도항은 여전히 분주했다. 주민들의 쉼터인 용지공원의 모습도 그대로였다. 오래전 TV 방송에서 애국가가 시작되고 끝날 때 나오는 해돋이 장면의 배경이 됐다는 살푸섬 또한 여전했다. 하지만 찬찬히 둘러보니 달라진 것도 꽤 있었다. 마을에 편의점이 생기고 조립식 건물과 벽돌집이 많아졌다. 편의점은 육지에 버금갈 수준이었다. 휴게 공간까지 갖추고 있어 외국인 근로자나 주민들이 이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민박과 펜션도 두어 군데 늘어난 것 같았다. 

드론으로 촬영한 바다 김 양식 풍경과 봉화산 정상의 모습
드론으로 촬영한 바다 김 양식 풍경과 봉화산 정상의 모습

시산도 마을은 나지막한 봉화산(179m)이 감싸 안고 있다. 등산로가 정비됨에 따라 누구나 쉽게 걷고 오를 수 있게 됐다. 살푸섬과 신기롬해변을 거치면 대략 6km 거리가 된다. 트레킹 코스로도 손색없다. 봉화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선착장에서 북쪽 섬 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 위를 수놓은 김 양식의 놀라운 규모와 제식도 확인할 수도 있다. 의외의 장관이다. 섬 주민의 생활상도 때론 여행자의 즐거움이 된다. 

살푸섬에서 봉화산을 넘어 신기롬해변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살푸섬에서 봉화산을 넘어 신기롬해변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신기롬해변으로 내려왔다. 동행한 반원들에게 신기롬해변에서 보냈던 그 날, 별이 쏟아졌던 그 밤의 이야기를 전해 줬다. 그들은 낮잠과 물멍으로 보냈던 그 시간에 공감했다. 지금의 시산도는 그때보다 훨씬 좋은 여행 인프라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누리는 건 여행자의 몫이다. 마음을 비우고 느긋하게 맞이하는 여행도 있다는 걸 잊지 않은 채로.  

▶여객선   
금산(거금) 오천항 → 시산도항 | 3회 운항 (40분)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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