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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어워즈 2023 'Best Destination'

  • Editor. 이성균 기자
  • 입력 2023.12.10 0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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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취재부가 선정한 올해 ‘가장 인상적인 순간’ 그리고 ‘최고의 여행지’(2022년 11월~2023년 10월 기준)를 뽑았다. 

●라오스 루앙프라방 
여행의 기억 
강화송 기자

올해 최고의 여행지를 묻는다면 라오스 루앙프라방. 내 인생 첫 해외여행이자 동생과 함께했던 첫 번째 여행지. 그곳에서 나와 동생은 다짐했다. 우리가 함께하는 여행은 이번이 반드시 마지막이어야 한다며. 우린 너무 달랐다. 여행 중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동생의 옆통수를 보며 밤마다 화를 삭인 게 벌써 10년 전. 시간 참 빠르다.

2023년 1월, 홀로 루앙프라방을 여행했다. 난 루앙프라방의 새벽이 좋아서 매일 탁발에 참여했다. 탁발은 불교 승려의 수행 방식이다. 승려가 사용하는 식기를 ‘발우(鉢盂)’라고 한다. 승려들은 이 발우를 들고 마을로 나가 주민들에게 음식을 얻음으로써 개인의 아집을 없애고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탁발 행렬은 보통 새벽 5시 30분에 시작된다. 역사가 650년도 넘은 지역행사라 설렘이 없다. 일상적이고 근엄하다. 경건하고 다소곳한 루앙프라방의 새벽이 좋다.

10년 전, 동생이 그나마 좋아했던 시간이 바로 이 탁발인데, 갓 지은 밥 냄새에 온 동네 강아지들이 마을로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동생은 항상 보시용 밥을 몇 덩이나 사서 골목 어귀에 쪼그려 앉아 동네 강아지들에게 밥을 먹이곤 했다. 하루는 그 골목을 괜히 가서 서성여봤다. 그러다 눈이 마주친 강아지에게 밥도 줘봤고. 낮에는 동생과 함께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도 가보고, 국숫집도 가보고, 카페도 가보고. 그렇게 징글징글해도 결국 추억하면 좋은 게 여행과 가족인가 보다. 그래서 라오스 루앙프라방은 내게 특별하다. 장담컨대 다신 없을 동생과의 여행이 남은 곳. 특별해서 좋다. 여행은 이렇게 단순하다. 그래서 여행이 좋다. 

 

●북마리아나 티니안
사람으로 기억하는 여행
손고은 기자

올해 7개국, 12개 해외 도시를 여행했다. 국내에서는 월평균 1.8회 서울 밖으로 떠났다. 그중 가장 먼 여행은 미국 샌안토니오, 가장 가까운 여행은 강화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여행은 겨울의 강릉, 가장 배불렀던 여행은 프랑스 리옹, 가장 외로웠던 여행은 샌프란시스코로 기록됐다. 그리고 가장 완벽하지 않았던 여행지는 티니안이다. 티니안은 사이판에서 경비행기로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인구 약 3,000명의 작은 섬이다. 호텔, 택시, 버스, 신호등, 24시간 편의점, 스타벅스, 맥도날드, 근사한 레스토랑 등 티니안에서 만날 수 없었던 것들을 나열하자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편리하고 호화로운 여행은 사실상 불가능한 곳이다.

티니안은 없는 것 투성이라 가장 완벽하지 않았던 여행지였지만, 가장 멋진 여행으로 남았다. 이유로 티니안 사람들을 빼놓을 수 없다. 티니안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대체로 유머러스하고, 대체로 친절했다. 낯선 외지인으로부터 어떤 것을 바라는 마음 없이, 순수하게 그랬다. 마치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이방인에게도 시시콜콜한 옆집 이야기를 털어놓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땐 선뜻 도와줬다. 심지어 아무렇지 않게 고기와 술을 내어주기도 했다.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사람들이다. 

티니안에 근무 배치된 경찰들은 조금씩 뚱뚱해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건‧사고 없이 평온한 곳이라는 의미. 마음에 여유를 가진 이웃이 곁에 있다면 그곳은 살기 좋은 곳일 테고, 그런 곳이라면 여행자에게도 잊지 못할 경험을 줄 수밖에 없다.

 

●일본 사가현
취향의 발견
이성균 기자

해가 거듭할수록 취향은 더욱 확고해지고, 선호하는 여행 방법도 고착화되는 것을 느낀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이뤄낸 성과다. 어떤 상황과 공간에서 즐거운지, 혹은 불편함을 느끼는지 잘 안다는 뜻이다. 반면 새로운 시도는 줄어들었다. 최근 들어 팸투어나 누군가 일정을 구성해 준 여행을 반갑게 맞이하는 이유다. 내 기호와 전혀 다른 상황에 당황할 수도 있지만, 종종 또 다른 취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장이 일종의 도전이 된  셈이다. 

올해는 사가현이 그랬다. 일본 규슈(후쿠오카가 있는 지역) 7개 현에서 규모가 가장 작고, 시골이라는 말에 걱정이 컸다. 재미는 차치하더라도 ‘잡지에 실을 그림’ 확보가 고민이 됐다. 다행히 수심에 찬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첫 번째 숙소에서 만난 삼나무에 홀랑 마음을 내줬고, 기사 메인급 사진도 건졌으니 말이다.

이후 모든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게다가 사가현은  기대 이상의 목적지였다. 바다와 산림, 사케와 차, 특별한 식재료(소고기와 오징어), 도자기, 온천 등 지역마다 콘셉트가 명확했고 볼거리도 풍성했다. 그중에서도 사가의 삼나무, 다케오의 3,000년 수령의 녹나무는 자연 속 명상의 즐거움을 선물했고, 이마리와 아리타는 각양각색의 도자기를 보여줬다.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이마리야끼와 아리타야끼(도자기) 탓에 한껏 눌러둔 물욕이 다시금 깨어났다. 먹고 마시는 것에 관심이 많아 식기에 눈길을 줬지만,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이런 나를 이마리와 아리타가 무너트렸다. 두 번째 여행에서 카드를 긁기 시작했고, 세 번째 여행도 마음먹게 했으니 말이다.

 

●캐나다 퀘벡
루틴과 푸틴
곽서희 기자

올해 5월, 캐나다 퀘벡에서 1년 같은 열흘을 보냈다. 지루했단 얘기는 아니고. 그만큼 농도가 짙었단 거다. 출장의 목표는 RVC(Rendez-vous Canada 2023), 세계 각지의 여행업계 종사자들이 한데 모이는 캐나다 국제관광박람회다. 하루에 잡혀 있는 일정 수의 미팅만 하면,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스케줄이 비면 명찰을 떼고 곧바로 올드타운으로 내려갔다. 대게 낮이라 한가했다. 

퀘벡은 정말 작다. 3일째였던가. 구글맵을 껐다. 이런 작은 도시에선 이틀만 지나도 루틴 비슷한 게 생긴다. 내 루틴은 보통 이랬다. 뒤프랭 테라스에서 레몬에이드를 마신다→쁘띠 셩쁠랑 가를 걷는다→도깨비 언덕을 오른다. 배가 고프면 폭립을 썰었고 배가 부르면 세인트로렌스 강변을 달렸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면 숙소 앞 바에 갔다. 따끈한 푸틴(러시아 대통령 아니다, 퀘벡 전통 감자요리다)을 시켜 두고 바텐더와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이 도시에 대해 떠들어댔다. 포슬했던 푸틴이 푸석해질 때까지. 그건 더 이상 ‘취재’가 아니었다. 여행이었다.

이런 단편적 기억 말고는 뭐가 특별히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말한다 해도 그건 그냥 사실의 나열에 불과할 것을 안다. 대게 사랑에는 별다른 이유도, 뾰족한 수도 없다. 루틴처럼 반복적인가 싶다가도, 푸틴처럼 중독적인 게 사랑 아니던가. 피할 수도 없으니 한 번 맞닥뜨리면 그냥 내리는 비를 맞듯, 쏟아지는 감정을 맞고 서 있어야 할 뿐이다. 2023년 초여름, 나는 퀘벡이란 사랑을 맞고 서 있었다. 당시엔 가랑비인 줄 알았건만 돌아보니 마음까지 다 젖었다. 내겐 퀘벡이 그랬다.

 

●필리핀 보라카이
찾았다, 나의 쉼표
김다미 기자

인생 첫 휴양지로 보라카이를 선택했다. 여행은 모름지기 걷고 또 걷고, 보고 또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나흘 동안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먹고, 쉬려고 했다.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보라카이에서 마주한 첫 바다는 휑했다. 물이 다 빠져서 그랬겠지만, 사진으로 봤던 환상적인 바다는 어디에도 없었다. 여행 첫날 ‘여기는 한 번이면 충분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음날 큰 기대 없이 스노클링 장비를 챙겨 바다를 다시 찾았다. 그런데 웬걸 전날과는 다른 모습을 마주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발목에서 찰랑거렸고, 투명 카누는 물 위를 유유히 떠다녔다. 길고 짧고,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뛰노는 황홀한 바닷속을 구경했다. 첫날의 아쉬움을 훌훌 털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해와 동해가 오묘하게 섞인 바다, 주황과 보랏빛으로 찬란했던 노을, 소나기가 그친 뒤 우연히 만났던 무지개, 달콤했던 과일 그리고 필리피노들과 나눴던 소소한 대화들까지, 인생 첫 휴양지에서 무수한 추억들을 챙겼다. 보라카이에서의 시간은 현실을 버티는 힘이 됐고, 지친 날에는 나도 모르게 보라카이 항공권을 검색하게 됐다. 걱정 없이 웃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멍 때리던 날들을 다시 누리기 위해서. 단 한 번의 여행으로 가장 마음이 가는 곳이 됐다.


글·사진 무교로16 취재부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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