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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북한산, 지난 가을 이야기

  • Editor. 장태동
  • 입력 2023.12.20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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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가을이 그립다. 지난 가을 북한산 이 능선 저 능선을 걸으면서 ‘단풍숲’에 푹 빠져서 놀았다. 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북한산이다. 지난 가을 북한산 단풍숲을 거닐 던 날들 중 외국인을 만나지 않은 날이 없다. 산을 좋아하는 젊은 청춘 남녀가 북한산 등산 데이트를 즐긴다. 청춘은 그 자체로도 빛나지만, 산에서 만난 청춘은 더 싱그럽게 빛났다. 지난 가을 다녀왔던 북한산의 가을 이야기 중 하나를 여기에 남긴다.  

대성문 직전 단풍숲.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가 트여 파란 하늘이 보인다.
대성문 직전 단풍숲.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가 트여 파란 하늘이 보인다.

●동령폭포에서 추사를 만나다

북한산 평창동 지킴터로 들어선다. 이정표 뒤 일선사 안내판이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간이화장실이 보인다. 평범한 숲길을 걷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걸음을 멈춘다. 동령폭포다.

동령폭포 윗부분
동령폭포 윗부분

비스듬하게 누운 거대한 바위, 거대한 바위의 골을 따라 흐르는 누운 폭포, 비류직하의 웅장한 폭포는 아니지만 폭포를 이룬 바위가 볼만하다. 아니나다를까, 조선시대 사람 추사 김정희가 다녀갔단다. 추사는 여름 어느 날 비 갠 뒤 친구인 김유근, 김경연과 함께 동령폭포를 찾았다. 비 온 뒤 산골짜기와 폭포가 볼만 했나보다.

‘첩첩이 포개진 저 비취 무더기’라고 동령폭포와 그 주변 산세를 노래한 추사의 눈에 들어온 건 소나무와 구름이었다. ‘그윽한 소나무 고사와 같고, 흰 구름은 기이한 형상으로 빛을 내네’라는 시 구절을 남긴다. 물소리, 바람소리, 숲향기, 하늘과 구름, 반짝이는 자연 속에서 추사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이치를 얻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사람 마음 고요도 한데’라고 덤덤하게 썼다.

추사는 ‘돈과 명예의 욕심을 버리니 기쁨도 슬픔도 없다’라는 구절로 시를 마무리했다. 추사의 눈길 위에 나의 눈길을 포개며 추사의 마음을 짐작해 보았다. 동령폭포에서 그렇게 추사를 만났다.

 

●단풍 또 단풍 그리고 나 

2023년 11월 7일 동령폭포에서 문수봉 방향으로 가는 숲길은 단풍, 그리고 또 단풍이었다. 빨간 원색의 단풍, 갈색으로 물든 중후한 단풍, 노랗게 물든 파스텔톤 단풍, 그 모든 단풍색이 어울린 색의 향연, 그 색의 향연이 하늘을 가리고 단풍터널을 만든 숲길을 걸었다. 

대성문 바로 전 단풍숲
대성문 바로 전 단풍숲

출발했던 평창공원지킴터에서 1km 왔고, 대성문까지 1.3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난다. 형제봉공원지킴터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만나는 숲속 삼거리에서 대성문 쪽으로 간다. 대성문까지 1km 남았다. 

꽃은 산 아래서 위로 퍼지고 단풍은 산 위에서 아래로 퍼지는 게 자연의 보통 이치다. ‘보통’에서 ‘늘 그런’, ‘항상’으로 생각이 이어진다. ‘항상’은 ‘보통’이 ‘순한 이치’로 확장되는 매개가 되었다. 초록도 불처럼 타오를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여름의 무성한 숲, 초록을 지나 ‘단풍숲’이 된 숲길에서 ‘순한 이치’를 본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걷는 나를 본다. 

대성문
대성문

어느새 대성문에 도착했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꽃향기가 났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발치에 피어난 작은 꽃이었다. 잎과 꽃 모양이 국화 같았다. 이름 모를 들꽃의 향기가 대성문 앞에 자욱했다.  

대성문을 통과해서 대남문으로 가다가 돌바본 풍경. 단풍숲 사이로 대성문이 보인다.
대성문을 통과해서 대남문으로 가다가 돌바본 풍경. 단풍숲 사이로 대성문이 보인다.

●북한산성 대성문과 대남문을 지나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북한산성은 백제의 첫 수도인 하남위례성을 지키던 북방의 성이었다. 132년(개루왕 5년)에 세워졌다. 11세기 초 거란이 고려를 침략했을 때 현종이 태조 왕건의 관을 이곳으로 옮겼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은 뒤 숙종 임금이 대대적으로 성을 고쳐지었다. 토성 위주의 성을 석성으로 견고하게 쌓은 것이다. 13개의 성문과 3개의 장대(군사 지휘소), 12개의 사찰과 99개의 우물, 26개의 저수지가 있었다. 

대남문
대남문

북한산성의 성문 중 하나인 대성문을 지나 대남문 쪽으로 걷는다. 그 길도 온통 단풍이다. 돌아본 단풍숲, 단풍잎 사이로 보이는 대성문이 삼엄한 군영의 역사와 상관없이 낭만적이다. 대성문에서 대남문까지 거리가 300m다. 대남문은 금세 나왔다. 대남문은 북한산성의 가장 남쪽에 있는 성문이다. 대남문에 서서 성 밖 풍경을 본다. 보현봉이 산 아래로 번지는 주변 풍경을 거느리고 있었다.     

대남문에 올라 본 보현봉
대남문에 올라 본 보현봉

●문수봉 세 마리 개와 문수사

대남문에서 문수봉으로 향했다. 북한산성 성곽 옆 산길을 오른다. 키 작은 소나무 군락을 지나면 문수봉이다. 

해발 727m 문수봉에 서면 사방으로 시야가 트인다. 북한산에서 가장 높은 백운대와 인수봉이 멀리서 늠름하게 솟았다. 반대쪽으로는 앞으로 가야할 능선과 봉우리들이 펼쳐진다. 보현봉이 거느린 풍경이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형국도 보인다.

문수봉에서 만난 개. 개 세 마리와 김밥 한 줄을 노나 먹었다.
문수봉에서 만난 개. 개 세 마리와 김밥 한 줄을 노나 먹었다.

울긋불긋 단풍숲을 헤치고 뻗어나간 건 북한산성 성곽이다. 한참 동안 문수봉을 지나는 바람을 느끼며 서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개 한 마리가 문수봉을 지키기 시작했다. 지난 가을에는 식구가 세 마리로 늘어있었다. 한시도 쉬지 않는 문수봉 바람 속에서 김밥 한 줄을 개 세 마리와 노나 먹었다. 

문수봉에서 본 백운대와 인수봉
문수봉에서 본 백운대와 인수봉

문수봉 아래 숲속에 보이는 한옥 기와지붕은 문수사다. 고려시대인 1109년에 문수암을 지었다. 문수암 주변 동굴은 문수굴이라 불렀다. 문수봉의 이름은 문수사에서 딴 것이다. 

문수봉에서 본 풍경. 사진에 보이는 기와지붕이 문수사절집 건물 중 하나다. 보현봉에서 흘러내린 산줄기도 보인다. 멀리 희미하게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이 보인다.
문수봉에서 본 풍경. 사진에 보이는 기와지붕이 문수사절집 건물 중 하나다. 보현봉에서 흘러내린 산줄기도 보인다. 멀리 희미하게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이 보인다.

●청수동암문을 지나 승가봉에 도착하다

문수봉에서 다음 목적지인 승가봉으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바위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청수동암문을 통과해서 숲길 내려가는 것이다. 바위 능선길은 전망은 좋지만 위험하고 청수동암문을 통과해서 걷는 숲길은 전망은 없지만 단풍숲이 이어진다. 청수동암문 쪽으로 내려섰다. 

청수동암문
청수동암문

청수동암문에서 비봉 방향으로 향했다. 청수동암문은 나월봉과 문수봉 사이 고갯마루에 만든 암문(적의 눈에 띄지 않게 누(樓) 없이 만든 문.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구원병 등 병사들을 눈에 띄지 않게 이동시키던 비상출입문)으로 탕춘대성과 비봉에서 성 안쪽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통제하던 문이었다. 

청수동암문에서 내려가는 길
청수동암문에서 내려가는 길

가파른 계단을 내려선다. 왼쪽은 거대한 절벽이고 주변은 온통 단풍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정표를 만났다. 문수봉에서 바위 능선길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곳에 이정표를 세워놓은 것이다. 청수동암문에서 300m 왔고 사모바위가 1.1km 남았다고 알려준다. 사모바위 방향으로 걷는다. 

쇠줄을 잡고 오르는 바위 비탈면
쇠줄을 잡고 오르는 바위 비탈면

숲길을 지나니 바위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바위 비탈면에 설치한 쇠줄을 잡고 올랐다. 커다란 바위와 바위 사이 좁은 길을 오른다. 두 바위 위에 또 다른 바위가 얹혔다. 먼저 도착해서 쉬는 사람에게 물으니 이곳이 ‘통천문’이란다. 통천문 바위 위에 올라 사방으로 펼쳐진 풍경을 본다. 멀리 비봉이 보인다. 비봉 능선의 주인공이 비봉이다. 

비봉
비봉

통천문 바위에서 내려와 승가봉 쪽으로 걸었다. 승가봉에서 보는 전망도 통쾌하다. 사모바위와 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에서 좌우로 퍼져 내려가는 숲은 저 멀리 더 아래에서 다른 산줄기를 이루고 도시로 스며든다.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 사이 자하문 고개 언저리가 어떤 형국으로 형성됐는지, 자하문 고개 자하문 밖 부암동이 어떻게 자리를 잡았고 자하문 안쪽에 펼쳐지는 서울 도심은 어떻게 산과 어우러졌는지, 그런 게 다 볼만하다. 인왕산과 안산 사이 무악재와 그 주변 풍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한강이 햇볕에 반짝이고 더 멀리 관악산과 경기도의 산하가 희미하게 보인다. 사모바위 아래 보이는 숲속 기와지붕은 승가사다. 

승가봉을 지나며 본 풍경. 남산, 백악산(북악산) 인왕산, 안산, 서울 도심 풍경과 멀리 관악산 일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승가봉을 지나며 본 풍경. 남산, 백악산(북악산) 인왕산, 안산, 서울 도심 풍경과 멀리 관악산 일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사모바위 고양이와 승가사

사모는 조선시대에 벼슬아치가 관복을 입을 때 머리에 쓰던 모자다. 근래에는 전통혼례를 올릴 때 신랑이 쓴다. 바위 모양이 사모를 닮아 사모바위라고 했다.   

사모바위. 산 밖에서 보았을 때는 작아보였는데, 바로 옆에서 보니 엄청 컸다.
사모바위. 산 밖에서 보았을 때는 작아보였는데, 바로 옆에서 보니 엄청 컸다.
사모바위 옆 너른 바위에서 만난 고양이
사모바위 옆 너른 바위에서 만난 고양이

산 밖에서 사모바위를 볼 때는 작은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엄청나게 크다. 바위에서 호연지기가 느껴진다. 사모바위 주변에 사람들이 쉬어가기 좋은 너른 바위가 있다. 문수봉과 비봉, 진관공원지킴터 방향으로 길이 갈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삼거리 너른 바위에 햇볕이 가득했다. 잠시 앉아 일행과 사과를 쪼개 먹으며 주변 산세를 즐긴다. 사람들 사이를 오가던 고양이 한 마리가 양지바른 바위에 앉아 존다. 오후 3시20분이었다. 

사모바위
사모바위

낮 11시30분에 출발해서 경치 좋고 전망 좋은 곳에 머물며 사진을 찍고 쉬엄쉬엄 걸었다. 단풍과 전망에 저절로 그렇게 됐다. 벌써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비봉 쪽으로 걷다가 비봉 400m 전에서 승가사 쪽으로 내려섰다. 승가사까지 700m 남았다. 

승가봉을 지나며 본 풍경. 숲속에 보이는 기와지붕 모인 곳이 승가사다.
승가봉을 지나며 본 풍경. 숲속에 보이는 기와지붕 모인 곳이 승가사다.
승가사 마애불 앞에서 본 풍경
승가사 마애불 앞에서 본 풍경

거대한 석탑 앞에 서서 풍경을 살핀다. 승가사는 신라시대 수태 스님이 서역 승려인 승가 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절이란다. 절 구경의 마지막은 절벽에 새겨진 부처상, 마애불이었다. 고려시대 왕실의 지원을 받아 만든 마애불이다. 임금이 직접 마애불 앞에서 기도하며 나라의 안녕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승가사 마애불의 공식 이름은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 좌상’이다. 

승가사 마애불로 오르는 계단
승가사 마애불로 오르는 계단
승가사 마애불
승가사 마애불

아무 생각 없이 계단을 올라 마애불 앞에 섰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거대한 바위 절벽 한 면에 홈을 판 뒤 불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머리 위에 8각 머릿돌을 끼워 넣었다. 마애불이 바라보는 시선에 내 눈길을 포갰다. 백악산(북악산) 능선의 북악팔각정과 그 넘어 서울 도심 풍경이 보였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백악산(북악산) 북악팔각정 전망대에서 보았던 그 부처상이 바로 이 마애불이었다. 마애불을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서려는데 문득 마애불로 오르는 계단이니 무슨 뜻이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하나하나 세며 밟았다. 108 계단이었다.    

승가사 석탑
승가사 석탑

글·사진 장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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