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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 라디오도 때로는 침묵을 지킨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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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인들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안식일을 엄격히 지키는데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에 시작해 토요일 일몰까지 계속되며 이스라엘의 모든 신문은 그 정확한 시간을 게재해야 한다. 안식일 기간 중에는 만일 상대방이 유대교 신자라면 아무리 절친한 친구나 사업상 중요한 일이 있어도 전화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들 종교인에게는 안식일 기간 중에는 전화 받는 것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기간 중에는 요리나 TV 시청, 라디오 청취, 청소, 목욕, 샤워 등이 모두 금지된다. 전등을 켜는 것조차 금기시 된다. 

하지만 이스라엘인들은 현대 기술의 도움으로 이 같은 엄격한 율법으로 인한 생활의 불편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음식은 금요일 일몰 전에 준비해 보온시켜 놓고, 자동 모니터로 예약된 시간에 자동적으로 전등이 점등, 소등되도록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동응답기를 사용한 전화 수신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럴듯한 생각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불가능하다. 안식일 기간 중에는 자동응답기 사용 역시 금지되기 때문이다. 기도만 하라는 뜻일까? 그 답을 얻고 싶다면, 이스라엘에는 정식 랍비들의 모임인 이스라엘 최고 랍비 회의(The Chief Rabbinate)가 있어 고대 율법을 해석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명쾌한 해석을 내려 주니, 구약성서와 자동응답기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이들에게 해석을 부탁해 보는 건 어떨까? 

지난 걸프전 당시 스커드미사일 39대가 이스라엘에 떨어졌다. 당시 라디오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이스라엘인들은 90초 이내에 재빨리 대피소로 피신해 방독면을 쓰고 다음 지시를 기다리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이스라엘 최고 랍비회의는 처음에는 생사가 달린 이 같은 비상 상황시에는 안식일 기간이라도 라디오를 켜는 것이 허용된다는 예외 규정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안식일에는 라디오를 켜는 행위 자체가 금기되므로 안식일 전에 라디오를 미리 켜 놓아야 한다며 규정을 바꿨다. 단, 라디오가 옷장 속에 있어 보이지 않을 경우는 예외로 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그 이후 이스라엘 방송 당국의 발표는 이스라엘에서 종교가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지 실감하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라디오 방송국으로 하여금 전쟁 중 안식일을 맞게 됐을 경우 음원소거를 하고 있다가 미사일 공격이 있을 경우에만 이를 방송으로 알리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라디오를 켜 놓더라도 생사를 가르는 상황이 닥치기 전에는 그 어떤 소음도 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랍비다운 생각인가? 

이스라엘과 종교의 관계를 보여 주는 또 다른 일화가 있다. 전쟁기간 동안 음원소거를 당한 방송에는 중간에 광고 없이 계속 클래식 음악만 틀어 주는 매우 인기 있는 ‘보이스 오브 뮤직(The voice of Music)’이라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도 포함되었다. 이 때문에 주말 내내 유대교 신자가 아닌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은 브람스나 말러의 음악 대신 고요하고 지루한 절대적인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과연 공평한 일인가? 그런 곳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햄치즈 샌드위치가 없는 나라 

코셔법(Kosher Laws)은 유대교 신자에게만 적용되는 금기와는 달리 모든 여행객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만일 나처럼 랍스터 꼬리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스라엘에서는 상당한 자제심이 요구된다. 코셔법은 돼지고기 요리와 해산물을 금하고 육류와 유제품을 함께 먹지 못하도록 한다. 따라서 유대교 신자 집에서 육류요리와 치즈가 함께 식탁에 오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식당에서도 육류요리와 유제품을 담는 식기가 별도로 마련된다. 이 두 가지가 절대 섞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코셔법을 따르는 가정에서는 닭고기나 소고기 요리 다음에 아이스크림이 후식으로 나오는 일은 절대 없다. 또한 커피에 우유를 타도 안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있는 동안은 자신의 식습관도 이들의 율법에 맞춰야 한다. 점심식사로 햄치즈 샌드위치 생각이 간절한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살라미 치즈 샌드위치도 마찬가지다. 정 먹고 싶다면 햄 샌드위치와 치즈 샌드위치를 따로 사서 본인이 직접 햄 치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수밖에는 없다. 주변에 엄격한 유대교 신자가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직장 구내식당과 간이식당, 카페 등과 같은 공공 식당 역시 코셔법을 따른다. 동료의 종교적 율법을 지켜 주기 위해 구내식당에서조차 자신의 입맛을 희생해야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까? 이 문제는 다시 한 번 이스라엘에서의 종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어떻게 보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될 수도, 또 다르게 보면 종교적 강제행위가 될 수도 있는 상당히 미묘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큐리어스 시리즈는 도서출판 휘슬러에서 출간한 '큐리어스 시리즈'에서 발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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