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소설가 김주영 - “걸쭉한 문학, 아름다운 여행 그리고 달콤한 인생”"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11.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래비

어느 깊은 산골 마을에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자연 외 별다른 놀거리 찾기 힘든 산골에 살던 소년을 아버지가 어느 날은 장에 데리고 갔지요. 신이 나서 아버지를 따라 장에 나선 소년은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 아버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버지를 찾아 헤매다 동네 아저씨들을 만난 소년은 아저씨들과 함께 차를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지요. 

차를 타고 어둑한 산길을 지나던 중 갑자기 차가 멈춰 섰어요. 무슨 일인가 앞을 내다보니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떡 하니 차를 가로 막고 있는 겁니다. 호랑이는 꿈쩍도 않고 차 앞을 가로 막고 있었고 사람들은 겁에 질리기 시작했죠. 차 안에 타고 있던 어른들은 “이대로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모두 다 큰일 나겠다”며 “우리 중에 호식(虎食, 사람이 범에게 잡아먹힘) 당할 팔자의 사람을 가려 한 명이 희생하고 나머지는 사는 길을 택하자”고 했죠. 벗고 있던 옷을 호랑이에게 던져 호랑이가 그 옷을 그냥 던져 버리는 사람은 호식 당할 팔자가 아니니 그냥 가고, 호랑이가 옷을 계속 물고 있다면 그 사람이 호식 당할 팔자니 그 사람을 제물로 남겨두고 떠나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차에 타고 있던 한 사람씩 가슴을 졸이며 옷을 던지기 시작했죠. 첫 번째 사람이 옷을 던지자 호랑이는 옷을 휙 던져 버렸고 두 번째 사람이 또 옷을 던지자 호랑이는 옷을 휙 던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사람 차례까지 왔고 마지막 사람은 거의 절망하며 옷을 던졌답니다. 하지만 호랑이는 그 옷마저 휙 던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해 하고 있는데, 그 순간 어른들 틈 속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소년이 눈에 띄었죠. 어른들은 싫다는 소년의 옷을 억지로 벗겨 호랑이 앞에 던져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호랑이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 옷을 입에 물고는 절대 놓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울부짖는 소년을 내려놓고는 차를 달려 도망가 버렸죠. 

소년은 호랑이 앞에서 겁에 질려 한참을 울었는데 호랑이는 소년에게 조금의 해도 입히지 않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답니다. 소년은 어두운 밤 산길을 달려 무사히 동네로 돌아올 수 있었지요. 하지만 소년을 버리고 떠났던 차는 어두운 산길에서 전복해서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목숨을 잃었던 것입니다.

“대단한 반전이 아닌가요? 아주 어릴 적 이 이야기를 듣고는 ‘나도 저런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로 손꼽히는 김주영 작가에게 글을 쓰고 싶은 동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그 어떤 거창한 것도 아니라 어린 시절 한 시골 머슴에게 들었던 이 이야기다. “50~60년이 지났는데도 희한하게 이 이야기만은 토시 하나 잊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백하건데, 기자는 김주영 작가의 구수한 이야기를 그대로 글로 옮기지 못했다. 이야기꾼 김주영 작가의 입을 통해 전해진 이 ‘이바구’는 훨씬 더 재미있었다는 점만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작가 김주영의 문학

경북 청송의 깊은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주영은 외롭게 지냈다. 어릴 때는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시골이라 많이 배우지도 못했던 그가 소설을 쓰게 된 것은 바로 청송의 자연과 머슴들 때문이란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그는 머슴들이 모이는 방에 가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머슴들은 주로 전국 각지에서 온 뜨내기들로, 그들이 전하는 세상 이야기는 어린 김주영에게는 마냥 신기한 다른 별 이야기 같았다. 

“그들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이야기만은 그 누구보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했어요. 그들의 그런 이야기들이 어린 제게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김주영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글쓰기 솜씨를 자랑하며 어린 나이에 등단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는 안동역 근처 전매청 엽연초생산조합 사무실에서 10년이란 세월을 주사로 근무하며 ‘지겹도록’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그러다가 1971년, 서른셋이라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에 소설 <휴면기>로 마침내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후로 <홍어>, <화척>, <객주>, <천둥소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등의 대작들을 탄생시켰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대하소설 <객주>를 집필하면서 그는 전국의 수많은 장터를 돌아다녔으며 한자 대신 우리말 표현을 살리기 위해 매일같이 사전을 뒤져가며 밤을 지새웠다. “역사도 잘 모르고 많이 배우지도 못한 내게 대하소설을 쓴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습니다. 저는 글 쓰는 데 타고난 소질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몇 배로 더 노력했던 거죠.” 

그는 늘 노력하고 늘 부지런히 움직인다. 소설의 소재도 그냥 앉아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찾아가 부딪치고 직접 느껴 보는 것이 김주영의 스타일이다. 동해와 관련된 책을 쓰기 위해 그는 지난 수년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동해로, 동해로 떠났다. 그게 바로 김주영이다.


ⓒ트래비

작가 김주영의 여행

작가 김주영이 글쓰기만큼 좋아하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여행이다. 그는 유럽과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 중동까지 여행했을 정도로 여행광이다. 세계 지도를 펴놓고 가본 곳을 꼽는 것보다는 가보지 않은 곳을 꼽는 게 훨씬 빠를 정도로 많은 곳을 여행했다. 특히 아프리카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데, 이미 몇 차례 여행한 경험이 있지만 기회가 되면 또 아프리카를 방문하고 싶단다. 

“아프리카는 대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예전에 아프리카 초원에서 초식동물인 누우가 새끼를 낳는 장면을 봤는데 어미가 갓 태어난 새끼에게 젖을 물리지 않고 자꾸 피하는 거예요.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초식동물인 만큼 다른 포식자들에게 잡혀 먹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혼자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먼저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새끼에게 당장 젖을 주는 것보다는 혼자 일어서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더 큰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죠. 동물의 어미도 이러한데 인간들의 어머니야 오죽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찡하더군요. 아프리카는 그런 가르침이 있어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곳이에요.”

그는 여행을 하면서 일체의 메모도 하지 않는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작가가 웬일일까 싶지마는 그는 “여행을 가슴과 온 몸으로 느끼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김주영의 여행은 메모지가 아니라 그의 가슴에 남아 있다. 그리고 가슴에 남은 여행의 감동이 그의 작품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

김주영 작가가 여행광이라는 사실을 인터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나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라면 이미 다른 매체나 책을 통해 자신의 여행기를 글로 풀었을 만한데 김주영의 여행기는 도무지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니는데 여행기도 기고하고 책도 내라’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던 황순원 선생님은 소설 외 다른 잡문은 일체 쓰지 않으셨어요. 다른 글을 쓰다 보면 작품에 들어가야 할 요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버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죠. 저 역시 그 생각에 동감합니다.”

세계 그 어떤 여행지보다 우리나라가 가장 아름답다는 김주영 작가는 지금 이 순간도 작품을 구상하며 어느 산골, 어느 장터거리를 혼자 유유히 걷고 있을 지도 모른다.

-주간여행정보매거진 트래비(www.travie.com) 저작권자 ⓒ트래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