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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를 찾아가는 여정 - 템플스테이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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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래비

 

그곳에서 나를 돌아본다


1박2일간 템플 스테이 체험을 위해 가야산 자락 깊은 곳에 자리한 해인사를 찾았다. 세계문화유산인 고려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법보(法寶)사찰로 유명한 곳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과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이 편안하고 아늑하다.

 

첫째 날                                                       

ⓒ 트래비

 

미리 나눠 준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참가자 모두가 보경당에 모여 앉았다. 사찰 입소를 위한 입재식 시간. 간단한 제례를 마치고 난 후, 해인사 포교국장인 일감스님이 사찰 법도와 예절을 일러준다. 스님은 두 손을 마주하고 합장 시범을 보인다. “합장은 흩어진 마음을 한데 모아 줍니다. 또 상대와 나의 마음을 합하고 우주와 나를 합일시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절 내에서는 만나는 누구든 합장을 하고 반배에 해당하는 인사를 합니다. 법회시에는 반배와 삼배를 차례로 하면 됩니다.” 차수와 묵언에 관한 당부도 이어진다. 차수는 손을 포개어 엄지 손가락이 보이지 않도록 한 자세로 마음을 한결 정갈하고 단정하게 만들어 준다.


사찰 예법과 몸가짐을 익히고 나니 바깥에서 묵직한 북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법고 소리다. 웅장하면서도 울림이 큰 법고 소리는 사찰을 한바퀴 돌아, 온 산을 휘감고 내려온다. 법고에 이어 범종각에 걸린 사물(四物)들이 차례로 울리면 법당에서는 하루를 마감하는 법회가 시작된다. 법회가 열리는 대적광전에는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 부처가 모셔져 있다.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법회는 일상에서는 접하기 힘든 색다른 문화체험이다. 굳이 종교적 차이를 따지지 않아도 예불 시간은 한국불교문화를 체험하다는 차원에서 충분히 참가해 볼 만하다. 종교의식이란 고정관념만 버린다면 예불시간을 통해 얻는 정신적, 문화적 감흥은 생각 외로 크게 다가온다.

 

차 한잔의 여유, 다도체험

 

‘약방에 감초’라고 ‘다도(茶道)’는 산사 체험에서 빠지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참가자 모두 보경당에 모여 서넛씩 짝을 지어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차반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다기들이 그간 편리함만을 추구해 온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다도가 갖는 의미는 차를 직접 만들고, 그 맛을 느끼며, 편안하게 마음을 다스려 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여유를 갖고 자신을 반추해 보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미황사 주지스님인 금강스님이 차의 역사와 유래, 종류까지 막힘 없이 이야기를 풀어 낸다. “차는 ‘수승화강(水乘火降)’, 즉 찬 기운을 올리고 뜨거운 기운을 낮춰 주기 때문에 머리를 맑게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찰에서는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정진해야 하기 때문에 스님들은 차를 즐겨 마신답니다. 사찰에 따라서는 직접 재배하는 곳도 있죠.” 해인사에서는 기후 때문에 차 재배가 어렵지만 미황사에서는 직접 차나무를 재배하고 있단다. “미황사에 오신다면 그때 또 못 다한 차 이야기를 나누죠.”

 

금강 스님은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긴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본격적인 다도 체험시간이다. 스님을 따라 먼저 뜨거운 물을 다관에 넣은 후 그 물을 다시 찻잔에 나누어 따라 다관(茶罐)과 찻잔을 덥혀 낸다. 다시 다관에 차를 넣어 물을 붓고 차를 우려낸 뒤, 찻잔에 조금씩 따르고 다시 반대 순서로 돌아오면서 잔을 채운다. 조심스레 차를 우려내고 따르다 보니, 이제까지 머그컵에 티백 하나 집어 넣고 몇 번을 두고 우려 먹던 습관이 왠지 이 시간만큼은 게으르고 조급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차 한잔 마주하고 앉아 여유롭게 대화를 나눌 만한 여건을 허락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차는 오감으로 마신다는데, 귀로는 찻물 끓이는 소리를 듣고, 코로는 향기를, 눈으로는 다구(茶具)와 차를, 입으로는 차의 맛을, 손으로는 찻잔의 감촉을 즐기기 때문이란다. 술을 마시며 풍류를 즐긴다고 하지만, 차를 마시면서도 이렇게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니 새삼스럽기만 하다. 작은 찻잔이 감칠맛나기도 하지만 조금씩 잔을 채우고 마시고, 다시 채워 나가는 사이 어느샌가 이 같은 즐거움을 음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더 놀라웠다. 돌아가면 가장 먼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을 다기를 꺼내 손질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산사에서는 밤 10시면 모든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든다. 일상에서 벗어나니 사찰에서 보낸 하루가 또 다른 세계를 접한 듯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하다. 산사의 밤은 길고도 짧다. 허나 누가 산사의 밤을 고요하다 했던가. 적막한 침묵 속에서도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소리와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밤 하늘을 가득 채운다. 

 

둘째 날                                                      

 

ⓒ 트래비

 

새벽녘, 고요한 적막을 깨는 법고 소리와 함께 산사의 하루가 시작된다. 법당 밖으로 들려오는 나지막히 울리는 목탁소리가 채 가시지 않은 어둠을 가르며 아침을 깨운다. 환하게 불을 밝힌 법당은 이미 새벽예불 준비로 하루를 연 지 오래다.

 

온 우주가 깨어 있는 시간, 새벽 야외 참선

 

새벽예불이 끝나고 스님을 따라 어슴프레한 숲길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불빛 하나 없는 길에 의지할 만한 것이라곤 오로지 앞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와 희미한 별빛뿐. 그래도 누구 하나 소리 내는 이가 없다. 속세와는 완전히 단절된 시간과 공간 속에 놓여졌다는 감흥으로 온몸에 전율이 인다.


어둠 속에서 성철스님 사리 부도탑을 둘러싸고 참선 자세를 취하고 앉았다. 사방이 온통 깜깜한 가운데서도 하늘만큼은 눈이 시리도록 맑은 빛깔을 내뿜고 있다. 금세라도 별세례를 퍼부을 것 같은 기세다. 마치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 내 품 안으로 우주가 들어 앉은 듯 가슴 벅찬 감동이 온몸을 휘감아 흐르기 시작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자니, 꿈을 꾸는 듯, 깨어 있는 듯 분명치 않은 경계 속에서 의식만은 희뿌연 안개가 걷히듯 더욱 더 선명해진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도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워내라는 스님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말씀을 되새기고, 다시 새기고…. 그간 나 자신을 붙들고 있던 미련과 아쉬움, 수많은 후회와 원망들이 떨어져 나가며 한결 마음이 평온해지는 기분이 신비롭다.


그렇게 시간이 멈춰 있는 것만 같았건만, 크게 들리던 풀벌레 소리도 잠잠하게 잦아들고 얼굴을 스쳐가는 기운도 서서히 온기를 품어가기 시작한다. 좌선을 풀고 다시 산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느덧 주변은 사물 분간이 될 만큼 밝아져 있었다. 그리고, 새벽 야외 참선을 마치고 돌아나오는 발걸음은 이전보다도 가벼워져 있었다.

 

밥 한 그릇에 담긴 철학 발우공양

 

저녁과 달리 아침은 발우공양이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자신이 없으면 아예 밥을 먹지 말라”고 농담을 던진다.


발우공양은 수행을 위한 스님들의 식사법이다. 앉은 자리에서 배식과 설거지까지 모두 깨끗이 끝내는 높은 수행력을 요구한다. 일반인들이 쉽게 소화하기 힘든 프로그램이지만 발우공양에 담긴 의미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누구나 똑같이 나누어 먹고, 자신이 먹은 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청결, 음식을 남기기 않고 먹는 절약과 한 솥의 음식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는다는 공동, 음식을 만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복덕이 발우공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섯 가지 공덕이다.


일렬로 앉은 참가자들은 스님이 알려주는 대로 자신의 발우(밥그릇)를 가지런히 펴고 차례가 오면 밥과 국, 반찬을 차례로 먹을 만큼만 덜어낸다. 꼭 먹을 만큼만 담아야 하는 것이 마지막에 설거지를 끝낸 천수물에 부유물이 섞여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혹여라도 천수물이 더러워진 줄은 다시 그 물을 나눠서 마셔야 한다. 처음에는 무척 난감해하고 곤혹스러워하던 표정들이 조금식 자연스러워지더니 조심스럽고 정성스레 공양을 마친다. 모두들 정성을 기한 탓인지 다행히도 어느 줄에서도 천수물에 부유물이 섞여 나오지 않았다. “이정도면 정말 훌륭한 수행이네요. 지금은 처음이지만 다음 번엔 아마 더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스님의 칭찬에 모두가 내심 뿌듯해하는 표정이다.

 

참나를 찾는 마지막 여정, 울력

 

템플 스테이 마지막 체험 코스는 울력. 울력은 사찰 일을 함께 합심해 치루는 일종의 협동 노동이다. 오늘의 과제는 마당 쓸기다. 절집 마당을 매일 같이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비로 흙을 고르게 쓸어 가면서 자신의 마음에 치우친 부분은 없는지 마음밭도 고르게 쓸어 내리는 수행이랍니다. 절집 마당이 가지런히 정돈된 모습을 보면 수행 정도를 알 수 있지요.” 일감스님이 자상하게도 울력에 담긴 의미를 일러준다. 일감스님 통솔에 따라 모두들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비질을 하기 시작한다. 마당을 쓸어 가며 그간 돌보지 못했던 마음을 보듬어 가는 사이 따사로운 햇살이 깨끗이 비질된 마당을 환하게 비춘다. 비록 하룻밤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묵은 때를 벗어버린 것처럼 마음도 말갛게 씻겨진 듯 나를 찾는 여정이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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