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 ② 왜 하얼빈이니?
서동철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 ② 왜 하얼빈이니?
  • 트래비
  • 승인 2007.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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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는 지난 2월 중국 하얼빈으로 ‘조금 긴 여행’ 길에 오른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를 약 10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합니다. 중국의 현지 문화와 생활 체험담, 그리고 속 깊은 여행 단상들이 독자 여러분들께 간접 체험의 즐거움을 안겨 드릴 것입니다.


만주벌판과 안중근. 중국으로의 어학연수를 결정하고 찾아간 유학원에서 몇몇 지역과 학교를 추천 받았지만 난 단지 이 두 단어가 내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심상만으로 하얼빈을 주저 없이 선택했다.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길고 긴 열차가 가없는 벌판을 가로지르고, 낮게 웅크린 회색빛 구름 저편으로 지평선이 시선을 나른하게 풀어 헤친다. 도시로 들어서면 영화 <장군의 아들>에 나올 법한 근대적인 건물들 사이로 신작로가 나 있고,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어깨를 움츠린 사람들이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종종걸음으로 길을 오간다. 이 가운데 품속에 차가운 권총을 숨기고 태연하게 걸어가는 한 사내. 난 어느새 내 머릿속의 하얼빈 거리로 잠입해 잰걸음으로 그를 뒤쫓는다. 

물론 이러한 상상 속의 풍경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20~30년 정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을 기대했었다. 허나 하얼빈은 이미 우리의 서울에 버금갈 만한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모습의 하얼빈 역과 번화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세련된 차림새, 그리고 고층 건물들 사이로는 널찍한 8차선 도로가 뻗어나가 도시의 곳곳을 연결했다.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이 남북한을 합한 것보다 세 배 가까이 넓다는데, 난 그 성도인 하얼빈을 중국 동북쪽 끄트머리의 한촌 정도로 치부했던 것이다. 

만주족 언어로 ‘그물 말리는 곳’이라는 말에서 비롯됐다는 하얼빈(哈爾濱)은 19세기 무렵까지만 해도 쑹화강 언저리의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고 한다. 북만주 둥베이 평원의 그 광활한 땅 한 귀퉁이에서 물고기를 낚고, 텃밭이나 일구던 마을이 주목받기 시작했던 것은 제정 러시아가 둥칭 철도의 철도기지로 지금의 하얼빈을 선택한 이후다. 



교통의 중심지로 인구와 경제 규모를 늘려 나가던 하얼빈은 일제시대에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며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 되었고, 최근에는 매해 1, 2월경에 열리는 얼음축제인 빙등제를 통해 세계적인 관광지로 떠올랐다. 쑹화 강의 얼음이 유난히 하얗고 단단해 얼음조각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데다, 소문이 자자한 추위로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면 공기 중의 수중기가 얼어붙는 ‘다이아몬드 더스트’ 현상이 나타나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이외에도 하얼빈은 ‘동방의 모스크바’라는 별칭을 하나 가지고 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등으로 수십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자리를 잡은 바 있어 거리 곳곳에 러시아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 쪽 끝이 쑹화강에 닿아 있는 중앙대가라는 유명한 거리에는 도로변 양쪽으로 유럽풍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어 이곳이 과연 모스크바인지 중국인지 아연하게 만들 정도다. 날이 저물면 우아한 건물들은 조명을 받아 휘황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경제대국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국의 소비문화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중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하얼빈을 찾는 학생들의 경우에도 한국인들이 반수 이상을 차지하지만, 그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이 러시아인들이다. 노란 머리에 흰 피부를 가졌다면 열에 아홉은 러시아 학생이라고 봐야 한다. 러시아 친구들은 대부분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졌다. 학교 기숙사 내에서 복도가 다 울리도록 음악을 틀어 놓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것도 대부분 그들이다. 특히 여학생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신체 노출을 즐기는 듯하고, 머리에 고글과도 같은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것이 여간한 멋쟁이들이 아니다. 

중앙대가를 비롯해서 성 소피아 성당, 스탈린 공원, 태양도 공원, 길락사 등 하얼빈의 가볼 만한 곳을 돌아보는 데는 이틀이면 충분했다. 난 여행 가이드북을 덮고 지도마저 던져둔 채 도시 뒷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며 달려드는 자동차들, 생계 수단인 삼륜 자전거의 페달을 온몸으로 밟는 사람들, 도대체 누가 누구와 두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거리의 장기판, 길거리 구석구석에서 지저분하게 얼어 있는 채소 찌꺼기, 퇴근 시간만 되면 기승을 부리는 꼬치구이 연기, 코를 찌르는 향신료 냄새, 때만 되면 귀청이 떨어지도록 터져대는 폭죽 등. 그곳에는 러시아도 없었고 안중근의 흔적도 없었다. 하얼빈은 여전히 중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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