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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 - 문경새재 황톳길을 맨발로 넘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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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비오는 날 문경을 찾았다. 빗방울에 산 벚꽃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진남교반 벚꽃 길에 꽃잎이 융단처럼 깔렸다. 다음날, 햇살이 눈부시고 봄 하늘이 가을처럼 파랬다. 새들도 높아 날기가 힘들다던 새재 위를 뭉게구름이 가볍게 넘고 있었다. 그동안 내게 문경은 뙤약볕의 여름과 물 좋은 온천이었다. 이제는 봄날의 빗방울과 눈부신 햇살, 철길 위의 자전거라는 이미지가 추가됐다. 여행은 마음속에 인상적인 느낌을 사진처럼 찍어 두는 것. 내 마음의 여행 앨범은 이미 꽤나 빼곡하지만 페이지가 무한정이므로 앞으로도 걱정 없다.

글/사진 Travie writer 김숙현
취재협조 문경시청

걷는 재미의 발견 문경새재


ⓒ트래비

1 문경새재 주흘관의 성벽
2 주흘요의 이정환 선생이 다완을 보여 주고 있다
3 문경새재 조곡폭포 아랫쪽에 마련된 물레방아
4 문경새재 KBS 드라마 촬영장
5 문경새재 골짜기에서 올챙이를 잡고 있는 아이들
6 문경새재 1관문 가는 길가 논에서 도룡뇽 알을 발견하다


유명한 여행지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두 가지다. 유명한 데는 이유가 있겠지 싶어 제일 먼저 여행 일정에 포함시키는 사람. 아니면 많이 알려졌으니 새로울 것도 없고, 관광객도 많을 테니 일부러 피해 가려는 사람. 

문경새재는 너무나 유명하다. 문경시는 몰라도 문경새재는 다들 안다. 교과서에도 나왔고, 수학여행 단골 코스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정작 문경새재의 멋을 제대로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문경새재를 찾은 것은 무척 오랜만의 일이다. 대학시절 동아리 하계수련회 때 와 보고는 처음이다. 십여 년도 더 지났으니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러면서 문경새재를 무척 잘 아는 척해 왔다. 다시 찾은 문경새재는 추억 속의 그 길보다 더 고와진 듯하다. 길 중간 중간에 쉴 수 있는 공간이 잘 갖춰져 있고, 주변이 무척이나 깨끗하다. 여행지를 개발한답시고 흔히 저지르는 실수인 포장이라든가 어설프게 복원해 놓은 흔적 같은 것들도 보이지 않는다. 흙길은 보드랍게 남아 있고, 관문과 연결된 성벽은 예스러움이 풀풀 풍긴다. 

처음엔 2관문까지 걸어서 왕복한다는 게 걱정스러웠으나 모든 코스를 마쳤을 땐 괜한 아쉬움까지 느껴졌다. 걷는 즐거움의 발견이랄까! 신과 양말을 벗어 버리고 맨발로 걸으면 더 좋다. 흙길에 닿는 느낌이 상큼하고, 자연스럽게 지압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문경새재박물관, 장승공원을 지나 제1관문인 주흘관이 나온다. 조금만 더 가면 KBS 드라마 촬영장이 나오고 조령원터, 마당바위, 주막, 팔왕폭포, 소원성취탑, 교귀정, 예배굴, 산불조심비, 조곡폭포를 지나 제2관문인 조곡관에 이르게 된다. 1~2관문 사이에는 식사와 술, 숙박도 가능한 휴게소도 있다. 대개는 2관문에서 발길을 돌리는데 걷기를 즐기는 이들은 조곡약수, 바위굴, 이진터, 동화원, 책바위, 군막터를 지나 제3관문인 조령관까지 내처 걷는다. 2관문에서 3관문 사이에는 장원급제길이 있다. 과거 이 길을 넘어 과거에 급제한 이들이 많았다고 하여 붙은 별칭인데 과거 보러 가는 길은 아니지만 괜히 이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다.

입장료는 어른 2,100원, 청소년 1,100원, 어린이 750원. 주차 요금은 승용차 2,000원, 버스 및 승합차 4,000원. 문경새재도립공원 054-571-0709. 문경새재의 색다른 멋을 느끼려면 달빛사랑여행에 참가해 보자. 매달 보름에 가까운 토요일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진행된다. 1관문에서 2관문에 이르는 길 도중에 주먹밥 먹기, 소원지 달기, 문화해설, 과거시험 보기, 짚신 신기 등을 해보고, 새재주막에 이르러서는 탁본과 전통차, 전통공연도 감상한다. 마지막으로 달빛을 쐬며 달의 정기를 받는 것으로 프로그램이 마무리된다. 매달 2회, 4월부터 10월까지 계속되므로 한번쯤 시도해 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 될 것이다. 1인당 1만원. 문경문화원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받는다. www.mgmtour.com 054-555-2571

옛 시 감상하며 걷는 새재

새재로 가는 길(鳥嶺途中)

산 꿩 꾹꾹, 시냇물 졸졸
봄비 맞으며 필마로 돌아오네
낯선 사람 만나서도 반가운 것은
그 말씨 정녕코 내 고향 사람일세

-이 황

새재를 걸을 때 마음을 느긋하게 갖는 게 중요하다. 새재 길 주변에 펼쳐진 눈부신 자연이야말로 새재 걷기의 핵심이기 때문. 또 길가에 세워둔 옛 시들도 눈여겨보자. 류성룡, 정약용, 서거정, 김시습, 이이 등 조선의 이름난 학자들이 새재를 넘으며 남긴 시들을 바위에 새겨 곳곳에 세워 놓았다.

찻사발 빗는 문경의 장인들

도요지 하면 흔히 이천, 광주, 여주 등 경기도 지역과 전라도 강진을 떠올린다. 하지만 문경 역시 조선시대 주요 도요지 중 하나다. 경기도의 도요지들은 주로 궁에서 쓰이는 것과 한양의 상류층에서 사용하는 자기를 생산했다고 하면, 문경은 서민들의 생활도구를 많이 구었다. 조선 중엽 이후에는 경상도 외에도 전국적으로 퍼졌으며, 멀리 일본에도 수출되었다고 한다. 

문경 도예의 특징은 망댕이 가마라고 알려진 전통 가마를 사용하며, 장작불로 굽고, 물레에서 지나치게 다듬지 않아 투박한 멋이 살아 있으며, 유약이 균열이 나게 구운 것이 특징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정겨움이 느껴지는 것이 문경에서 빗던 자기인 셈이다. 

문경은 산세가 험하고 외진 곳이라서 전통 가마가 한반도 땅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문경 땅 곳곳에 20여개의 도요가 자리해 있다. 게다가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으로 선정된 김정옥 선생을 비롯해 도예명장 또한 천한봉, 이학천 선생 등 두 명이나 있다. 영남요의 김정옥 선생은 7대에 걸쳐 전통적인 방법으로 그릇을 빗어 오고 있는데 지금은 그의 장남이 가업을 이어받았으니 장장 8대에 걸친 가업이라 하겠다. 관음리에는 1843년에 제작된 망댕이 가마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망댕이 가마의 원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칸칸이 나눠져 있어 망댕이 가마라고 불리는데, 원래 망댕이란 사람 장딴지 같은 크기와 모양의 진흙덩이를 일컫는 말이다.  

다양한 도자기를 만들어내지만 그중에서도 아름다운 찻사발을 만드는 도예가들이 문경에 많이 모여 있다. 때문에 해마다 봄이면 전통찻사발축제를 열어 문경 찻사발의 멋을 알리고 있다. 문경읍 진안리에 있는 문경도자기전시관을 찾으면 문경 도자기의 면모를 한 자리에서 훑어볼 수 있다. 054-550-6416

찻사발에 핀 매화 주흘요

주흘요의 월파 이정환 선생은 1970년에 도예에 입문한 중견작가. 전통 찻사발(고려다완)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 투박하면서도 은근한 멋이 느껴지는 그의 다완을 두 손에 맞들고 들여다보면 깊은 아름다움이 배어 나온다. 특허를 낸 매화잔도 이색적이다. 맥주같이 거품이 많이 나는 음료를 사발에 부으면 기포가 매화 꽃잎처럼 피어 오른다고 해서 매화잔이라 이름 붙인 것. 사발 안쪽에 있는 굽의 흔적으로 인해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매화잔에 음료를 담아 마시면 맛이 더 부드럽고 깊어진다. 도요지는 문경읍 진안리에 있다. 054-571-2368

 문화, 예술, 전통이 한자리에 성보예술촌


ⓒ트래비

1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봄날의 철길
2 철로자전거를 타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도자기 작품들과 천연염색, 생활한복, 목공예품, 고가구 및 골동품, 한지공예품 등을 전시 판매하는 성보전통문화관이다. 특히 도자기 작품들은 문경 지역에서 활동하는 도예가들의 것으로 찻사발을 비롯해 찻주전자, 찻잔, 술병 및 술잔, 다기세트 등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입장료(어른 2,000원, 청소년 1,200원)가 있긴 하지만 근대사박물관도 꼭 한번 들러 볼 만하다. 185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사용했던 생활 속 옛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부모가 자신의 어릴 때를 떠올리며 설명을 해주면 재미있다. 놋수저에서부터 발로 밟아서 돌리던 재봉틀, 삼베를 짤 때 쓰던 도구, 호롱불, 구식 카메라 등 향수를 자극하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옛날 교과서, 옛 영화 포스터, 80년대 LP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천연염색이나 한지공예, 도자기 만들기 등은 다른 곳에서도 쉽게 해볼 수 있는 체험하지만 승마와 국궁은 실시하는 곳이 많지 않다. 국궁은 옛 사람들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신체 단련 과목이었다고 하는데 <주몽>을 비롯한 사극에서 많이 봐 온 터라 아이들이 특히 재미있어 한다. 체험 비용은 9,000원. 

승마는 어른, 아이 누구나 체험해 볼 수 있는데 교관이 바로 곁에서 도와주므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체험 비용은 어른 1만5,000원, 청소년 1만2,000원, 어린이 1만원. 이 밖에 교실을 활용한 단체숙박시설과 목재 펜션, 전통음식관도 이용할 수 있다. 054-554-7001 www.sungbo.net

철길 위의 낭만 철로자전거


ⓒ트래비


1,성보예술촌에서는 문경 도예가들의 작품을 전시 판매한다
2 성보예술촌에는 승마 체험을 해볼 수 있는 승마장도 있다
3 삼베를 짜기 전 실을 멜 때 쓰는 기구. 성보예술촌 근대사박물관에 전시중이다
4 철로자전거를 타고 짜릿한 터널 지나기
5 철로자전거가 출발하는 진남역사 건물

철로자전거는 무척 단순하다. 폐선로 위에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두 명(혹은 세 명)이서 열심히 페달을 밟아 달리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의외로 재밌고 신난다. 첨엔 직접 페달을 밟는다는 게 귀찮게 느껴지는데 막상 달리다 보면 밟으면 밟을수록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이 상쾌하고 기분 좋아 끝없이 달리고만 싶어진다. 

끝내고 일어서는 이들은 하나같이 “아쉽네~ 조금만 더 했으면 좋겠다”고 이구동성이다. 어르신들한테는 힘들지 않을까 걱정스러운데, 50대 아주머니들도 “하나도 힘 안 들어. 재밌어~”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타는 재미도 쏠쏠하고, 철길 옆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다워 철로자전거가 더욱 즐겁다. 터널을 지나기도 하고, 다리 위를 달리기도 한다. 강변을 끼고 달리는 구간이 많은데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산자락과 강변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철길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터널은 조명을 은은하게 밝혀 무섭다기보다 오히려 낭만적이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즐기는 철로 자전거는 문경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스는 모두 세 가지. 진남역에서 출발하는 것은 구랑리역 방향, 불정역 방향 두 가지. 가은역에서 먹뱅이 방향이 있다. 구간은 세 구간 모두 2km. 왕복하면 4km가 되는 셈이다. 시간은 40분 정도 걸린다. 햇살이 뜨거울 때는 모자나 양산을 준비하고, 마실 물도 가져간다. 작은 가방은 메고 타도 무방하다. 가장 중요한 카메라도 잊지 말 것. 

철로자전거는 1월1일, 설날, 추석을 제외하고는 1년 내내 운행하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비용은 1대당 1만원으로 1대에 어른 3명(혹은 어른 2명에 12세 이하 2명) 탑승 가능. 진남역 054-550-6478, 가은역 054-550-6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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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도자기를 빚을 때 물레성형을 하는 모습
7 문경의 별미, 약돌돼지고기

8 성보예술촌에서는 문경 도예가들의 작품을 전시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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