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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환향한 청계천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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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일, 서울 도심 지도가 바뀐다. 구구절절 말 많고 사연 많았던 청계천이 드디어 시민들 품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도 물 맑고 수풀 우거진 친환경적인 도시 하천으로 금의환향한다.


수십 년 간 도로 밑에 묻혀 있었던 설움(?)을 벗어던지고 부가가치 높은 역사문화적 공간으로 탈바꿈한 청계천은 이제 광화문에서 서울숲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흘러 내린다. 물고기들이 노닐고, 새들이 지저귀는 도심 속 파라다이스, 청계천 나들이가 곧 시작된다.


사실 서울시에서 하천 복원 공사 계획을 발표하기 전까지 ‘청계천’은 그저 도로 밑에 묻혀 있는 하수도에 지나지 않았다. 가끔씩 사진으로만 청계천의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 아마 지금의 20~30대들은 청계천이란 하천이 있었는지도 몰랐을 터이다. 하천 복개 이후 약 30년 간 그렇게 도시민들 기억 속에서 자취를 감춰 가고 있었지만 ‘청계천’은 태조가 한양(지금의 서울)을 도읍지로 정하면서부터 서울

600년 역사와 함께 흘러 온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도시문화 유적지라 할 수 있다. 청계천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와 문화가 한데 얽힌 재미난 볼거리들이 가득하다. 청계천 개방 시기에 맞춰 운영하게 될 도보관광코스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자세한 설명과 함께 더욱 풍성한 청계천 관광을 기대할 수 있다.

 

 
걸어서 광화문에서 서울숲까지


미리 가본 도보관광코스

 

현재 복원된 청계천 물줄기는 광화문 동아일보 앞 청계광장에서부터 시작해 서울숲까지 이어진다. 서울숲 한 변을 휘감고 나온 물줄기는 용비교를 마지막 도착지로 삼아 한강으로 합류하게 된다. 광화문에서 서울숲까지, 1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물줄기가 시내를 관통해 쉼 없이 흐르는 셈이다. 청계천이 끝나는 지점은 서울숲 부근이지만 사실 이번에 복원된 실제 구간은 복개 공사가 이뤄진 광화문~신답철교까지다.

 


ⓒ 트래비 

제1코스 청계광장~오간수교

 

추석을 이틀 앞둔 16일 금요일 오전, 서울시 문화유산해설사인 조희왕 선생과 함께 청계천 도보관광코스 체험에 나섰다. 체험 코스는 제1코스인 청계광장~오간수교까지. 역사적 유물과 문화공간이 어우러진 역사문화코스다.

 


청계광장

 

시작 지점인 청계광장에 섰다. 이 공간은 청계천 복원을 상징화한 곳이다. 광장에 들어서자 조 선생이 청계천 복원의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인간 중심의 환경친화적인 하천을 만드는 게 기본 목적이죠. 또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회복하고, 청계천 주변을 재개발해 강북의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의미가 깊습니다.” 그간 쉽게 지나쳤던 청계천 복원의 의미가 묵직한 무게로 전달된다.


“바닥에 도랑이 보이시죠? 도랑 중간에 불이 들어오는 부분이 청계천 다리가 있는 곳을 표시한 곳입니다. 불이 켜지면 더 볼 만하답니다” 조 선생이 가리킨 바닥을 따라가 보니 도랑이 하나 길게 이어져 있다. 미니어처 청계천이다. 이른 아침이라 불빛을 볼 수 없던 게 안타까울 뿐이다.


청계광장에서 내려다보면 하천 바닥에 곡선처럼 휘어진 모양을 한 돌들이 놓여 있는데, 이른바 8도석이라고 ‘만남’과 ‘화합’, ‘통합’을 상징한다고 한다. 실제 이 돌들은 전국 8도에서 직접 가져왔다고. 물론 이북 지역은 제외하고 말이다.

 

 

모전교와 광통교

 

모전교는 청계천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가장 처음에 만나게 되는 다리이다. 예전에 부근에 과일가게가 있었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전통 대청의 양식을 도입한 아치교로 차도와 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로 이어지는 거리는 무교동. “창덕궁 금천교의 모양을 따서 만들어졌답니다. 청계천을 따라가다 보면 많은 다리들을 만날 수 있어요. 청계천을 잇는 다리는 도보관광코스에서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요소들이죠.”


모전교를 지나니 금세 다리가 하나 또 보인다. 허름하게 보이는 것이 왠지 많은 사연이 숨겨져 있을 듯하다. 아니나다를까 조 선생의 설명이 이어진다. “광통교는 조선 3대 왕인 태종 때 세워진 돌다리로 역사적 가치가 크죠. 실제 다리 위치는 현재 차도로 쓰이고 있는 광교 자리인데, 원래 있던 자리에서 150m 위쪽에 복원되었습니다. 당시 임금이 나들이를 할 때 이용했던 다리로 남대문으로 바로 통했죠." 다리에 놓인 돌들이 세월에 많이 삭았긴 하지만 정교한 구름 문양이나 세심하게 새겨진 신장상들이 여느 돌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권력 쟁취를 위해 왕자의 난까지 치렀던 태종이 자신의 계모인 강씨의 묘를 옮기는 과정에서 묘에 사용된 돌들을 다리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태종이 강씨를 얼마나 미워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동안 어둠에 묻혔다 빛을 보게 된 유물 치고는 참 씁쓸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다리다.

 

 

광교와 장통교

 

어느새 광교와 장통교를 지났다. 장통교 부근에는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새겨져 있다.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는 왕의 행렬을 그린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 도자 벽화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주요 볼거리 중 하나이다. “반차도는 백관들이 직급에 따라 배열되어 있는 차례를 그린 그림이지요.” 당시 왕권에 위협을 느낀 정조대왕이 왕실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이 같은 대규모 행렬을 이끌었다고 하는데, 그림을 자세히 살펴봐도 임금은 찾을 수 없다. 단지 임금이 있었던 자리가 여백으로 비어 있는 것만 확인할 수 있다. 이유인즉슨, 임금의 초상은 함부로 그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행렬이 얼마나 길었던지 도자 벽화 길이만도 186m에 이른다.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면서 도자 벽화 속 행렬이 금세라고 튀어나올 것만 같다. 자녀들과 함께라면 반드시 거쳐가야 할 필수 코스다.

 

 

삼일교에서 수표교

 

인사동으로 이어지는 삼일교를 지나 수표교에 이르렀다. 조 선생의 입이 다시 바빠진다. “원래 이곳에 마전이 있어 마전교라 불렀지만 개천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한 수표석이 다리 옆에 세워진 후 수표교라 불리웠지요. 실은 이 수표교는 임시교로 복개 공사 당시 철거된 원래 다리는 장충단 공원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청계천은 홍수가 나면 범람하기 일쑤여서 아예 매립하려고 했던 임금도 있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수표교는 매우 의미심장한 다리인 거죠.” 이 작은 개천물이 불어서 일대가 침수되곤 했다니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골칫거리였겠다. 그 때문인지 조선시대 청계천 준설작업은 국가 사업에 준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었다고. 자세히 살펴보니 지난 비에 저수부지까지 넘쳐 흐른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띈다. 하지만 범람을 대비해 안전하게 설계되었다니 휴우, 안심이다. 청계천의 과거를 반추해 보니 현대 건축학의 발전이 새삼 고맙기만 하다.

 

 

새벽다리와 나래교

 

도보관광코스는 이내 관수교와 세운교를 지나 배오개다리, 새벽다리로 이어진다. 다리 모양도 점점 현대적인 느낌이다. 방산시장 앞에 세워진 새벽다리는 활기찬 재래시장을 표현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시장 천막의 이미지를 막구조로 적용해 동대문 재래시장의 역사성과 향수를 자아내고 있다. 마전교를 지나치면 만나게 되는 나래교도 마찬가지. 나비가 날개를 편 듯한 다리 모양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패션 1번지로 도약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요. 부근에 패션 타운들과 시장들이 밀집해 있죠. 앞으로 주변이 더욱 개발되면 명소 중의 명소가 되지 않을까요?” 


버들다리와 오간수교 사이에 또 주요한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현대 미술작가들이 참여해 만든 ‘문화의 벽’은 자연과 문화, 청계천을 소재로 한 작품들로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발상 자체가 신선하다. 오간수 다리를 지나면 색동벽과 하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가 나온다. 이름하여 패턴천변. 분수 야경과 함께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들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작은 무대와 관객석이 하천을 사이에 두고 마련되어 있다. 아담하면서도 자연친화적인 무대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오간수교

 

성곽이 이어져 있었다는 오간수교는 원래는 다리가 아치형으로 다섯 개의 구멍이 뚫린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옛 성곽을 복원한 형태로만 새단장해 꾸며졌다. 지금의 오간수교는 흥인지문과 동대문운동장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이지만 조선시대엔 도성 안팎을 가르는 경계선 역할을 담당했다고. 문제는 여느 다리와 달리 물이 빠져 나가는 입구가 작아서 위에서 떠내려온 흙이 쌓여 개천이 범람하는 주된 지역이었다고 한다. 준설작업으로 파 올린 흙이 주변에 산을 이뤘을 정도. 오간수교 다리 아래를 지나가다 보면 준설작업을 명했던 영조대왕의 친필서를 판본한 금박 글자를 볼 수 있다.


시원하게 그늘진 다리 아래에는 쉬어 갈 수 있도록 벤치에 놓여져 있다. 제1코스 마무리 구간인 오간수교까지 걸어온 거리는 2.7km. 약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벤치에 잠시 앉아 있었는데도 시원함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아마 내년 여름쯤엔 사람들로 가득하겠지. 오간수 다리 옆에 원래 다리 모양 그대로를 축소해 놓은 미니어처 모형은 옛 향수를 자극한다.

 

 ⓒ 트래비 

제2코스 오간수교~고산자교 

오간수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당초 제1코스에서 마치기로 한 계획을 변경해 2코스까지 모두 가보기로 결정했다. 갈수록 흥미가 더해지는 하천 탐험이 호기심을 자극한 까닭이다. 제2코스는 조 선생도 아직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곳이라고. 청계천은 생각보다(?) 멋들어지게 조성되어 있었고, 가도가도 질리지 않은 자연적인 매력이 장장 5km에 이르는 거리를 겁 없이(?) 걷도록 만들어 버린다.

 
맑은내다리와 황학교 

오간수 다리를 지나면 바로 보이는 다리가 맑은내다리이다. 나래교와는 반대로 날개짓을 하는 모양이 인상적일 수밖에. 동평화시장이 바로 인접해 있는 맑은내다리는 패션 중심거리를 상징하는 아이콘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다산교를 지나면 청계 빨래터가 나온다. 옛 빨래터와는 무척이나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청계천의 옛 모습을 기억하시는 이들이라면 아련한 향수에 빠져 봄 직하다. 영도교는 삼촌에게 쫓겨 영월로 귀양을 가게 된 단종이 건넜던 다리로, 정순왕후와 마지막 이별을 나눴던 곳으로 알려진 다리이다. 다리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다니, 새삼스럽기만 하다. 신설동 로타리와 이어진 황학교 주변은 벼룩시장이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다리 부근에서 올려다보니 깔끔하게 정비된 업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소망의 벽

 비우당교를 가기 전 청계천 벽면은 2만여 시민들의 소망들로 빼곡하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든 소망의 벽은 네모난 타일 조각에 여러 가지 이야기들로 가득 채웠다. ‘oo와 oo의 사랑이 영원하게 해주세요.’, ´아자, 아자 잘할 수 있다!‘ 등등 진심 어린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모자이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두고두고 좋은 기념이 되겠어요. 참가신청 받을때 하나 해둘 걸 그랬나 봐요.” 조 선생이 내심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다. 기자 마음 속엔 이미 아쉬움과 후회가 몽글몽글 피어오른 후다.  

 

존치교각 

제2코스의 특징은 다리가 놓여 있는 간격이 1코스보다 길다는 것. 비우당교를 한참 지나서야 멀리 무학교가 보인다. 헌데 무학교 앞 하천 중간에 전봇대처럼 우뚝 솟은 건축물이 있으니, “존치교각이에요. 이 지점에서 청계천 고가도로가 끝나는데, 예전 청계 고가도로가 있었다는 상징적 의미로 철거 때 일부러 남겨둔 것이죠. 지금은 좀 흉물스럽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관광명물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어쨌든 이것도 우리 역사의 일부니까요.” 하천 중심부에 덜렁 교각 한두 덩이가 남아 있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는 않지만, 아마 후대들은 또 이것을 보고 역사를 배워 나갈 터이다. 존치교각이 있는 걸 보니 복원 구간도 거의 끝에 다다른 듯. 조금 더 걸어 나가니 두 개의 물이 만나는 다리라는 의미를 가진 두물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름만큼 다리 모양 한번 독특하다. 이 두물다리와 맞닿은 부분에 청계천 문화관이 한창 건립 마무리 중이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에 보이는 고산자교와 신답철교. 고산자교 뒤로 이어진 버들습지는 생태 학습장으로 훌륭한 장소다. 반면 하천이 좀더 깊고 넓어지긴 했지만 물 흐름이 느리고 고여 있는 게 물빛은 상류만 못한 게 아쉽다.  

청계천 관람을 마치고 

청계천은 밖에서 보는 모습과 안에서 보는 모습이 다르다. 밖에서 볼 땐 그저 단순한 도시 하천에 지나지 않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것 모두가 살아 숨쉬는 자연물이요, 생생한 생태학습 자료이다. 관심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볼거리들이 풍부하다. 하천 주변에 우거진 수커령이나 물억새 등 각종 수생식물과 하천 중간마다 놓여있는 징검다리들, 물 흐름을 조절하는 수재와 새들의 쉼터로 만들어 놓은 횟대 등 평소에 접하기 힘든 것들이 가득하다.

하천 저수부지를 따라 난 도보코스도 걷기에 지루하지 않다. 주변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고층빌딩은 순식간에 즐거운 눈요깃거리가 되어 주고 눈을 돌리면 우거진 수풀 너머로 맑은 물이 흐른다.  마치 시골 냇가에 온 듯 마음 한 구석이 푸근해지는 기분이다. 

하천을 따라 흐르는 물빛은 밑바닥이 모두 보일 정도로 맑다. 이렇게나 맑다니! 사실 ‘물이 맑으면 얼마나 맑겠어’라고 얕잡아(?) 봤는데 와서 보지 않았다면 계속 무지한 채로 남을 뻔했다. 수풀들이 자꾸 흔들리는 게 슬쩍 건드려 보니 푸드득하고 참새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도심에 있되, 자연 속에 푹 빠진 기분이 묘하기만 하다. 조 선생은 “며칠 전 비가 와서 물이 좀 불어서인지 오늘은 물고기가 안 보이네요”라며 한술 더 뜬다. 그러고 보니 물 아래 무언가 휘리릭 지나가는 게 영락없는 피라미다. 아이들이 발 담그고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는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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