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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투어 5탄 ③ 경주 - 신라 천년의 향기에 취하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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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역사의 도시 ‘경주’는 모두의 가슴에 학창시절 수학여행의 추억으로 상기되는 곳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의 깊은 울림 속에 숱한 여행자들의 활기찬 모습이 조화를 이룬다.

글·사진  Travie writer 김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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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천마총)-첨성대-점심식사-불국사-신라역사과학관

신라 왕들의 무덤 대릉원

ⓒ트래비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도시답게 경주에는 외국인 여행자들도 무척 많다. 경주 시티투어에 한국인은 필자 포함 7명인 데 반해 외국인은 11명이나 됐다. 한국인은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 다섯과 그중 한 아이의 엄마였는데, 아이들도 하루 동안 일행이 된 외국인들과 쉽게 친해졌다. 버스에 타고 내릴 때마다 “Hi!” 하며 인사를 건네고, 불국사에서 소나기가 내렸을 때는 우산을 나눠 쓰기도 했다. 아이 엄마는 영어 실습 한번 제대로 한다며 좋아한다.

처음 도착한 곳은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대릉원. 신라 천년의 영혼을 담은 고분 23기가 산재해 있는 곳이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내부를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도록 공개해 놓은 ‘천마총’. 왕의 무덤을 ‘왕릉’이라 하고, 무덤의 주인이 알려지지 않을 경우 ‘총’이라 하며, 왕이 아닌 보통 사람의 무덤을 ‘묘’라고 하는데 천마총의 경우 무덤 주인은 알 수 없으나 부장품 가운데 하늘을 나는 말 그림이 나왔다 하여 천마총이라 이름 붙였다 한다. 천마도 외에 화려한 금관과 허리띠 등 엄청난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진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고 이곳에는 복제품을 전시중이다. 

천마총 옆에 낙타 등처럼 봉분이 쌍으로 붙은 황남대총은 남북 길이 12m, 동서 길이 80m, 높이 23m로 대릉원에서 가장 큰 무덤이다. 남쪽 무덤에서는 금동관과 남자의 뼈 일부 등 많은 유물이, 북쪽 무덤에서는 금관과 부인대라는 글씨가 적힌 은제 허리띠 같은 유물이 나왔다. 왕과 왕비의 무덤을 붙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시티투어 참가자들은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는 산책로를 따라 정문으로 되돌아 나간다. 배롱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등이 산책로를 가득 메우고 있어 덥기는 하되 기분은 상쾌하다.

별을 보며 점치는 미래 첨성대



대릉원에서 첨성대는 걸어서 5분 거리. 버스는 그대로 두고 걸어서 이동하기로 한다. 햇살이 강해서인지 더위가 한층 심하게 느껴진다. 시티투어 참가자들은 모자나 양산, 손수건, 종이를 총동원해 가며 조금이라도 햇살을 가려 보려 애쓴다. 짧은 거리인데도 볼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경주는 어느 곳을 가든지 ‘상주 문화해설사’가 있어 편리하다. 첨성대 역시 입구에서 문화해설사가 맞아 준다. 많지 않은 그늘 중 하나에 들어서자 웃음과 함께 해설이 시작된다. 첨성대는 궁궐이 있던 월성의 북쪽, 평평한 들판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데 선덕여왕 재위시(632~646년)에 건립되었다. 가운데 네모나게 뚫린 것이 출입구로, 사다리를 걸쳐 놓고 올라갔을 것이다. 맨 위에 올라가 해와 달, 별자리와 하늘의 모습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첨성대가 천문대라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첨성대를 만든 이후 천체 관찰이 4배나 늘었던 것으로 미루어 천문대 역할을 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천년을 훌쩍 넘기는 긴 세월을 보내고서도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선 모습이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보물의 향연 불국사


ⓒ트래비

불국사는 그 자체로 박물관과 다름없다. 다보탑과 석가탑,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교, 비로전의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극락전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등이 모두 국보로 지정돼 있다. 굳이 국보를 따지지 않더라도 경내에 자리한 모든 것들이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같이해 온 값진 것들이다. 불국사는 신라 때 재상을 지냈던 김대성이라는 사람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만들고,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지었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진다. 

경주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관광지이다 보니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도 무척 많다. 대웅전 앞뜰에는 여기저기에서 설명을 해주는 풍경이 연출된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기념촬영하기도 쉽진 않다. 

자하문에서 백운교, 청운교를 내려다보고, 안양문에서는 연화교와 칠보교를 굽어본다. 유물보호각, 종각을 지나 연화·칠보교 아래 서니 사진을 통해서 숱하게 본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때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점심 무렵 유난히 무덥더니만 소나기가 퍼붓는다. 기와불사를 하는 작은 건물 처마에서 비를 피하다 보니 영어, 한자, 아랍어 등 각국 언어로 적은 소원 성취문이 보인다. 건강과 행복, 사랑에 대한 갈망은 누구든 마찬가지인가 보다.

역사 유물 속에 숨은 과학 신라역사과학관


ⓒ트래비

마지막 코스는 신라역사과학관. 첨성대, 석굴암 등 역사 유물 속에 숨겨진 과학적인 원리를 자세하게 알려주는 곳이다. 입구에는 ‘신라역사과학관’이라는 한자 밑에 ‘제2석굴암’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이름처럼 석굴암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학예사가 첨성대 모형 앞에서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골라 자세한 설명을 시작한다. 내부가 보이도록 만든 첨성대 모형을 보며 오전에 보았던 첨성대 실물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1,200년 전 신라의 수도였을 당시의 경주를 보여주는 지도는 이곳이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옛날에는 북두칠성을 왕의 별자리로 보았는데, 알천이 경주를 감싸 안고 흐르는 모습이 은하수가 북두칠성을 감싸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여 경주를 왕도로 정했다고. 

신라역사과학관의 하이라이트는 다양한 각도에서 본 석굴암 모형. 8개의 모형이 석굴암의 구조와 과학적인 건축법, 미의 원류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석굴암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져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처음 만들어진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그 존재가 알려지면서 수난을 겪기 시작한다. 

오대산 월정사 동종 모형 앞에서는 우리나라 종의 은은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리를 직접 들어 보고 그 소리의 과학적인 원리도 설명 들을 수 있다.

역사과학관 바로 아래쪽에 경주민속공예촌이 있다. 아이들이 석굴암의 신비를 알아보는 동안 외국인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며 기념품을 골랐다. 그들에게 경주는 어떤 곳으로 기억될까? 신라 천년의 역사를 느끼기에 하루는 너무 짧은 듯, 돌아서는 길 아쉬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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