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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투어 5탄 ② 영주 - ‘선조들의 숨결을 찾아서’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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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에서 이곳만큼이나 옛 선조들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없다. 경북의 대표적인 도시인 대구에서 약 2시간 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학창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접했던 부석사가 있는 영주로 갈 수 있다. 영주에는 부석사뿐만 아니라 소수서원, 선비촌이 있어 과거 조상들의 선비 정신과 곧은 기개를 느낄 수 있다.  

글·사진  심항아 기자

>>>Today’s Course
부석사-중식-소수서원-선비촌 

* 영주는 ‘대구 근교권 투어’에 포함된 지역입니다

 ⓒ트래비

 9  00   설레임을 안고 영주로~

아침 일찍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2시간이 채 못 되게 달렸다. 1시간 40분 뒤 우리는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영주로 가는 시티투어버스는 동대구역에서 9시에 출발한다. 동대구역에서 내려 오른편으로 큰 육교가 보이고 육교를 따라 내려가면 그 밑에 ‘대구근교권투어 승강장’이라는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그곳에는 우리를 영주로 안내해 줄 빨간색 시티투어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11 00   가장 아름다운 사찰 영주 부석사 도착


 ⓒ트래비

동대구역에서 지리상으로 영주는 북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안동 바로 위에 자리잡고 있는 영주는 동대구역에서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2시간 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했던 사찰인 부석사에 도착했다. 하지만 부석사에 도착하고 무량수전을 보기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약하게 비가 내리고 있는 탓에 부석사 입구까지 가는 길에 이미 온몸이 흠뻑 젖어 버렸다.

 11 20  108계단의 끝, 해탈 부석사

 ⓒ트래비

부석사로 가는 길 옆에는 은행나무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아직 여름이라 푸른색을 띠고 있지만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들어 더욱 아름답다는 부석사 가는 길.그 길은 경사가 져 있지만 잘 닦아 놓아 동행한 사람과 이야기를 하며 걷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는 빨갛고, 파랗게 익은 사과를 파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대구가 사과로 유명하지만 날씨가 더워진 탓에 사과나무 재배선이 점점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덕분에 영주에서도 달콤하고 맛있는 사과를 맛볼 수 있다. 본격적으로 부석사 입구에 다다르자 한층 더 가파른 계단들이 보인다. 바로 인간의 모든 번뇌와 고통을 뜻한다는 108계단. 108계단을 오르고 나서야 그 유명한 무량수전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따스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배흘림기둥과 무량수전 내부에서 여행객을 맞는 부처님상, 국보로 지정된 석등, 부석사의 이름을 유래시킨 ‘뜬 돌’이라는 의미의 부석(浮石).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사찰 보물들은 오랜 세월을 넘어 부석사의 역사를 말해 주는 듯했다. 더불어 문화유산해설사가 해주는 부석사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신라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본다. 

무량수전 앞으로 낀 자욱한 안개, 산자락, 구름, 사찰 풍경은 마치 잠시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해주었다.

  1 30   가족끼리, 연인끼리 먹는 점심 도시락



무량수전과 그 숨겨진 이야기를 뒤로하고 다시 입구로 내려왔다. 바로 점심시간이 된 것. 점심식사는 시티투어에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각자 해결해야 한다. 함께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온 가족들이나, 커플들은 미리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오히려 점심이 포함이 안 돼 있는 덕에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 맛있는 도시락을 즐길 수가 있다. 한편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부석사에서 내려오면 각종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이 줄을 이어 배고픈 여행객들을 환영하고 있다. 도토리묵에서부터 비빔밥, 백숙 등 다양한 메뉴로 골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많이 자리잡고 있다.

  2  00    조선시대 사립 대학교 소수서원

 ⓒ트래비

점심을 먹고 2시에 소수서원으로 이동했다. 부석사에서 소수서원으로 이동하는 길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졸 틈도 없이 문화해설사가 소수서원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해설사에 따르면 소수서원은 고려 말 유학자인 안향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 풍기 군수 주세붕이 그의 뜻을 기려 세운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사실 1542년 창건 당시에는 백운동 서원이라 불렸지만 퇴계 이황 선생이 풍기군수로 온 후 소수서원으로 불리게 됐다고. 소수(紹修)는 ‘무너진 학문을 다시 세운다’는 의미고, 사액(賜額)은 임금이 사당이나 서원의 이름을 지어 현판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립 대학교였던 소수서원의 모습은 현대인들에게도 새롭다. 

소수서원은 외부와 내부가 철저히 구분돼 있었다. 외부에서는 편안히 즐기며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지만 내부에는 여자, 술 빚는 사람, 광대는 절대 출입할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로웠다고. 또 책도 귀하게 여겨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바깥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교수님들의 공간, 학생들의 기숙사, 도서관 등을 차례로 돌며 소수서원 곳곳에서 과거 이곳에 학구열을 불태웠던 유생들의 모습을 그려 본다.

 3  00    선비들의 정신과 생활 엿보기 선비촌 



선비촌은 옛 선비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가옥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여러 채의 집이 모여 있기 때문에 차례차례 하나씩 방문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무신에서부터 떡 방아, 선비들이 쓰던 가구들이 모형으로 꾸며져 있어 조선 시대에 선비들이 어떤 모습으로 지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또 선비촌을 나서면 바로 파전과 막걸리를 파는 ‘주막’으로 이어져 선비정신을 고루 느낀 후 막걸리 한잔으로 오늘의 투어를 마무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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