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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쓰촨성 ② 쓰촨의 문화와 역사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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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대를 오르기 전, 교수님께 듣는 포인트!

천장, 혹은 조장이라고 불리는 티베트의 특별한 장례문화는 ‘이방인’의 눈이 아닌 문화의 다양성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장례라는 것은 주검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문화권에서 생명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어떤 환경적 영향으로 그 문화적 현상이 생겨난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겠지요. 사실 요즘의 천장은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경향이라 그 흔적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도 될 정도에요. 무엇보다 망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을 잊지 마세요.

* 트래비 주 : 이 부분은 천장 의식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있습니다.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이 부분의 기사를 건너 뛰어도 됩니다.

 삶과 죽음, 영혼과 육신의 경계에 대하여 


ⓒ트래비

쓰촨성과 감숙성의 경계 즈음에 위치한 랑무스(郞木寺)는 티베트족, 회족, 한족이 섞여 살기 때문에, 또렷한 개성의 티베트 불교뿐 아니라 엄숙한 이슬람교의 색채 또한 짙다. 랑무스에서 천장대에 오르는 길, 수많은 ‘어린 마부’들의 호객 행위가 시작된다. 트레킹을 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천장대에 오르다 지쳐, 끝까지 뚝심 있게 따라오던 소년의 말을 빌려 탔다. 제 멋대로 삐뚤빼뚤 걸어가는 말 위에서 아름다운 초원과 신전, 기분 좋게 살랑이는 바람을 만끽하다 발견한 것은 상공을 날고 있는 두어 마리의 독수리. ‘아! 여기가 일반 여행지가 아닌 티베트인들이 신성시 여기는 장례터’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입구에 들어서 천장터에 조심스레 다가가 조장의 흔적을 면밀히 살펴보던 중,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두 눈 가득 ‘자동 줌인(Zoom In)’되던 거무튀튀한 사물은 다름 아닌 시체의 잘려진 손이었다. 눈과 입을 있는 대로 크게 벌리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기자에게 웹기자단 중 한 친구가 귀띔해 준다. “저기 돌아가 보면 몸통 잘린 것도 있고 백골도 있어요.” 시체에 무조건 반사처럼 표정관리도 못하고 재잘거리는 무리를 향해 건너편에 있던 심혁주 박사가 오른손 검지를 입에 갔다 대며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쉿!” 

“더 깊이 알기 위해 티베트에서 1년 정도 생활할 때, 티베트에서 가장 큰 천장터에서 그 의식을 지켜보며 처음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어요”라며 심박사의 말문이 열렸다. 비록 눈으로 천장이 거행되는 광경은 보지 못했지만 심박사의 생생한 천장의식 관찰담을 숨소리조차 죽이며 경청한다. 

ⓒ트래비
티베트의 장례 문화인 천장은 간단히 말하자면 독수리에게 시체를 ‘먹잇감’으로 주는 의식으로 조장이라고도 한다. 티베트의 천장 의식은 전문 장의사가 하얀 포대에 꽁꽁 싸맨 시신을 천장터까지 짊어지고 올라간다. 가족은 천장대의 입구에서 송백향을 피우면서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올린다. 이때 라마승은 사람의 뼈로 만들어진 악기를 불거나 짬바(티베트 사람들의 주식)를 뿌린 소나무에 불을 붙여 연기를 내 독수리를 불러들인다. 이때 천장사부는 칼과 도끼로 시체를 토막내고 장기와 골수, 뼈까지도 짬바에 버무려 독수리에게 나눠 준다.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날던 독수리가 ‘시체를 다 먹어 치우면 유가족은 새가 망자의 육신으로부터 영혼을 분리시켜 극락으로 데려갔다고 믿는다. 티베트 사람들에게 독수리는 ‘천국의 사신’인 셈이다. 

티베트에서 천장 의식이 성행하게 된 것은 새에게 보시한다는 ‘라마 불교적 믿음’에 기초한다. 또 티베트는 1년 중 8개월 이상이 눈으로 뒤덮힌다. 일상생활에 사용할 땔감조차 여의치 않기 때문에 그들이 이상적인 장례 방법으로 생각하는 화장은 큰 부자나 고승이 아니고서야 일반 인들에게는 ‘사치’였다. 따라서 일반인들에게는 화장이 아닌 ‘조장’이 현실적인 장례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조장을 치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환생을 빨리하고 못하고는 어떤 방식으로 장의를 치르느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라마승이 사망자의 살아 생전의 행적을 토대로 조장을 결정해 주는 것이다. 종교적 수행이 부족하거나 어린아이가 죽으면 시체를 강물에 버려 물고기 밥이 되게 하는 수장을 치른다. 시신을 매장하면 시체에 악령이 깃든다고 믿기 때문에 매장은 범죄자에게나 적용하는 장례법이다. 티베트인들은 조장을 지낼 만큼 성실하게 살았던 인간이라면 49일 만에 환생한다고 여긴다. 조장을 통한 망자의 마지막 선행이 그의 부활을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결국 티베트의 장례의식은 환생을 목표로 한다. 

80년대에 이르러 조장의 현장이 덩그러니 ‘사진’의 지극히 사실적인 이미지만으로 외부세계에 공개되어 티베트인들은 시신을 훼손하는 야만인으로 매도되자 천장은 더욱 베일에 가려졌다. ‘관광거리’로 보여 줄 요량으로 엉성하게 치러진 천장 의식에서 여기저기 널린 머리카락과 시신의 일부, 천장의식의 잔해들이 ‘진짜’임에도 ‘가짜’처럼 남겨진 모습에 만감이 교차했다.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추적해 본다 


ⓒ트래비

문천으로부터 마얼캉의 탁극기토사관채(卓克基土司官寨)까지 걸리는 시간만도 장장 4시간. 눈부신 날 혼자 보기 아까운 초원의 컬러와 지중해 못지않게 예쁜 장족마을의 집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긴 이동 시간에도 불구하고 쉽게 잠들지 못했다. 마얼캉 현에서 7km 가량 떨어진 곳에 전형적인 장족 민가가 늘어선 서색민거(西索民居)에 내려 야트막한 산중턱에 위치한 관채로 향한다. 탁극기토사관채(卓克基土司官寨)란 탁극기라는 마을의 토사(지방 수령)가 기거했던 관채(관저)라는 의미다. 관채는 드넓은 중국 땅에서도 특히나 중앙 정부의 힘이 미치지 않는 오지의 주민 중 선발된 관리가 기거하던 일종의 행정 관청이었다. 관채 안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다 들어서 있으며 해당 지역에 관한 한 토사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오늘 우리가 이동하는 경로는 중국공산당 역사에서 중요한 홍군의 대장정을 따라가는 길이기도 하다. 유럽인들이 ‘십자군 원정대’의 발자취를 성지순례하듯 따라가듯, 중국인들도 ‘홍군의 대장정’길을 따라 여행을 하기도 한다. 대만에서 중국 역사를 전공한 웹기자단의 ‘척척박사’ 권병한씨가 홍군의 대장정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홍군의 대장정은 국민당 군대와 싸움을 계속하며 수많은 인명 피해를 보았음은 물론이려니와 18개의 산맥을 넘고 또 17개의 강을 건넜으며 12개의 성을 가로지르는 장장 1만2,000km의 진정한 ‘대장정’이었다. 아직까지도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모택동. 그의 홍군이 특히나 사천 서부를 대장정하며 겪었던 고난은 중국 역사에서 이미 신화가 되어 버렸다. 

이처럼 현재의 탁극기토사관채는 단순한 문화체험을 뛰어넘어, 중국의 일부로서 서부의 역사를 읽고 장족들의 문화와 실제 생활상까지도 관찰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서의 역할까지도 톡톡히 하고 있다.

     홍군의 활약상

1912년에 독립국가를 선언한 티베트는 1910년대 초반부터 1930년대까지 3차례에 걸쳐 중화민국과 전쟁을 벌였다. 1935년 초 양측은 합의단계에 도달했고 이때부터 홍군이 사천 ‘캄’ 지역에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 ‘외국’으로 인식했던 지역이 약 70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거의 완전한 형태로 중국의 것이 되어 있는 셈이다. 그 후 홍군이 인민의 군대라는 것이 인식되었고 모택동의 지도노선이 확정되어 소수의 중국공산당이 국민당을 대륙에서 쫓아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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