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영업비밀입니다만, 글의 결정적 순간은 ‘제목(혹은 첫 문장)’에 있습니다. 여행글쓰기 강의를 수년간 진행하면서 과제 피드백의 비중을 높여 왔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건 제목의 중요성입니다. 제목 없는 글(정확히는, 마땅한 제목이 찾아지지 않는 글)은 제목 없는 여행이었고, 그건 제목이 없는 시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아직 아침이지만 오늘 하루의 제목은, ‘스승이란’입니다. 이 레터를 마감하지 못한 찝찝함으로 새벽 3시 반에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그래서 물감통을 열었습니다. 굳은 붓을 깨워 물감을 입히고, 지난겨울 광주에서 멈춰
잠깐만, 여권을 가지고 나왔던가?카메라는 챙겼던가? 여행 중 지울 수 없는 걱정들. ●노파심의 시작할머니는 아니지만 노파심(老婆心)이라고 해야 할까, 여행 중엔 괜한 걱정이 많이 생긴다. 공항을 가기 위해 집 현관을 여는 순간부터 걱정은 시작된다. ‘컬링 스톤’이라도 든 게 분명한 캐리어를 질질 끌며 걸어가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7400번 공항버스가 떠나 버린 것은 아닐까? 분명히 승리교회 앞에서 15분에 출발이라 그랬는데, 혹시 예전 시간표가 아니었을까?’ 네이버로 확인은 했지만, 걱정은 가시지 않는다.기어코 버
할리우드, 베니스 해변, 라라랜드.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그곳에서필름 한 롤과 함께 도착한 니콜의 이야기.하이, 니콜!Hello from LA! 시작부터 뜬금없는 ‘덕밍아웃’이지만, 케이팝의 오랜 팬이다. 샤이니 사랑해요(웃음). 지난해 한국 여행을 계획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무산되어 아쉬웠다. 이렇게나마 한국과 연이 닿게 되어 반갑고 기쁘다. 필름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어릴 때부터 히치콕 감독의 영화와 흑백 탐정 영화를 즐겨 봤다. 시가를 피우며 35mm 빈티지 카메라로 촬영하는 감독들의 모습이 어찌나 쿨해 보이던지. 대학 입학
두 번째 가을입니다. 명절을 앞두고 긴장감이 흐르는 시대라니요, 이번 명절에도 대가족은 핵가족이 되고, 귀향자는 불효자가 될는지, 영 적응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미 위드 코로나(WITH COVID-19) 시대로 태세전환 중인데 말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인지라, 확진자 집계를 중단하고 코로나를 독감 수준으로 관리하는 싱가포르의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지긴 합니다. ‘지속 가능한 방역’ 외엔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상처 입은 우리의 여행은 어떻게 될까요? 코로나만 종식되면 보복여행으로 혼쭐을 내줄 기세였는데, 기다리는 동안 보복
8월8일 섬의 날에 만나야 할 단 한 명의 여행가. 섬 여행의 스승, 김민수 작가다. ●왜 섬이냐고 묻는다면 김민수 작가를 처음 만난 곳은 섬이었다. 고흥 앞바다 연홍도라는 작은 섬. 취재가 아니라 ‘내돈내산’으로 떠난 첫 섬 여행이었다. 그가 대한민국에 흔치 않은 ‘섬 여행가’라는 사실은 늘 작다고 생각했던 한반도 반 토막의 지평을 3,358개 섬으로 넓혀 주었다. 대한민국에 그렇게나 갈 곳이 많았던 것이다. 여행가 김민수의 삶도 섬과 함께 확장해 왔다. 15년 전 취미로 시작한 캠핑이 섬 여행으로 넓어졌고, 그 기록의 가치를 인
‘여행이란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모세의 십계에 필적하는 율법처럼 강요하는 너. 너의 차디찬 웃음을 또 보고 싶진 않아. ●여행을 모독하지 말라고?오, 그는 과연 우월했다. 낡은 여권에 아로새긴 수많은 낯선 비자 도장과 무수한 각국의 출입국 기록, 국내 방방곡곡에 대한 글과 사진 포스팅 그리고 인터넷과 모바일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그의 흔적들. 특히 SNS(사회관계망)에서 여행업계와 세상을 호령하는 그의 어록들을 발견할 수 있어, 마치 랜선을 끌어당기자면 그 끄트머리에는 배낭을 멘 그가 딸려 올 듯하다. 다만 그의 ‘대단한 여행
평소 신조 중에 ‘남의 여행을 탐하지 말라’가 있습니다. 타인의 여행은 부러워할 대상도, 평가할 대상도 아니라는 것이죠. 이번 호에 이우석 작가의 유쾌한 독설이 자기 방식의 여행을 고집하는 ‘여스플레이너(旅+explainer)’에게 꽂힌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그래서 딱히 남의 여행 이야기에 솔깃해하지 않는 제가, 최근 흥미롭게 들은 여행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장애인들의 여행, 비건들의 여행입니다. 이걸 어디서 들었냐 하면, (요즘 이거 하면 아재라던데) 한동안 ‘시간 플렉스’ 한다며 종일 틀어 놓았던 클럽하우스에서였습니다
그녀의 여행은 굵고 짧은 마법이다.정확히 10초, 찍길동의 여행에 매료됐다. MZ세대의 SNS 속 여행은 여러 형태로 변해 왔다. 글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영상으로. 최근에는 ‘숏폼(Short-form)’ 영상이 대세다. 영상 콘텐츠의 길이는 짧지만, 호흡이 긴 영상보다 훨씬 직관적인 감상이 가능하다. 숏폼 영상 SNS의 대표주자로는 틱톡(TikTok), 유튜브 숏츠(Shorts) 그리고 인스타그램 릴스(Reels)가 있다. 최근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여행을 테마로 빠르게 성장 중인 인플루언서 찍길동, 진소영을 만났다.‘찍길동’이라
여행에는 늘 언어라는 문제가 있다.파파고가 해결할 수 없는, 그 어떤 문제에 대하여.볼륨 4의 목소리여행에는 늘 언어 문제가 걸리게 마련이다. 한때 서점에 ‘나라별 여행 실용 회화’ 코너가 길게 있었던 이유다. 시원스쿨 출신처럼 몇 개 국어에 통달한 ‘언어의 달인’이 아니었던 나는 무수히 많은 해외 여행지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생애 마지막으로 토플 시험을 본 것이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7년이었으니 그 수준이야 오죽할까. 다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업종별 전화번호부만큼 어마어마한 두께의 얼굴 가죽을 지녔다는 것과 모든 나라
그녀에게 물었다. 여행하는 공예가인가, 공예하는 여행가인가.이 세상 가장 산뜻한 대답을 들었다.자기소개, 한 단어로 부탁한다.처음부터 너무 빡센(?) 요청 아닌가(웃음). 나는 여행하는 공예가다.무슨 뜻인가.내가 만든 직업이다. 여행 스타트업 퇴사 후 사람들에게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항상 고민이었다. 직업은 왜 꼭 한 단어로 말해야 하나, 반드시 남들이 정해 놓은 직업 중에 골라야 하나, 의문도 들었고. 그래서 직접 직업을 창조했다. 여행도 좋고 공예도 좋으니, 둘 다 하자는 생각에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니, 부럽다. 생
백신은 맞으셨나요? 요즈음의 흔한 인사말입니다. 국민 4명 중 1명꼴로 접종을 마쳤다는 뉴스를 본 이후엔 좀 조바심이 나기도 하네요. 주사 한 방이 쏘아 올린 것은 ‘다시 여행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한동안 안부 묻기도 난감했던 여행업의 지인에게 다시 연락이 옵니다. 곧, 무어라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요즘입니다. 태도는 전염된다고 하죠. 백신이 주는 안도감은 한결 긍정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 낙관은 아직 미접종자인 저에게도 금세 전염되어, 새살이 차오르듯 안도감이 차오릅니다. 그러고 보면, ‘코시국’의 불안, 실
올 초 광주MBC 사장으로 만나 나주를 함께 여행했던 그가 3월에 제주 한 달 살이를 한다더니, 여름이 오기도 전에 여행책을 들고 나타났다. 그의 세 도시 이야기.●수첩으로 길을 낸 사람 “지금은 수첩을 잘 쓰지 않아요.” 송일준 PD가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했다. 아마도 수첩에 대한 질문을 숱하게 받았던 모양이다. 많은 이에게 진행자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지난 3월, 3년간의 광주MBC 사장 임기와 함께 37년 재직했던 MBC를 떠날 때까지 그는 과 가장 오래 함께하며 성장했고 빛났다. 하지만 미국산
여행의 절반은 밤, 나이트 라이프를 헤아린다.결국 마시는 이야기다. ●술이 없는 낮, 술이 있는 밤세상의 모든 여행은 정확하게 둘로 나뉜다. 낮과 밤. 아! 2015년 7월에 떠났던 핀란드 여행은 예외로 한다. 당시 핀란드 로바니에미(Rovaniemi)는 완벽한 백야였다. 낮이야 대개 예정대로 흘러가지만, 밤은 늘 달랐다. 고로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면 항상 밤에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냥 보내는 밤이란 내겐 없다.여행지에선 늘 술을 마셨다. 요거트나 비타민 워터를 마실 리는 없잖은가. 늦은 시각 호텔에 도착해도 “어서
여행 같은 사람을 만났다.강병무 작가의 보통의 하루를 나눴다. ‘Saram Travel이라는 닉네임, 무슨 뜻인가? 뜻깊은 의미를 바라고 던진 질문 같은데(웃음), 말 그대로 ‘여행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나는 3번의 퇴사를 했고 4번의 긴 여행을 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여행 관련 콘텐츠 및 사진, 영상 관련 일을 하는 중이다. 여전히 여행 중인 사람이다. 언제까지 여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떠날 수 있을 때까지는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3번의 퇴사,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첫 직장은 남들이 이야기하는 ‘
지난봄 한국관광공사 대학생 기자단을 대상으로 한 여행 글쓰기 강의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나요?”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에 얼버무린 말을 한 것 같은데, 대답은 사라지고 질문만 맴돕니다. ‘아름다운 문장이 뭐지?’, ‘문장은 아름다워야 하는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누구인가?’ 등으로 확장되어 가면서요. 새삼 묻는 사람, 묻는 행위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지난달부터 편집부는 ‘에디터를 위한 암묵지(暗默知)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소소한 대화의 시간입
전북의 여러 생태관광지 중에서 순창과 무주는 ‘풍경 이면의 풍경’에 흥미로운 관점이 스며 있는 곳이다. 말하자면 생태관광육성 과정에서 공동체의 문제가 두드러지는 곳인데, 정책적으로는 사회적경제가 성장해 온 과정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가는 현장이다. 국내 사회적경제 정책은 십여 년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 가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지속성이라는 영역이 대별되는 속에서도 민주적 의사결정, 자율성, 노동의 중시와 분배라는 몇 가지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19세기 당시 산업화로
훌쩍 떠났었습니다. 10년간 정주했던 서울 무교동 5층 사무실을요. 120여 권의 잡지를 만드는 동안 한 달 단위로 묶였던 일상의 매듭이 사라지자 한동안은 끝도 시작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시간의 무중력 상태에서 부유한 끝에 잃어버린 시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계절입니다. 잡지라는 것이 한두 달씩 앞서 사는 일이라, 겨울이면 봄의 꽃대궐, 봄이면 여름의 짙은 녹음, 여름이면 가을의 울긋불긋한 산하, 가을이면 순백의 설경을 그리며 일 년 내내 욕구불만에 시달렸던가 봅니다. 폭설이 잦았던 지난겨울은 광주 양림동
여행의 자유로부터 멀어지는 동안우리는 모두 비밀스런 아지트에 꽁꽁 묶여 버리고 말았다. ●여행을 막는 무장단체십수년간 정기적(기계적)으로 여행을 가며 먹고 살아온 직업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길이 막힌 지 1년도 넘었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여행 결핍증에 시달리다 못해 정신줄을 놓고 살아간다. 이를테면 외딴 산장처럼 생긴 비밀 아지트 내 인질 의자에 묶여 있는 기분이다. 입에는 더러운 발수건으로 재갈을 물렸고 두 손은 의자 뒤로 전선에 꽁꽁 묶였다. 악취와 오십견 탓에 둘 다 견디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나를 꼼짝달싹 못하도
저는 호불호가 뚜렷하지 않은 편입니다. 리액션도 신통치 않습니다. ‘뭐 먹을까?’ 물으면 ‘아무거나’가 태반이고, ‘맛있지?’ 하면 ‘응, 괜찮아’가 고작입니다. 상대방 김 빼기 딱 좋은 습관이라 고치고, 나름의 선호 리스트도 가졌으면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그래서인지 취향이 뚜렷한 사람을 만나면 부럽기도 하고 호기심도 발동합니다.원고에도 취향이 묻어납니다. 연재 기사가 대표적입니다. 매체가 됐든 개인 블로그가 됐든 어딘가에 무언가를 정기적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입니다. 대상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성실함이 뒤따르지 않으면
전북의 생태관광지 중 익산과 남원의 육성과정을 생명력과 회복력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생명력은 생명을 유지하는 힘을 의미하고, 회복력은 처음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인데, 오늘날 두 개념은 공통적으로 다른 방식으로의 전개라는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즉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힘이나 원래 상태로의 회귀가 아닌, 훼손이나 피해가 발생하는 구조적 원인에 대해서 ‘대안적 의미를 지향하는 회복’, 단순한 생명의 유지가 아닌 그 힘의 ‘본질적 가치로서의 생명’이라는 뜻으로 확장된 것이다. 전북지역의 생태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