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의 추억, 마포 한강길
나루의 추억, 마포 한강길
  • 김예지 기자
  • 승인 2020.07.01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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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걷기 코스
밤섬과 여의도가 보이는 한강길
밤섬과 여의도가 보이는 한강길

자박자박 여름을 걷는 기분 


초록빛이 쨍하게 무르익은 날.
자박자박 길을 나섰다.

 

●마포 한강길
Mapo Hangang-gil
마포종점 나들목

추천코스│마포역 4번 출구에서 출발, 합정역 7번 출구에서 마무리  
길이│5km  
소요시간│약 2시간 30분

마포대교에서 서강대교를 지나 양화대교까지. 한강을 곁에 두고 걷다가 곳곳에 보이는 옛 흔적에 걸음을 멈춘다면, 길이 건네 오는 이야기에 화답하는 것이다. 때는 조선시대. 지금의 마포역 부근에는 수상교통의 요지, 마포나루가 있었다. 전국에서 드나드는 배들로 늘 활기를 띠었던 이곳엔 과거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양화대교에 거의 다다랐다면 합정역 쪽으로 발길을 돌려 보자. 조선시대 최대의 천주교 박해 사건이 벌어졌던 ‘절두산 순교성지’와 조선의 근대화를 도운 외국인 선교사들이 잠든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있다. 

도보길과 자전거길이 잘 분리된 한강길
도보길과 자전거길이 잘 분리된 한강길

 

●여기서 STOP!
스토리 따라 걷는 마포 한강길

옛 마포종점이 있었던 자리, 마포종점 나들목
옛 마포종점이 있었던 자리, 마포종점 나들목

▶그 시절의 종착역 
마포종점 나들목


서울에 전차가 다니던 시절, 전차의 종착역은 마포였다. 지금의 마포대로 끝단에 위치한 마포 어린이공원 앞 나들목에 ‘마포종점’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서울의 전차는 1968년 11월을 마지막으로 운행을 멈췄고, 마포종점 또한 역으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그럼에도 마포종점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건, 1960년대 가수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이라는 노래가 상당한 인기를 얻었기 때문. 노래 가사에는 마포종점을 비롯해 당인리 발전소, 여의도 비행장 등 그 당시 마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주소: 서울 마포구 마포동(마포 어린이공원 앞)

마포나들목 옆 마포나루터
마포나들목 옆 마포나루터

▶만남의 광장
마포나들목 & 마포나루터


조선시대 한강의 대표적인 나루였던 마포나루를 지금은 ‘터’로 확인할 수 있다. 용강동 부근 마포나들목을 지나면 강변 한쪽 벽면에 ‘마포나루터’라는 커다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마포나루는 삼개(麻浦)나루라고도 불렸는데, 과거 한강에 있었던 서호, 마호, 용호 3개의 포구를 통틀어 삼개포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석 삼(三)’ 대신 ‘마 삼(麻)’ 한자를 쓰게 되면서 마포라 불리게 됐다. 삼남지방을 포함한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어온 상선들로 붐볐던 마포나루에서는 소금과 새우젓 거래가 특히나 활발했다고 전해진다.  

주소: 서울 마포구 토정동(마포 한강삼성아파트 앞)

아파트 단지 내 토정 이지함 선생의 집터
아파트 단지 내 토정 이지함 선생의 집터

▶신년마다 생각나는 그
토정 이지함 선생의 집터


그를 잘 몰랐어도 한 번쯤은 인연이 있을 것이다. 이지함 선생은 <토정비결>의 저자다. ‘토정(土亭)’은 이지함 선생의 호(號)로, 마포 강변에 흙으로 움막집을 지어 살던 데서 유래했다. 때로는 기인처럼, 그러나 늘 백성의 아픔에 공감하는 청렴한 학자로 살다 간 그의 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에 있고, 집터는 마포나들목 뒤편 한강삼성아파트 단지 내 비석으로 남아 있다. 집터와 멀지 않은 곳에 토정의 흔적들이 또 있다. ‘토정로’에서는 이지함 선생의 동상을 볼 수 있고 2019년 12월, 마포나들목과 현석나들목 사이에 ‘토정나들목’이 새롭게 개통됐다. 

주소: 서울 마포구 토정로32길 11(마포 한강삼성아파트 단지 내)

독특한 구조의 현석나들목
독특한 구조의 현석나들목

▶지나면 복이 온다
현석나들목


밤섬 맞은편에 자리한 현석나들목은 한강의 다른 나들목들과는 사뭇 다르다. 촘촘한 나무 결로 이어진 벽면과 3층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삼각형 통로, 통로 중심에 심어진 자작나무의 조합이 하나의 작품 같기도 하다. 통로를 타고 내려가 닿는 현석나들목의 내부 역시 범상치 않은 샛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이는 러시아 예카테리나 궁전의 ‘호박방’을 형상화한 것.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길 바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주소: 서울 마포구 현석동(‘밤섬현대 힐스테이트’와 ‘반도유보라아일랜드’ 아파트 사이)

절두산 순교성지, 김대건 신부 동상
절두산 순교성지, 김대건 신부 동상

▶성지길을 따라가면
절두산 순교성지


누에의 머리를 닮은 봉우리 ‘잠두(蠶頭)봉’은 1866년 병인년을 기점으로 ‘절두(切頭)산’, 즉 ‘머리가 잘린 곳’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그해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천주교 박해 사건인 병인박해(丙寅迫害)가 있었기 때문. 당시 흥선대원군이 선포한 천주교 박해령에 조선의 천주교 신자와 프랑스 선교사 등 무려 8,000여 명이 잠두봉에서 죽음을 맞았다. 순교의 의미를 기리는 절두산 순교성지는 합정역 7번 출구에서 이어지는 ‘성지길’ 끝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우리나라 최초로 성인의 칭호를 받은 김대건 신부의 동상과 흥선대원군의 척화비 등을 볼 수 있다.

주소: 서울 마포구 토정로 6
운영시간: 매일 09:30~17:00

이국적인 모습의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이국적인 모습의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조선에 청춘을 바친 이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절두산 순교성지에 왔다면 이곳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한 선교사(개신교)와 가족 500여 명이 잠들어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순교성지 바로 옆에 있다. 양화진에 묘원이 생긴 건 1890년 7월. 제중원의 2대 원장이자 고종의 주치의로 활동했던 헤론(John W. Heron)이 세상을 떠난 그때 당시 외국인 묘원이 있던 제물포까지 시신을 옮기기 힘들 만큼 날이 더웠던 탓에 양화진에 묘원을 만들었다. 이후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의 설립자인 영국인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 특파원 베델(Ernest T. Bethell), 고종의 밀사로 활동하고 조선 독립을 도왔던 미국 청년 헐버트(Homer B. Hulbert) 등이 이곳에 묻혔다.


주소: 서울 마포구 합정동 114-3
운영시간: 월~토요일 10:00~17:00, 일요일 휴무

 

글·사진 김예지 기자
취재협조 마포구청 www.mapo.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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