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기에서 15세기까지 동서양간의 무역을 장악했던 나라는 베네치아공화국으로 지금의 이탈리아 일대다. 당시 서양에서 인기 있던 품목은 인도에서 재배된 후추와 같은 향신료로 이는 무역선에 실려 홍해를 거쳐 지중해 인근에 위치한 베네치아까지 운송됐다. 베네치아는 이러한 해상 네트워크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15세기 중엽에 이르러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맞이했다. 이슬람 왕조인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였던 비잔틴 제국(현재의 터키 및 그리스 지역)을 이탈리아산 대포로 멸망시키고 세르비아와
미국 중부의 어느 소도시에서 막 낭독회를 끝낸 참이었다. 나는 몹시 피곤했고 그래서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발랑 누워 버렸다. 가을이었을 텐데, 낯선 소도시는 추웠고, 차가운 담요 안으로 몸을 게으르게 밀어 넣으며 나는 휴대전화를 열었다. 페이스북 알람이 여러 개 떠 있었다. 후배가 내 이름을 태그한 글을 올려 둔 모양이었다. “언니 언니, 나 어제 술자리에서 어떤 분을 만났는데요. 세상에 얘길 하다 보니 언니랑 소개팅 한 남자였어요!”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내 생애 소개팅은 단 세 번이었다. 첫 번째 소개팅 상대는
얼마 전 미팅을 위해 모 빌딩을 처음 갔다. 예상보다 길이 막혀 미팅 5분전에야 겨우 주차를 했다. 1층으로 올라갔더니 옆의 빌딩으로 가란다. 분명 B동 주차장으로 들어갔는데, 지하가 연결되어 있어 A동으로 올라온 거였다. 부랴부랴 옆 빌딩으로 갔다. 미팅 룸에 입성한 시각을 보니 5분 지각이다. 친절한 미팅 상대는 마실 것을 물어본 뒤 가지러 갔다. 잠깐 숨 돌릴 틈이 생겨 폰을 체크했더니 모르는 번호에서 문자가 와있다. “ㅇㅇ빌딩 지하3층 지정주차공간에 주차하셨는데 괜찮으시다면 지금 차 좀 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급하게 주차하
필자는 중국 청두(成都)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3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사천성의 성도인 청두는 오랜 역사와 풍부한 자연유산 그리고 세계 최대 규모의 판다 동물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인구 1,500만명의 대도시인만큼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은 곳이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를 묻는 질문에 많은 사람은 음식이라고 말한다. 이번 여행은 대학교 친구 둘과 별다른 계획 없이 시작되었다. 한 친구는 맛집을 찾아다니기 좋아하고 또 다른 친구는 요리사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데, 미식으로 소문난 청두에서 주말
긴 겨울이 지나 계절은 어김없이 봄을 불러왔지만 호텔산업은 따뜻한 봄기운 보다는 여전한 찬 기운이 몸 주위를 휘감고 있다. 봄바람의 기대가 무색하게 최근 전해진 호텔예약 중계업체인 M사의 폐업은 찬 서리 같은 뉴스였다. 폐업의 원인과 대처의 아쉬움에 대한 세평을 듣고 있자니 우려했던 현실이 닥치고 말았다는 걱정이 일었다. 이와 동시에 단순히 건물 하나로서의 존재 가치만이 아닌, 서로 연계돼 복잡한 구조로 진화되어가는 호텔산업을 향한 우리의 시각에 불안감이 찾아왔다. 과연 산업으로서의 호텔은 우리에게 충분한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일까?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농산물과 면세품을 소규모로 밀거래하는 보따리상을 ‘따이공(代工)’이라 한다. 이들 중 면세점 따이공이 딜레마다. 지난해 3월 금한령 이후 중국인 관광객은 48.3% 감소했으나 따이공의 매출이 대폭 증가하면서 따이공은 사드 보복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면세점에 VIP가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면세점에서 대량으로 산 물건을 밀거래 함으로써 유통 질서를 교란하고, 가격을 파괴하고, 브랜드 경쟁력을 하락시키는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지난해 면세점 매출은 전체 외국인 관광객 수가 2016년 대비 22.7% 감소했음에도
얼마 전 미팅을 위해 사내 회의실을 오후 3시로 예약해 뒀다. 3시쯤 되어 협력사 분과 회의실로 들어가려는데, 20대 중반의 신입 직원이 회의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직원에게 오후 3시로 회의실을 예약했으니 좀 비켜줄 수 있겠냐고 물었고 그는 아직 2시59분이니까 기다리라고 답했다. 순간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기가 차기도 했다. 난 나이도 많고 상급자인데 2시59분이라고 회의실을 내어줄 수 없다니. 그러면서 나도 몰래 입에서 내가 사회 초년생일때 당시 상사분들이 하던 말이 툭 튀어 나왔다. ‘하여튼 요새 젊은 것들은…’ 그
훈훈해진 공기에 슬슬 야외활동을 꾀할 당신.몸보다 앞서 간 마음에 자칫 골치 아픈 통증이 찾아올 수 있다. 초짜 마라토너는 피로해 피로골절이란 한 골절에 반복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는 상태로, 무리한 운동을 할 때 근육이 다 흡수하지 못한 충격을 뼈가 대신 받을 때 발생한다. 뼈가 부러지진 않지만 더 이상 치유가 불가능한 미세한 손상이 골 조직에 축적되면 뼈에 금이 가게 된다. 피로골절의 위험이 가장 큰 대표적인 종목은 달리기. 흔히 경골(정강이뼈)에 통증을 호소하곤 한다. 피로골절이 발생하면 1~2달 동안 절대적 휴식을 취해야 하고
“사랑하는 소연언니에게, 여기는 포카라. ABC에 다녀왔어. 그다지 높지도 않은데, 이번에는 고산병으로 고생 좀 했지.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좋더라. 한 계단 한 계단 끙끙거리며 오르다 보니, 끝이 나오긴 하더라고. 내려올 땐 깜짝 놀랐어. 이렇게나 길었던가 싶어서. 우리의 킬리만자로 생각도 많이 났어. 죽을 것 같던 밤과 별과 맥주. 나 때문에 고생했던 언니, 다시 한 번 미안하고 고마워. 올해는 더 재미있게 살자, 언니야. 히말라야 기도발을 믿어 보며, 포카라에서 지형”소연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뭐, 이런 걸 또 보냈어”라면
작년 11월에 처음 만난 스린 마디팔리(Srin Madipalli)의 인생 스토리는 감동의 연속이었다. 영국에서 태어난 스린은 위대한 여행가이고, 변호사이자 창업가, 그리고 엔지니어 개발자이자 공대생이요, 경영학도다. 인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스린은 영국 명문 대학 킹스 칼리지에서 유전학을 전공한다. 하지만 졸업 후에는 진로를 바꿔 기업 자문 변호사가 되고, 3년간 세계 최대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약한다. 이쯤 되면 성공한, 그리고 안정적인 이민 2세의 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스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옥스퍼드
옷 잘 입는다는 일명 ‘패피’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는 무엇일까? 정답은 ‘없다’이다. 예전에는 명품 브랜드 옷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장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요즘 ‘패피’들에게 명품 브랜드라 하더라도 단일 브랜드 옷으로 치장하는 것은 무척이나 촌스러운 일이다. 자신만의 감성과 지식을 활용해 다양한 브랜드와 아이템을 스스로 편집한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것을 감각 있고 멋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이 출시한 제품을 본래의 기능 그대로 사용하거나 하나의 브랜드만 고집하는 수동적 소비자와 달리, 적극적인 소비자 편집자(에디터)가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예술작품 중 하나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Genesis-제네시스)’가 아닐까 싶다. 그림 속에서 신과 인간이 서로를 향해 팔을 길게 뻗어 손가락이 맞닿을 듯 보이는 모습은 당시의 세계관이 신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화해 가고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최근 수많은 논쟁 속에서 큰 이슈로 떠오른 비트코인 열풍과 함께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몇 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3D 프린터, 빅 데이터, 로봇공학, 인공지능 등은 계속 거론되어왔고 이제는 많은 전문가들이 블록체인이야말로
오래 전 혼자 여행을 하다가 호주 퀸즐랜드주의 작은 마을에 들른 적이 있다. 길게 휴가를 낸 뒤 호주 동부 해안을 따라 버스나 기차를 종종 바꾸어 타며 북쪽으로 올라가던 중이었을 것이다. 그 작은 마을에 내린 연유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때였으니 그곳은 여름이었고 나는 얇은 셔츠에 반바지 정도의 차림이었을 것이다. 늘 끌고 다니던 핫 핑크 수트케이스였을 테고. 그 어떤 예약도 없이 아무 데로나 다니던 때였으니 그 마을에 덜컥 내려 버린 건 아마 아무 이유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어쨌거나 그 적적한 마을 입구에는 표
길진 않았지만 꽤 쏠쏠했던 설 명절도 지나고 나니 더 이상 ‘올해 계획’을 유예할 핑계가 사라졌습니다. 책을 내 볼까 했습니다. “여행보다 글이 좋았다!” 뭐 이런 내용으로요. 거짓말 같지만 진심입니다. 슬그머니 여행 기록의 중요성을 설파해 보고도 싶었습니다. 기록하지 않는 여행은 쉬이 휘발되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믿었던 출판사 후배에게 정곡을 찔렸습니다. “언니, 여행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 언니 주변에만 많은 거라고!”생각해 보니 그가 옳습니다. 여행작가, 여행기자, 여행업 종사자 등등 제 주변에는 온통 여행
지금, 어떤 자세인가요?무심코 취한 그 자세가 어쩌면 당신의 관절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결코 양반이지 않은 양반다리 습관처럼 몸에 밴 양반다리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양반다리 자세는 다리 모양과 고관절을 왜곡시키는 잘못된 자세다. 왼발이 오른발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골반의 왼쪽 부분이 틀어져 전체 골반과 고관절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 무릎에도 좋지 않다. 무릎이 130도 이상 구부러지면 무릎 앞쪽 관절에 체중의 7~8배에 달하는 무게가 실리게 된다. 바닥에 앉아 있을 때는 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쭉 펴고 앉자
“인스타에서 보고 알게 되었어. 풍경이 너무 예뻐서 한번 가보려고.” 에어비앤비 미국 본사에서 서울로 출장 온 직장 동료 제나(Jenna)는 일본으로 여행 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녀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본 홋카이도에 들러 일주일 동안 휴가를 즐길 계획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한국에 왔으면, 한국의 시골 풍경을 돌아봐야지 왜 일본에 가냐”고 그녀를 설득했지만, 제나는 아랑곳 않고 끝내 일본 홋카이도로 떠났다. 한국에 머물면서 시골 생활을 가까이 접해보라는 나의 설득에 제나가 넘어가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인스타그램(I
최근 불미스러운 일로 호텔이 화제가 됐다. TV조선 CSI소비자 탐사대가 설치한 몰래 카메라에 잡힌 특급호텔의 객실정비 모습 때문이다. 한 호텔은 변기 닦은 수세미로 물 컵을 닦기도 하고, 손님이 사용한 수건 한 장은 변기, 욕조 가릴 것 없이 닦는 만능 걸레가 됐다. 대부분의 호텔들이 ‘우리 호텔만은 그렇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고는 있지만 이런 반응 뒤편에는 긴장과 불안함이 존재하고 있다. 호텔들은 방송 이후 각종 미디어를 통해 입장을 전달하고, 혹시 모를 불똥을 방어하느라 움직임이 많아졌다. 객실정비 인원을 늘리겠다고 공언한
지난 1월 북해도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하코다테 관광이 예정되어 있던 날 필자는 하코다테역 도착 30분 전까지 하코다테 츠타야서점 방문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코다테 츠타야서점을 들르기 위해서는 하코다테역이 아니라 전역인 고료카쿠역에서 내려야 하고 그러면 하코다테에서 진행하려던 일정을 모두 변경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필자는 고로카쿠역에 내려 하코다테 츠타야서점을 다녀왔다. 더 오랜 시간을 머물지 못해 아쉬울 만큼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츠타야서점의 창시자는 ‘마스다 무네아키’다. 그는 1983년 츠타야(TS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들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저자 찰스 디킨스 의 한 구절이다. 1859년의 작품을 보며 2018년에 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마주한 현실이 160년 전의 그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
2018년 첫날은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를 보며 맞이했다. 오렌지 빛과 보랏빛이 어우러진 일출을 기대했지만, 텔레파시가 통하지 않았는지 화려한 하늘은 등장하지 않았다. 어둠에 쌓여 있던 안나푸르나 봉우리가 시간이 흐르면서 윤곽을 드러내는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지만,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좁은 의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지그시 감았다. 히말라야의 에너지를 몸과 마음속 깊은 곳까지 불어 넣고 싶었다. 새해 첫 아침이지만, 트레킹 마지막 날이었다. 하산 출발점은 촘롱(Chomrong). 내려오는 동안 자꾸 뒤를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