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인지 ‘햇수’인지가 그렇게 중요해요?독보적인 ‘말빨’을 가진 22년차 여행작가. 뻔뻔하게도 진지하게, 스스로를 소개하는 그에게 딱히 딴지를 걸 수도 없었던 건 그만큼 자명했기 때문이다. 2012년 여름부터 약 2년간 ‘FM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의 고정 게스트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린 노중훈 작가는 올해로 7년째 MBC 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진행 중이다. 그 ‘말빨’을 증명하듯, 우리의 첫 만남에는 어색한 쉼표 하나가 없었다.그의 여행기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간이 전혀 되지 않은 두부랄까. 노중훈 작가의 글을 음
15년 전 에콰도르 쿠엔카에서 가방을 통째로 털렸다. 쫓아갔지만 동서남북으로 사라진 그들을 잡을 순 없었다. 가방에는 카메라와 망원렌즈, 지갑과 일기장, 엽서와 사탕이 있었다. 말로만 듣던 ‘사건’이 일어난 것. 그날 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구나’라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비슷했다. 빨간 신호등에 멈춰 있는데, 옆에서 차가 달려들었다. 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결국 폐차장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2020년 봄, 악몽 같던 기억이 자꾸 떠올랐다. 무기력한
●우린 언제쯤 다시여행을 할 수 있을까요? 새내기 에디터였을 무렵. 채지형 작가와의 대수롭지 않은 대화를 기억한다. 세심하고 다정했다. 출판사니 잡지사니, 그동안 수많은 에디터들을 접했을 그녀임에도 뭘 잘 모르는 에디터의 (어쩌면 어이없었을) 한마디도 허투루 흘리는 법이 없었다. “제가 잘 몰라서요, 작가님”이라는 무책임한 사과를 할 때면 “괜찮아요, 맘 쓰지 마셔요, 기자님”이라는 답변이 채지형 작가에게는 늘 돌아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그렇게 한결같이, 명랑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그려진다.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채지형
2006년 이후 지금까지 프리랜서 작가로 살아왔습니다. 벌써 15년이 됐네요. 프리랜서로 살아오는 동안 원고를 쓰고 사진을 찍는 일 외에 다른 일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작가로 살아가며 어떻게 생활을 해나가는지 궁금해하는 걸 알고 있습니다.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하루 일과는 어떤지, 원고료만으로도 정말 생활이 가능한지 등등. 사석에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돌이켜보니 그다지 성공한 인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실패한
●최갑수 병이 창궐한다최갑수 작가, 2000년에 여행기자 생활을 시작해 2006년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했다. 2020년을 맞이한 그의 감성은 무려 20년의 세월 동안 봄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그의 글귀는 20대에게 여행이다. 스멀스멀 설레는 감정. 모든 여행 해시태그 앞, 그의 글귀가 설렘을 대신하는 이유기도 하다. 최갑수 작가를 지면에 소개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의 책을 지면에 옮겨 적는 일과 다름없겠다. 작가로서 최갑수는 항상 최갑수를 적어 왔기 때문에. ‘당신의 잠든 등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다. 가
여행을 누려야 할 지금,지구의 모든 여행은 잠시 멈춤 상태다.5월, 꽃이 만개하고 봄볕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꽃 마중이 한창이어야 하는 시기. SNS에는 예쁜 꽃과 봄내음 가득한 사진과 영상이 넘쳐날 때지만 전 세계인은 자신의 집과 병원에 격리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지금의 상황과 유사한 영화들이 많았지만 현실에서 경험해 보니 매우 고단하다. ‘살아서 다시 만나자’라는 인사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소위 ‘웃픈’ 현실을 어떻게 버텨 낼 것인가. 그저 ‘힘껏 버티기’가 정답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놀랍지만, 적응이 되어 갑니다. 어색하기 짝이 없었던 온라인 수업도, 질의응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고, 혼밥도 혼술도 꽤 즐길 만하며, 여행 없는 나날도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조금 다행스럽기까지 한 것은,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서 놓여난 것입니다. 이 시기는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을 겁니다. 새로운 시도들을 강요합니다. 준비한 적 없는 온라인 개학을 현실로 만든 것처럼요. 가상 현실 여행도 쑥 앞당겨질까요? 그러면 유채꽃밭이 확 갈아엎어지는 일은 없겠지만, 썩 달갑지는 않네요. 다들 조금은 그러
인생이라는 여행은 쉬지 않고 계속되지만, 여행은 지치면 잠시 쉬어 가면 된다. 멈춰 선 여행자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한 줄기 바람을 따라 제주 성산에 작은 공간을 연 사진작가 김병준씨를 만났다.미리 보는 에필로그 바람과 만나다 미로 같은 돌담길, 아직 채 피지 않은 동백나무, 하얀 낙서로 가득한 무쏘, 초록 잎사귀에 반쯤 가려진 작은 건물, 입구 앞에 쓰인 특이한 이름 ‘조아가지구’. 설계부터 인테리어까지 김병준 작가 본인이 직접 꾸민 이 독특한 사진관 겸 갤러리는 그가 직접 모은 지구별 조각들로 가득했다. 드
여행의 자유는 자아실현의 방편이다.그렇기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다.과거 유럽은 근대화 시기를 겪으며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르러 각 국가의 영주권 및 시민권 취득 요건이 강화되었고, 이로 인해 ‘거주이전의 자유’는 다시 제약을 받게 되었다. 반면 ‘여행’은 꾸준히 자유로워졌다. 여행의 자유는 인류에게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는 최선의 방편인 셈이다.이번 여행은 이른바 ‘비행청소년’이라 불리는 10명의 소년과 함께 베트남 하노이로 떠났다. 이들은 모두 사단법인 만사소년의 후원 아래
믿는 구석이 있었다자카르타, 더구나 발릭파판은 처음이니까. 보나마나 이번 인도네시아 출장을 준비하면서 손이 가는 게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들이었으니 그 대단한 걸 해냈노라 굳게 믿고 있다. 한-아세안센터 조현명 차장과 윤예슬 대리는 늘 침착하고 능숙하게 일을 착착 진행했다. 구체적인 사건을 하나 들자면, 발릭파판 공항에서다. 직원의 실수로 내 수하물 캐리어가 파손됐을 때 조 차장은 본인의 일처럼 나서서 보상 절차를 알아봐 줬다. 자카르타 공항에서 인수인계(!)를 받은 윤 대리는 항공사 오피스까지 동행해 도와주니, 이렇게 고마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오작교.45만 유튜버, ‘반둥오빠’가 떴다.스포일러가 나쁜 줄 알고 있지만, 좀 해 보겠습니다. 4월호에는 인도네시아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무려 3명의 에디터가 함께 취재를 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취재에 동행했던 이들 중에는 특별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의 한 쇼핑몰. 다들 그를 보곤 반갑게 다가와 인사를 건넵니다. 아마도 오래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만, 그를 반둥오빠라고 부르더라고요. 어딜 가도 반둥오빠를 외칩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유튜버로 활동 중인 반둥오빠, 한
‘처음’은 항상 설렌다. 첫 여권, 첫 비행. 일상과는 다른 식사를 하고, 낯선 장소에서 잠을 청하는 것조차도. 지구별 여행학교가 그 설레는 ‘처음’을 선물했다.‘함께’라는 행복첫 여권을 발급받던 날, 처음으로 출국장을 나서는 날,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순간. 누구에게나 처음은 설레는 법이다. 학생 14명이 인천공항에 모였다.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학생들의 옅은 미소에선 설렘이 묻어 나왔다. 캄보디아 씨엠립은 ‘앙코르 유적’을 탄생시킨 크메르 제국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19세기 프랑스 고고학자들의 탐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