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천지에 좋은 사람만 사는 것은 아니다. 하인리 힘러(Heinrich Himmler, 나치의 SS친위대장)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도 있고, 블라디미르 푸틴 같은 전쟁광도 있게 마련이다. ●이집트 뮤지움 빌런, 뮤지움 뮤지움 이집트에선 ‘이브라힘’이라는 꽤 근사한 이름을 가진 가이드를 만났다. 아침이고 늦은 밤이고 그는 언제나 웃었다. 처음엔 그 웃음이 고대문명의 후손들이 가난한 동양인 여행작가를 환대하는 최고의 표시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구, 이 멀리까지 호구를 보내 줘서 반가워요’라는 뜻이었다.이브라힘은 과
예술로 노는 마을, 위스테이 별내를 찾았다.그곳에서 서로를 잇는 이들을 만났다.●예술로 노는 마을, 백 개의 잇다‘위스테이 별내 사회적 협동조합’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위스테이 별내 아파트 입주민으로 구성된 생활문화공동체다. ‘위스테이 별내’는 국내 최초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2018년에 착공하여 2020년 8월에 입주를 마쳤다. 총 491가구로 구성된 거주민은 임차인인 동시에 아파트를 운영하는 주체가 된다. 즉 이곳은 스스로 살아갈 공간을 주민이 직접 꾸며 가는 아파트다. 덕분에 육아 돌봄 프로그램, 시니어
매번 이 지면의 첫머리를 어떤 문장으로 채워야 할지 심히 고민합니다. 이건 어떨까요, 살구빛 봄입니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 탈락입니다. 잡지의 계절은 독자님들이 머무는 시간보다 한 달쯤 이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민할 때 딴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후배 기자들이 옆자리에 오갈 때마다 눈치가 보입니다. 뭐라도 적어 봐야겠습니다. 그렇다고 하나의 주제로 내용을 풀어 가기에는 최근 너무나도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치렀고 울진, 삼척 일대에서 산불이 났습니다. 무려 213시간 만에 주불 진화에 성공했는데, 이
노래를 틀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났다. ●샌프란시스코에 놓고 온 것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내 마음을 두고 왔어요. 언덕 위 높은 곳에, 그것이 나를 불러요. 작은 케이블카가 별까지 반쯤 올라가는 곳이죠(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High on a hill, it calls to me. To be where little cable cars climb halfway to the stars).” 부드러운 선율의 피아노 연주와 잘 구운 와플 같은 ‘토니 베넷(Tony Bennett)’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
하나부터 열까지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 INTJ. 지루한 건 싫고 재밌으면 오케이인 사람, ENTP. 싸움이 나면 말리다 본인이 싸우는 사람, ENTJ. 식당 메뉴 선택을 전부 결정하는 사람, ISTJ. 여행 가자고 설득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 INFP. 사람 말 안 듣고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 INTP. MBTI를 맹신하진 않지만, 거의 맞는 것 같습니다.저는 INTP입니다. INTP의 특징은 사람에 대해 관심이 적고, 염세주의자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계획을 철저하게 계획했다 한들 즉흥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다분하고, 영혼 없
애벌레, 버섯, 이끼. 생명은 나무를 키운다. 그리고 나무는 울창한 숲을 이룬다.서울 양천구 목2동에서 나무를 키우는 플러스마이너스1도씨를 만났다. ●역사는 수다에서 시작됐다용왕산이 감싸고 안양천이 흐른다. 서울 양천구의 작은 동네, ‘모기동(목2동의 애칭)’. 고요해 보이는 골목에 뜨겁게 살아 숨 쉬는 문화가 있다는 사실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모기동의 수많은 모습 중 하나다. 지금까지 모기동에서 일어난 문화 행사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가장 규모가 큰 행사인 모기동 마을축제부터 인문예술축제 ‘별 헤는 밤’, 마을공
상하이로 향하는 비행기.그곳에서 고요의 바다를 유영했다. 일찌감치 게이트를 향한 이유몇 년 전 어느 겨울. 나는 무슨 이유로 중국 상하이를 갈 일이 있었다. 아침부터 운이 좋았다. 공항버스도 금방 왔고 카운터에서 비즈니스석 업그레이드를 해 준 터라 굉장히 신이 나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라운지로 잽싸게 달려가 밥을 두 접시나 퍼먹었다. 여전히 20여 분 여유가 있었지만, 오만함으로 무장하고 일찌감치 게이트로 향했다. 남들이 리을(ㄹ)자 모양으로 줄을 설 무렵 ‘상위 클래스 줄’로 입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입장하는
임인년(壬寅年), 벌써 2월입니다. 범상치 않은 1월을 보냈습니다. 얼마 전 소파에서 일어나다가 컵을 세로(?)로 밟았습니다. 유리컵을 발바닥으로 부항 뜨듯 짓이겼는데 워낙 깔끔히 뭉갠 탓에 다치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서 핸드폰도 떨어트렸습니다. 액정이 박살 났지만, 다행히 3년 약정이 갓 끝난 갤럭시였습니다. 마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안경다리가 부러졌고, 고향 집에서 양파(푸들, 8살)의 똥을 밟았습니다. 엉킨 파김치 하나를 들어 올리듯 조심조심하는데도 시뻘건 김치 국물이 튀는 듯한 시작이었습니다. 2022 흑범
너는 11시간 후 유럽에 도착한다. 그리고 네 지갑은 지옥에 간다. ●그 술의 맛을 모르는 이유여행자는 무엇인가를 사게 되기 마련이다. 쇼핑은 여행의 재미를 준다. 대부분 국내에서 볼 수 없는 꽤 근사한 물건을 구매하고 그것을 사회관계망(SNS)에 올려 자랑도 한다. 나는 불행히도 대부분에 속하지 못했다. 절대로 필요 없는 물건을 싸게 구매하거나 꼭 필요한 물건을 비싸게 사고 만다. 충동구매를 피하기 위해서도 환전을 많이 하지 말았어야 했다. 테러도 감염병도 인종차별도 무섭지만, 개인적으로 여행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장애는 물가라고
새해 첫날부터 머릿속이 펄펄 끓는 사골 떡국 같습니다. 뿌옇고 하얗고 뜨겁습니다. 김도 납니다. 당분간 천소현 부편집장의 뒤를 이어 레터를 채우게 됐습니다. 첫 줄부터 현기증이 나는데 이 페이지를 무르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오늘, 저희 마감날입니다. 먼저 의 독자님들,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한 살이 늘었고 새해입니다. 이 지면은 일종의 ‘예고편’ 아니겠습니까. 2022년에 대한 의 기대와 방향을 가득 적어야 마땅하겠지만, 저는 생각보다 철저하고 꼼꼼하고 세심하고, 뭐 대충 그런 종류 비스름한 사람입니다. 선
은 드물고 귀한 축제 여행기다. 대한민국 축제에 대해 느껴 온 낱낱의 애증이 코믹하게, 살벌하게, 슬프게 깔려 있다.,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두꺼운 팬층이 있을 정도로 유쾌한 필력을 자랑하는 김혼비·박태하 부부 작가가 12개의 지방 소도시 축제를 여행하며 기록한 여행기는 격월간 문학잡지 에 연재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책으로 묶였다. ‘코시국’의 여행책인데도 쇄를 거듭해 7쇄에 이르렀다. 민음사 | 1만5,000원 축제 여행기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의 사진도 없는 은
나이가 들면서 겁이 늘었다.30년 전 해병대를 나왔지만, 귀신이고 뭐고 겁부터 난다.뭔가 꺼려지는 일은 그동안 충분히 해봤다. 그러니 제발 그만해, 나 너무 무서워. ●애벌레 먹방이 잘 어울리는 사람번지점프, 로프에 몸을 묶은 채 고층 빌딩 바깥을 걷는 스카이 워킹, 겁이 난다. 강원도 인제군 번지점프에서는 후한 강원도 인심(?) 덕에 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 한 번 값에 무려 2번이나 태워 주는 것도 모자라, 끈도 다소 넉넉히(?) 풀어 줬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한참 떨어졌다.과거 해외로 여행 취재를 다닐 때의 일이다. 보통
경북 칠곡군의 작은 마을. 괭이를 든 이들이 있다. 땅을 고르고 자원을 캐내고, 경계를 부수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파머’다.●이름을 불러 주는 일나는 경계를 무너뜨리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흐릿하게 만들고 흑백으로 분리된 세계를 묽게 희석시킨다. 경계를 허문다는 건 마치 새로운 색깔을 창조하는 일과 같아서, 그런 일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한 톤 더 밝고 다채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경북 칠곡군은 경계를 부수는 이들, 아트랜스파머의 시선을 통해 매일 새롭게 채색되는 중이다.대구의 독
언제고 이런 시간이 오게 되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곤 했습니다. ‘굳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의 반대편에, 그래도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잡지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맞서곤 했습니다. 덥석, 결정의 시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와 밀착된 10년이었고, 에 대한 이야기가 제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라, 조금 되돌아보겠습니다. 기자로 입사한 을 4년 반 후에 그만둘 때 들은 말이 “우리도 곧 잡지를 만들 건데…” 였습니다. 그 잡지가
코시국에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기억을 살짝만 되돌려 봐도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은 섣불리 손대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 잠시 열기가 식었을 때 살살 벗겨 보자.●종로구가 쏘아 올린 특별관리지역 회상해 보자. 북촌에 깃발 든 관광객과 사진 출사 동호회와 인스타그래머들이 북적이던 그 시절을. 고즈넉한 궁궐 북편 한옥 마을이 핫 플레이스가 된 건 누구에게 좋은 일이었을까? 상인들은 쾌재를 불렀지만,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했고, 쓰레기와 소음, 주차 문제로 종로구청엔 민원이 밀려들었다. 정류장 인근 도로를 점령한 관광
뜨겁고 아름다운 청춘의 노래가 울린다. 복작복작, 어느 마을 시골 장터 가득 젊음이 스민다.‘청년’이라는 계절이 있다면 아마도 늦은 봄과 여름의 끝자락 그 사이. 다소곳한 꽃잎처럼 피어났다가 한없이 푸르러지는 잎사귀를 닮은 시간일 것이다. 대전 유성시장 골목 어귀, 청년의 계절을 닮은 대전문화산업단지협동조합을 만났다. 유튜브: 청춘마이크 낭만적인 이름이다. 청춘마이크.그렇게 느껴졌다면 정말 다행이다. 조합 이름이 워낙 딱딱해서(웃음). 청춘마이크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를 해보자면 대전문화산업단지협동조합에서 청년예술가를 위해 기획한 버
등대에 갔다.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이것뿐이다. ●시작점 등대에 가기로 했다. 간밤에 폭설이 내렸고, 도시의 온도가 곤두박질쳤다. 숫자로만 존재했던 ‘-28℃’는 눈발과 바람과 공기가 되어 몸속 세포 하나하나에 닿았다. 지독하게 추운 블라디보스토크의 겨울이었다.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침대 위에 웅크리는 것과 등대로 가는 것. 이불을 걷었다. 패기를 넘어 거의 자해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바깥을 나서는 데엔 대단한 각오씩이나 필요했다. 콧속을 뚫고 뇌까지 닿는 겨울바람을 버텨 내리란 각오, 유리조각에 허파가 찔리는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2년쯤 전에 이 지면에 ‘첫 차 구입 썰’을 풀었더랬습니다. 회사에서 굴리던 자동차가 매물로 나온 김에 오랜 뚜벅이 생활을 정리하고, 오너드라이버의 세계로 진입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세상사 다 때가 있다는데 차를 살 호기였는지는 몰라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운전대 앞에서 편해질 즈음,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는 ‘코시국’에 처하게 될 것을요. 반려동물도 없는 제게 애써 산책시킬 반려차가 생긴 것입니다.어쨌든 반려하던 차를 보냈습니다. 차를 팔았다는 소식에 지인의 첫 마디는 “기후 위기 대응?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어느 영화와 같았던 홍콩 회상기. 공중전화처럼붉은 네온으로 휘갈겨 쓴 커다란 한자 간판이 건물 사이 공중을 점령하고 있는 곳. 그 아래 골목 사이에는 윗도리를 깐 누군가가 커다란 기름 솥에 무엇인가를 튀기고 있고, 미지근한 연경(燕京) 맥주병이 오간다. 골목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주방장이 미필적 고의로 육수의 짠맛을 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800원짜리 완탕면은 꽤 맛이 좋았다. 노래를 부르는 듯한 말씨가 흐르는 식당 진열장에는 가금류(혹은 야생조류)가 모가지를 붙인 채 걸려 있고 앞에는 전 세
제주, 깊숙이 뿌리 내린 자작나무에 바람이 스친다. 일렁이는 나뭇잎의 고운 선율이 숲을 이뤄 섬을 감싼다.자작나무숲은 제주도민들로 구성된 클래식 음악 단체다. 2002년부터 제주도 지역민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비롯해 다양한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피아노,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성악, 색소폰, 아코디언 등의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작나무숲을 이끌고 있는 ‘우상임 음악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유튜브: 자작나무숲 그런데 제주도에도 자작나무숲이 있나?없다. 자작나무는 주로 추운 지역에서 자생하는 나무다. 예를 들면 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