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린 시절부터 뉴스를 통해 칸이라는 도시를 접해 왔다. 프랑스의 유명 휴양지임을 알지 못하더라도 영화제로 이름난 곳이니 말이다. 화려한 스타들만이 초대 받아 갈 수 있는 곳으로 느껴져 나와는 멀게만 느껴지던 곳. 그렇다 보니 천천히 거닐며 순간순간 마주한 칸의 모든 장면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칸을 영화제라는 한 단어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렌지 빛 물결을 만들어 내는 주택가와 해변, 요트가 함께한 풍경과 럭셔리 브랜드의 화려함이 만든 칸의 모습은 남프랑스에서 느낄 수 있는
상쾌한 바람을 피부로 느끼고 나서야 마르세유에 도착한 게 비로소 실감이 난다. 시야를 옮겨 파란 하늘과 항구가 어우러진 풍경을 보니 오늘 하루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에 마음이 설렌다. 프랑스 제2의 도시인 만큼 현대적인 매력과 사람들의 생기도 가득한 마르세유. 이곳에서는 짧은 시간에 무엇을 할지 선택하는 게 몹시나 어렵다.그야말로 항구의 낭만과 도시의 모던함이 어우러진 남프랑스 여행의 시작지, 마르세유에서 여행자는 자연, 예술, 체험 등 일단 주제부터 정하는 것이 좋겠다. 거기에 더해 알뜰하게 모든 걸 즐기고 싶다
●솜씨 좋은 장인들의 이름으로클래식 카를 타고 도착한 곳은 피렌체에서 시에나로 가는 길목에 있는 아웃렛, 더 몰(The Mall)이다. 이탈리아 피렌체는 쇼핑의 도시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메디치 가문 이후 자금이 피렌체에 흘러들었고 모든 분야에서 솜씨 좋은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장인들이 모여드니 품질이 좋아졌고 가격대도 높아졌다. 고품질의 제품이 피렌체에 모여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 몰 아웃렛은 요즘 토스카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코스로 각광받는 곳인데, 쇼핑을 즐겨하지 않는 나도 결국엔 하루를 꼬박 투자하고 말았다.
중세 유럽의 분위기에 흠뻑 젖었다. 르네상스가 피어난 피렌체는 어딜 가나 풍성한 이야기로 넘쳤다. 성장이 멈춘 도시, 시에나는 과거를 고스란히 가둬 놓았다. 도시를 걷고 마시고 먹으면서 시간이 속삭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피렌체’라는 도시명은 아르노 강변에 꽃이 만발하여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꽃 피는 곳’이란 뜻의 ‘플로렌티아(Florentia)’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플로렌티아는 프랑스어와 영어로는 ‘Florence’로 표기하며, 각각 ‘플로랑스’, ‘플로렌스’라고 발음한다. 현지 발음으로는 ‘피렌쩨’에 더 가깝다. 걷
케이블카와 전망대가 주인공이 아닌 자연 자체가 존재감을 뽐내는 일정도 가능하다. 쉴트호른으로 가는 길목인 뮈렌(Murren)은 라우터브루넨 계곡 고지대에 위치한 산장 마을이다. 인터라켄에서 기차를 타고 라우터브루넨으로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케이블카를 갈아타야 닿을 수 있다.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갈 수 있는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그만한 값어치는 충분하다.뮈렌에서 짐멜발트까지 이어진 굽이굽이 시골길은 단지 걷는 것만으로 충분히 힐링이 된다. 전기차만 운행이 가능한 깊은 산속 마을의 공기는 저녁이면 더욱 투명해진다. 와인을 곁들인
길을 걸었다. 산과 호수를 걷고 시골 마을에 짐을 풀었다. 쉬엄쉬엄 노곤할 정도만 움직이고 충분히 잤다. 취리히나 베른, 루체른 같은 대도시는 스치듯 지나갔다. 매일 초록에 길들여진 눈은 저녁에도 침침하지 않았다. 스위스를 걸었다.스위스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산이다. 산이 많은 스위스는 케이블카와 등산열차가 발달해 누구나 쉽게 고산에 오를 수 있다. 루체른 같은 대도시를 여행하다가도 조금만 길을 나서면 만년설을 볼 수 있다. 루체른에서 가까운 필라투스와 티틀리스는 스위스의 도시와 자연을 동시에 즐기는 효율만점의 선택이다.해발 2,
최근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두 도시가 있다. 2019년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된 마테라, 2018년 이탈리아 문화 수도로 자리매김한 팔레르모가 그 주인공이다. ●시간에 덧입힌 감각마테라 Matera Capitale Europea della Cultura이탈리아 여행의 매력은 각 도시가 가진 유니크함에서 온다.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나폴리 등을 차례로 가 보면 마치 다른 나라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각자만의 색깔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유의 고유성을 더욱 굳건하게 가진 도시가 있으니, 마테
타는 태양을 피하려 숨어든 곳엔 십자고상이 매달렸고 목을 축이러 고개를 숙인 자리엔 타스비흐*가 놓여 있었다. 모래 언덕 아래 잠들어 있는 것은 이 땅에서 수세기 동안 교차했던 영욕들.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으므로, 산 자들은 침묵하는 무덤 위를 헤매면서 조서를 꾸미는 수밖에 없다. *타스비흐 | 이슬람 묵주 ●Hatay 하타이 구명보트에 올라탄 이들에게불볕이란 게 이런 건가. 40도를 육박하는 온도와 타는 듯한 건조함이 하타이(Hatay)를 휘감고 있었다. 빙 둘러보아도 언덕이나 산의 능선은 보이지 않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기만
가을이라고, 마다할까첫날이었다. 모호한 낮밤의 경계와 엉망이 되어 버린 시차. 가을철 프랑스의 태양은 어찌나 또 게으르던지. 밤 9시, 그림자가 거리에 드러누울 때쯤 루아얄 광장(Place Royale) 근처에 둥지를 틀었다. 이 밤, 홀로 무얼 할까. 마음속에 동여맬 수 있는, 그럴싸한 계획이 필요했다. 한 잔 가득 낭트를 담아 마시기로 하곤 와인에 입술을 적셨다. 보랏빛 스멀스멀 물들어 갈 때 엉금엉금 창가로 향해, 어슴푸레 찾아온 낭트의 새벽을 방 안으로 들였다. 가을이라고, 제법 쌀쌀맞더라. 하루 고단을 침대 맡에 놓아두곤
유럽 최대의 크기라는 리넥 구브니(Rynek Głowny) 광장은 유럽 최대의 인파로 북적이는 듯했다. 그런 분주한 흐름을 매 시간 잠시라도 멈추게 하는 것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 첨탑에서 비명처럼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였다. 몽골족타타르들의 침입을 발견한 초병의 나팔 소리가 목으로 날아든 화살 때문에 뚝 끊기게 된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지금은 나팔수 대신 소방관들이 첨탑 위에서 화마로부터 도시를 지키며 매 시간 연주도 병행하고 있다고.1596년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750년의 역사가 고여 있는 크라쿠프는 500
분할통치로 쪼개지기 전 폴란드의 화려한 전성기는 아마도 16~17세기의 폴란드-리투아리나 연방 시대였을 것이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보존된 빌라누프성이 담고 있는 것은 사랑과 자부심이다. 오스만제국에 맞섰던 빈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이슬람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수호했다는 평가를 받는 얀 소비에스키(Jan III Sobieski, 1629~1696년)왕은 뛰어난 전략가였을 뿐 아니라 타고난 사랑꾼이었다.아내 마리아 카지미에라(Maria Kazimiera)를 위해 지었다는 궁전 내부에는 둘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상징들이 가득한데
●네온사인 빛나는 바르샤바의 미래 바르샤바는 비스와강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뉜다. 맨해튼과 브루클린처럼 서쪽 다운타운은 상업과 행정기능을 수행하고, 산업혁명 시절 바르샤바에 편입된 동쪽은 철공소, 안경 공장 등이 있던 산업지대에서 주거지역으로 변화 중이다. 동쪽으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다 깜짝 놀랐다. 드러난 모래등 위에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화 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똑같았기 때문이다.돈이 있어도 물자가 부족해 퍽퍽했던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삶의 여유를 놓치지 않았다. 게토에서도, 봉
●회색빛 도시에 뜬 무지개 폴란드의 이웃들, 특히 독일이나 체코에서 아우라 넘치는 중세의 풍경에 흠뻑 취했던 여행자라면 회색빛을 다 씻지 못한 바르샤바의 스카이라인이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도시의 역사에 귀를 기울여 보면 도시는 더 이상 풍경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자리다. 소비에트 양식의 무뚝뚝한 건물과 생경한 현대 건축물이 공존하는 도시는 시간을 보낼수록 구석구석이 아린 느낌이다. 스탈린의 선물이었다는 문화와 과학 궁전(Palace of Culture and Science)은 310m 높이로 여전히 폴란드에서 가장 높은
●게토에서 발굴한 진실의 편린 바르샤바의 박물관은 크든 작든, 모든 것이 특별하고 애틋했다. 전후 잿더미가 된 도시를 맞이한 그들에게 박물관은 대대로 물려받은 것, 우연히 발굴된 것들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다. 도시를 재건해 냈듯, 역사를 재건해 내고, 그곳을 다시 출발점으로 삼아 나아가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인다. 최고의 건축가, 최고의 기술을 동원한 인터렉티브 뮤지엄들은 따분하다는 선입견을 뒤집어 놓을 만큼 획기적인 체험을 약속한다. 바르샤바에서 꼭 가 봐야 하는 박물관을 꼽으라면 이견 없이 두 곳이 있다. 폴린 유대인 역사 박물관
올해 폴란드는 독립 회복 100주년을 맞았다. 그 100년은, 곳곳에 애잔한 아름다움이 깃든 이 나라로 성큼 들어서는 시간의 열쇠였다. 미지의 문 안에 선 여행자에게 꼭 맞는 열쇠보다 더 큰 행운은 없다. 폴란드 | 북쪽으로 발트해를 끼고 있는 동유럽의 국가로 1989년 체제 전환 이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인구는 3,850만 명,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다. 수도 바르샤바와 역사의 도시 크라쿠프, 비엘리츠카 소금광산과 아우슈비츠가 유명하고, 홀로코스트의 역사가 워낙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지만 아름다운 중세의 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소도
코소보 옆 나라 알바니아로 접어들었다. 코소보와 마찬가지로 알바니아에 대한 사전 정보와 지식의 두께가 습자지 한 장보다 얇았다. 게다가 코소보보다 여정이 더 짧아 겨우 하루 반나절의 야박한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니 이 글은 가벼운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데, 다행히 알바니아의 첫인상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선을 넘다선을 넘었다. 코소보(Kosovo)에서 알바니아(Albania)로 넘어온 것이다. 차를 타고 육로로, 수월하게. 코소보-알바니아 접경지대에 설치된, 흡사 요금소 같은 검문소는 검박했다. 민족(알바니아계)
코소보와 알바니아 출장 의뢰가 들어왔을 때 농담하는 줄 알았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를 가 봤으니 발칸반도가 아주 낯설지는 않았지만 두 나라에 관해서는 ‘내전’, ‘인종 청소’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 이외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마치 듣도 보도 못한 미지의 생명체를 상대하는 것 같았다. 마른침을 삼키며 터키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스탄불 공항 CIP 라운지에서 맥주와 와인으로 야금야금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코소보(Kosovo)행 터키항공 TK1017 편이 한 시간가량 지연 출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휴대폰으로 확인한
앗스Assy앗스 휴양지로 가는 길. 대지를 가득 메운 연녹색 물결이 지평선까지 그라데이션을 이루고 있었다. 멀리 작은 점처럼 마소떼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이 띄엄띄엄 모습을 드러냈다. 때때로 소떼가 도로를 점령한 채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평화롭다’는 말은 이런 풍경을 표현한 게 틀림없다. 하늘은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이곳엔 미세먼지라는 단어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자연 그대로의 색을 입고 있었다. ●이런 곳이라면 절로 건강해지겠어!바시키르에는 휴양은 물론 치료와 요
부르잔스키Burzyansky 북에서 남으로 2,000km 남짓 뻗어난 우랄 산맥은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경계다. 최고봉인 북부의 나로드나야산 높이는 1,894m이며 남부로 갈수록 점점 낮아져 준평원 같은 지형이 나타난다. 우랄 산맥 남부에 있는 스타로수브한굴로보(Starosubkhangulovo) 마을은 우파에서 차로 5시간을 달려야 닿는 작고 아담한 산골 마을이다.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파스텔 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천연가스가 풍부한 나라답게 마을 구석구석 노란색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선 매
바시키르인의 땅을 가다백야가 시작되던 6월의 첫날. 난생 처음으로 러시아 땅을 밟았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광활한 영토만큼이나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월드컵의 함성도 사그라진 지금, 그곳에서 보낸 5일이 꿈처럼 아련히 떠오른다. 우파UFA “짝짝짝!” 요란스런 박수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행기가 이제 막 우파국제공항에 닿은 참이었다. 무슨 일이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당혹스러워 하는 이는 나밖에 없었다. 기내는 내릴 채비를 하는 승객들로 분주했다. 혹시 꿈을 꾼 건가 싶어 볼을 꼬집어 보려던 찰나, ‘비행 동